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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선 May 20. 2024

변기에 앉아 주사를 맞다

"아침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주사를 맞아"


와이프는 중학교 수학 선생님이었다. 담임도 줄곧 맡고 있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에는 시험지 문제 내고, 채점하느라 부엌 식탁에서 쭈그린 채로 밤을 꼬박 새우는 것도 많이 봤다.

연초에는 시간표 짜느라고 바쁘고 연말에는 생활기록부 작성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담당 업무로 학교폭력 위원 일까지 했다. 때로는 경찰서까지 가서 진술서를 쓰고 회의 때 녹음한 학부모들 사이에 오고 간 고성을 몇 번이나 들으며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회의록을 기록했다.

그렇게 또 밤을 새웠다. 수시로 학부모 면담을 하고, 질풍노도의 시기인 학생들 상담도 해야 했다.


그런데도 와이프는 매일매일 일정한 시간에 과배란 주사를 맞아야 했다.

교실에서는 중2 병자들이 가득하니 쉬는 시간이라 할지라도 주사기를 꺼낼 수조차 없었을  조차 없었을 것이다. 양호실에서 맞으면 가장 좋은데, 난임이라는 것을 들킬까 봐 엄두를 못 내겠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택한 장소가 바로 화장실 좌변기라고 했다.

와이프는 학교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탕비실 냉장고 안쪽 깊숙한 곳에 주사기를 보관하는 일이라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주사기가 들어있는 파우치 가방을 아무도 볼 수 없게 열쇠로 잠그고 싶을 만큼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난임이 죄가 아닌데, 과배란 주사기가 히로뽕 주사도 아닌데, 자존심 강한 와이프는 난임에 대한 남들의 시선을 그렇게 많이 두려워하고 있었다.


난임 병원을 가야 하는 날에는 와이프는 더 안절부절못했다.

난포 확인, 난자 채취, 수정란 이식, 피검사 확인 등 시험관 시술 사이클에 돌입하면 최소한 예닐곱 번은 병원에 가야 한다. 그런데 직업이 선생님인 와이프는 그마저 호락호락하지가 못했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 잠시 병원을 가려고 할지라도 와이프는 교장에게 외출 사유와 복귀 시간이 적힌 외출증을 끊어야지만 교문 밖을 나갈 수 있다고 했다.

교장이 회의라도 있으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기에 병원 예약 시간에 늦을까 봐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난임 병원에 대기자가 많아서 학교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을 넘길 때에는 교장에게 잔소리라도 들을까 봐 가슴이 콩닥거린다고 했다.

군대 때 중대장에게 외출증 끊고 영내 외출했던 그 상황, 그 느낌을 생각나게 했다.

그런 와이프가 안쓰러웠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학교를 그만두던가, 아니면 시험관 시술을 그만둬라."


와이프는 그렇게 어릴 적부터의 꿈이었던 교편을 15년 만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와이프는 분당 집 근처로 병원을 옮겼다. 얼마 전 수지에 분원이 생긴 수지 ㅁㄹㅇ병원이라고 했다.

제발 여기서는 와이프가 못다 이룬 꿈 대신 더욱 간절히 바라는 꿈을 이루기를 소망했다.


 

[시험관 시술 중 병원 내원 횟수 : 맘스홀릭 베이비]


- 과배란 유도 : 생리 시작 2~3일째 방문

- 난포 성장 관찰 : 주사 투여 중 2~4회 방문

- 난자 채취 : 생리 시작 12~14일째 방문

- 배아 이식 : 생리 시작 15~17일째 방문

- 결과 확인 : 배아 이식 후 10~12일 후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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