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으면 여유로워질 줄 알았다.
시간이 많을수록 조급하고 답답함으로 속이 턱턱 막히는 날들이 많아졌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일 테다.
조급하고 답답한 마음은 남편만 기다렸다가 화를 쏟아내는 일로 이어졌다.
쏟아져야 할 화의 대상은 정작 남편이 아니라 나 자신인데 말이다.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육아와 그걸 내려놓지 못하는 나, 다짐한 것들을 자주 잊고 해내지 못하는 나.
나 자신에게 답답하고 화가 나는 일을 해결하지 못하고, 그 어정쩡하고 찝찝한 기분을 티끌같이 별것 아닌 일로 남편에게 쏟아붓고 있는 내가 보였다.
하루 동안 내가 얼마나 고됐는지,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잃어버린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등
잃어버린 나는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얼마나 고됐는지,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게 아닐 텐데 말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나에 대한 화가 별것 아닌 일들을 핑계 삼아 남편에게로 고스란히 향했다.
지나고 보면 객관화가 돼서 너무나 잘 아는데, 순간의 감정을 조절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여전히 나는 부족하고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걸 아주 잘 나타내 주는 거지 뭐.
타고나길 예민한 아이는 절대 싸우는 게 아닌 경우에도 조금만 목소리가 커지거나, 왔다 갔다 대화가 계속되면 싸우는 줄 아는데 진짜로 내 감정을 토로할 때면 어김없이 '엄마 아빠 싸우는 것 같아'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를 통해 듣는 이 얘기는 엄청난 죄책감을 갖게 하고 감정 조절 하나 못하는 못난 엄마가 된 것 같아 정말 괴롭다.
왜 대체 누구에게도 득이 될 리 없는 멍청한 짓을 나는 수없이 반복할까?
변해야 하는 건 남편이 아니라 나 자신인데 그러질 못하고 있으니 그럴 테지.
20대 때 연애가 풀리지 않던 시절, 연애가 안 풀리니 인생이 안 풀린다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주 내뱉고는 했다.
그러다 모든 걸 내려놓았을 때, 나 혼자 스스로 정말 행복할 때 연애가 잘 풀렸다.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인걸.
내가 혼자서 기대하고 그걸 놓지 못해서, 또 혼자서 온전하지 못해서 함께여도 불행한 날들이 계속됐다.
행복은 스스로 찾아가고 온전히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데 자꾸만 그걸 남에게 바라니 풀릴 리 만무하다.
내가 남편을 그토록 참지 못하고 여전히 한 번씩 치미는 걸 보면 그 화는 사실 남편이 아니라 나를 향한 화다.
그걸 스스로 어쩌지 못하고 남편에게 쏟아 냈으니, 영문도 모르고 매번 날벼락을 맞아야 하는 남편에게 유독 미안해진다.
모든 정답은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나를 위한 조그만 성취들을 많이 찾아봐야지.
어제와 같은 하루가 아닌 단 하나라도 다른 뭔가를 해내는 오늘을 살아야지.
몇 페이지라도 책을 읽는 일, 등원 후엔 계단으로 올라오는 일, 반찬 하나 정도는 만드는 일, 오늘의 중요한 일을 다이어리에 적는 일, 그리고 하나라도 지워내는 일.
자기 전 오늘의 행복한 순간을 한 줄이라도 기록하는 일.
그렇게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찾고 특히 남편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관대 해지는 나였으면 좋겠다.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더 이상 남편도 나도 미워하지 않는 성숙한 나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