제47화 숨 쉬는 날까지 일하자

(서울특별시 강동구_ '차이나린찐' 사장 김학래 편)

by 작가 석산

한때 대중들에게 건강한 웃음과 재치를 자아냈던 개그맨이자 사업가인 김학래(현, 코미디협회 회장) 사장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1977년 KBS 특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김학래 씨는 1980년 대 시청률 40~50%를 넘기며 한국 코미디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유머 1번지', '쇼비디오자키'코너에서 인기를 끌며 90년대 초반까지 왕성한 방송활동을 했던 살아있는 레전드다.


그러나, 방송환경 변화로 코미디, 개그 프로그램들이 점점 축소되거나 폐지되는 관계로 개그맨들의 무대가 설 자리를 잃고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면서 흔히 말하는 왕년의 개그 스타들도 점점 잊히거나 좋아하는 일을 떠나 사업이나 다른 직업을 찾아 살 길을 모색해야만 했다. 김학래 사장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직업에서 사업가로 변신해 처음 시작한 사업이 피자가게였다. 그러나, 1990년대 경제 부흥기에 발맞춰 주변에 프랜차이즈 피자가게들이 우후죽순 등장으로 경쟁에서 밀려 4년 만에 문을 닫아야만 했다. 두 번째로 강남에 고깃집을 오픈했으나, 3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세 번째는 서울 인근에 라이브카페, 그리고 업종을 변경해 의료용 의자 사업까지 해봤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한때 잘 나가던 '개그맨 김학래'라는 연예인 타이틀에 너무 맹신한 게 패착의 원인이 됐다.


그 후, 실패를 거듭하며 4전 5기의 신화를 쓴 김학래 사장은 연예인 타이틀을 과감히 벗어던져버리고 오로지 실력으로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맛'으로 승부를 걸어 성공하기에 이른다. 사업가다운 진가를 발휘한 중화요리전문점 "차이나린찐"이 바로 그것이다.

3982.jpg 손가락으로 승리의 브이(V)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차이나린찐' 김학래 사장 가족들(중앙_ 아내 임미숙, 아들_ 김동영 씨)

김 사장은 "사회적으로 유명한 공인이 사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반인 보다 몇십 배 더 노력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연예인 이름만 걸어 놓고 사업장에 나오지도 않고 관리를 하지 않는 사업장은 성공하기 힘들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벌써 김 사장은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30대 청년 같은 팔팔함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면서 일 속에서 재미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삶.., '숨 쉬는 그날까지 일은 계속한다'는 그의 올곧은 다짐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숨쉬는 날까지 일하자1920 1080 삽입용.jpg


매거진의 이전글제46화 포기하지 않는 한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