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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선 May 13. 2024

복순이

“그만 살고 싶어.

가끔 뛰어내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


그 어느 누가 나에게 삶의 기로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 적은 내 평생 그 사람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는 바로 내 와이프였다.


 

[난임 여성의 우울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분석]


 _ 발행기관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3-09-01)

 _ 저자 : 황나미


 난임여성들은 23%가 우울을, 59%가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으며, 난임진단과 시술과정에서의 스트레스로 인하여 우울뿐 아니라 분노를 일으킨다. 치료과정이 길어지거나 임신 실패로 끝났을 경우 이러한 증상은 더욱 심해지며, 임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임신 실패에 집착하며 임신 이외의 목표나 요구는 무시하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Mahlstedt, 1985)

우울하고 쓸쓸하며 외롭고 공허하게 느끼고, 사는 즐거움이 없으며 속이 답답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신경질을 잘 내게 된다. 또한 의욕 감소나 상실로 이전에 즐거웠던 일이나 활동에 관심이 없어지고 전과 같이 즐겁지 않게 되어 사람 만나기를 피하고 사회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며 무기력하게 되어 일상활동에 어려움을 겪게 되므로 사회적 응력이 떨어진다(이진용, 권재희, 1998). 난임은 정서적으로는 죄의식, 자기 비하, 열등감 등으로 우울, 불안, 성격이상을 초래할 수 있고(조남옥, 박영숙, 1996), 희망과 기대, 관계, 지위, 자존감, 자아신뢰감과 안정감의 상실을 경험한다고 하였다(Mahlstedlt, 1985) -중략-


 

와이프에게 우울증이 생겼다. 시험관 시술 두 번째, 세 번째를 연달아 실패한 이후였다.

첫 번째 시험관 시술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 세 번째 역시 말 그대로 그냥 지나갔다.

와이프한테는 그 '그냥'이 충격이었던 같다.

난임 시술에서의 그냥은 최악의 결론이다. 그 결과는 딱 두 가지 경우만 있으니까. 임신이 되거나, 아니면 그냥 지나가거나.

우리말에 삼세번이라는 게 있다. 계절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세 번이나 시험관 시술을 위해 노력했는데도 안 되는 것이면 앞으로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을 것 같았다. 와이프만큼이나 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앞으로도 시험관 시술을 계속해야 할지, 그리고 만약 계속하게 된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일단 나는 계속 진행하고 싶었다. 물론 내 의사보다는 와이프 뜻이 더 중요했지만.

와이프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 많이 힘들어하는 거 같은데 우리 시험함관 그만둘까?"


"잘 모르겠어. 힘들긴 한데…. 모르겠어.

남편은 어떤데? 휴…. 그냥 남편 하자는 데로 할게"


"좋아 그럼 우리 딱 여덟 번까지만 하자"


"여덟 번? 왜 하필 여덟 번이야?"


"우리말에 칠전팔기라는 게 있잖아.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까지는 일어나야지"


"아휴! 유치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렇게 우리는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와이프가 계속 우울감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일 큰 걱정이었다.


맘스 홀릭이라는 난임 카페가 있다. 지금은 남성이 가입이 안 되지만  그때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었다. 나는 여기서 난임 우울증 사례 및 극복 방안에 대해 알아봤다. 그러다가 한 가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우울함은 습관이다. 특히 난임 우울증같이 특정 한 가지 때문에 발생하는 우울감은 그 원인을 느낄 수 없게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색다른 습관에 빠져들게 해야 한다.’


갑자기 얼마 전 기억이 떠올랐다. 류현진 야구 경기를 보고 있는데, 와이프가 인터넷을 보다가 혼자 감탄사를 내뱉더니 이것 좀 보라면서 오두방정을 떨며 보여준 사진 하나가 생각났다. '애플 푸들'이라면서 너무 귀엽다고 히죽거리던 와이프의 그 표정은 류현진 때문에 어렴풋하게만 봤지만, 너무도 행복해 보였던 게 분명했다.

애플인지 오렌지 푸들인지 모르겠지만 작고 예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와서 잘 키우면 우울이라는 불청객을 단번에 쫓아내 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프랑 강아지를 분양받으러 평소에 장 보러 자주 갔던 마트를 갔다. 태어난 지 서너 달 되었다는 강아지 열 마리 정도가 투명한 격벽을 사이에 두고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너무 어려서 그런지 낮인데도 불구하고 대부분 퍼질러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딱 한 마리가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우리를 바라보더니 뒷발로 일어서서 연신 점프를 하고 있었다.

안아달라고 표현하는 것이라기에 고 주먹만 한 녀석을 품에 안았다.

'아고' 조그마한 게 어찌나 부드럽고 따뜻한지 마치 솜사탕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고 녀석은 왜 이제야 왔냐는 듯 연신 손을 핥아댔다.

우리는 고 녀석을 안 데려올  올 수가 없었다. 집에 데려와서는 방, 세 개중 하나를 통째로 내주었다. 울타리 안에 물그릇, 밥그릇을 챙겨주고 담요도 넣어주고 스머프들이 사는 집 같은 보금자리를 꾸며 주었다. 혀를 날름날름거리면서 물을 홀짝홀짝 먹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자세히 보니 그 둥글둥글한 얼굴은 영화 그렘린의 주인공 모과이 같기도 하고 스타워즈의 요다 같기도 했다.

이름을 지어주었다. 내가 지었다. 한 일주일 정도 이름의 뜻과 음에 대해 고민을 했다. 두 가지 이름을 지어서 와이프에게 고르라고 했다. 두 이름 모두 영어와 한자의 콜라보였다.

하나는 컴복(Come 福복복)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복순(福 Soon)이 였다.

와이프는 두 이름 모두 장난하는 거냐고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한 가지를 선택했다. 그런데 어감이 너무 촌스러워서 밖에서는 이름 부르기에 창피하다고 며칠 동안이나 투덜대었다.

내 나름으로는 우리 강아지 이름을 뜻깊게 지은 것이었다. 강아지 이름을 한 번 두 번 계속 부를 때마다 우리 가정에 아기가 오는 축복도 한발 두발 어서 빨리 다가오라는 바람을 담았다.

우리 강아지 이름은 바로 '복순(福 Soon)'이 이다.


'복아 곧 오렴'


복순이가 우리 집에 온 후 달라진 게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바로 와이프의 난임 우울증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우울할 겨를이 없을 것 같았다.

복순이랑 산책하랴, 복순이 옷 사주랴, 장난감 사주랴, 간식 사주랴, 사진 찍으랴, 훈련시키랴, 말귀 알아듣게 가르치랴…. 와이프의 우울증은 그렇게 복순이가 짖어서 멀리 내쫓아 내버렸다.

달라진 거 두 번째로는 바로 나이다. 복순이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나는 그전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6년 동안 보신탕을 전혀 안 먹게 되었다.

그리고 웃기면서 짠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복순이한테 우리 부부 호칭을 가르쳤을 때의 일이다. 보통 반려견의 견주들은 자기 강아지한테 이렇게 말한다.


"쭈쭈 바둑아, 이리 엄마한테 오렴"


그런데 와이프는 처음으로 '엄마'라는 호칭을 개가 부르게는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 대신 '언니'라는 호칭을 복순이에게 가르쳤다.


"쭈쭈 복순아, 이리 언니한테 오렴"


그리고 복순이한테 내 호칭은 '아저씨'로 교육했다.

그런데 자기가 언니이면 나는 오빠가 맞는 거 같은데 왜 아저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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