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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선 May 27. 2024

못난 놈

''인생사 정말 맘대로 안 된다.

나도 내가 셋째까지 가지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음. 이번 송년회는 못 나간다.''


나의 출생 연도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데 내 새끼 출생 연도는 다가올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다시 한 해가 지나고 있었다.


일곱 명 고등학교 동창들 모임이 있다. 아직 결혼을 안 한 준원이가 사흘 후 송년회를 시행하니 빠지지 말고 나오라면서 카톡 방에 협박 공지를 했다. 사흘 후라면 와이프가 컨디션 좋게 하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던 시험관 시술 채취 하루 전이었다.


그런데 전날 술 먹고 와도 되냐고 와이프한테 물어보면 바로 집에서 쫓겨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지난번 만났을 때 친구들한테도 내가 시험관 시술을 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그냥 솔직히 시험관 시술해야 한다고 말할까 하다가, 그게 뭔지도 모를 총각인 준원이가 난리 칠게 뻔하게 보였다. 나는 그냥 아프다고 하기로 했다. 최대한 준원이 기분 나쁘지 않게 하려고 카톡 내용을 썼다 지웠다 하는 중이었다.


'감기가 심하게 걸려 미안하지만 불참한다'라고 타이핑하고 있는 찰나 번쩍거리며 메시지 하나가 나타났다.


아들, 딸 벌써 애가 둘인 열준이가 자기 와이프가 셋째를 가졌다는 자랑 메시지였다.


그러더니 바로 이어서 자랑인 듯 아닌 듯한 글이 올라왔다.


 '인생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순간 나는 가슴팍을 돌멩이에 맞은 것처럼 아파지기 시작했다.


'하' 외마디 신음이 나오는 찰나 곧바로 친구들의 임신 축하 감탄사와 이모티콘들이 돌무더기처럼 날아와 아파하는 나를 더욱 두드려 맞혔다.


'와우 지금 나서 언제 키우냐? 그래도 축하한다.'


"야, 셋째 초등학교 입학할 때쯤이면 네가 거의 오십이겠구나'


아파트 밖 놀이터로 갔다.

전날 눈보라가 그리도 몰아치더니 이가 덜덜거릴 만큼 추었다. 뼈를 에는 엄동설한인데, 마음까지 아렸다.

아련한 담배 연기가 매운 것인지 여린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나도 인생사 정말 마음대로 안되네.

나는 첫째만 가져도 좋은데...'



회사 송년회 회식이었다. 같은 부서에 나랑 동갑인 동료가 하나 있다. 이 친구도 나랑 비슷한 나이에 결혼을 해서 애가 다섯 살인가 그랬다.

항상 회사 송년회에서는 모두 술 하고 싸움이라도 하는 듯 얼큰하게 취해버린다.

2차로 노래방을 갔다. 다들 흥에 겨웠다. 누구는 트로트를 불러대고 젊은 사원들은 듣도 보도 못한 신곡을 뽐냈다.

나는 나의 영원한 애창곡인 서른 즈음에를 불렀다. 그리고 나랑 동갑인 동료가 부를 순서였다. 마이크를 잡고 잠시 머뭇거렸다.


'소심한 성격이라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네'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윽고 그 친구는 고민 끝에 노래 번호를 입력했다. 술에 취해서 제목이 정확히 안 보였지만 얼핏 알파벳이 보이는 게 팝송 같았다. 그리고 반주가 나왔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찰나 그 친구의 우렁찬 노랫소리가 들렸다.


"Baby shark 뚜뚜 뚜뚜뚜뚜, Mommy shark 뚜뚜뚜뚜뚜,

Dady shark 뚜뚜뚜뚜뚜, Grandma, Grandpa…."


아기 상어 영어 버전이었다.


부서원 모두는 술주정도 멈춘 채 쳐다봤다. 그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친구는 두 손을 뻐금거리는 앙증맞은 무용까지 해대며 완창 했다.

그러고는 노래가 끝난 후 이렇게 말했다.


"딸내미가 이 노래를 영어 유치원에서 배웠어요.

딸내미가 하루에도 수십 번 노래 부르고, 수십 번 춤을 춰요.

술에 취하니 다른 노래는 하나도 생각이 안 나요.

다음에는 예쁜 딸내미랑 같이 부를 테니 예쁘게 봐주세요"


부서원들 모두 기립 박수를 쳐가며 응원을 해줬다.

나는 부서원들의 함성을 뚫고 노래방 밖으로 나왔다.

담배를 입술에 물면서 중얼거렸다.


'아! 이젠 세상이 별 특이한 방식으로 나의 염장을 지르는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나는 참으로 못난 놈이었다.

왜 그리 남들과 비교했는지….

비교해서 좋을 게 하나 없는데, 왜 그리 스스로를 아프게 만들었는지….

혹 그런 논문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남편인 나도 난임 우울증이 걸렸던 게 아닐까 한다.

못나게 굴어서일까? 그때의  시험관 차수는 피검사 결과도 확인하지 못했다.


와이프가 힘들게 주사 맞아가면서 채취된 소중한 한 개의 난자였는데 결과는 공 난포였다.


 


[공난포 : 서울라헬여성의원 ]


난포는 있지만 난자가 없이 비어있는 상태를 공나포 증후군이라고 한다. 즉 성숙된 난포가 관찰되지만 난자가 채취되지 않는 경우로 채취 전 초음파나 호르몬 검사를 시행해도 결과는 정상으로 나오기 때문에 예측하기 어렵다. 공난포 증후군은 시험관 아기 시술의 0.2~7%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된다. 공난포의 종류는 가성 공난포 증후군과 진성 공난포 증후군으로 구분된다.


가성 공난포 증후군은 hcg 주사 투여가 적절하지 못해 난자가 배란될 준비가 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 hcg 주사를 제시간에 맞지 않았을 때


- 투약 방법이 적절하지 않았을 때


- 약 자체에 문제가 있었을 때


진성 공난포 증후군은 난포 성숙 주사를 제대로 맞았음에도  난자 채취가 어려운 경우를 말한다. 즉, 배란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공난포가 채취된 경우를 말한다.


- 난포성장 이상으로 난자가 일찍 퇴화되어 버리는 경우


- 난소의 노화나 다낭성증후군 등으로 인해 난포 성숙이 되지 않는 경우


- hcg 주사가 체내에서 작용하지 않는 경우


- 유전적인 결함이 있는 경우


- hcg 주사를 맞고 난 후의 난포 변화가 느려 보통보다 난자채취 시간을 늦춰야 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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