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시험관 시술 시 난임 병원 의사의 시술 과정 설명에서 채취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자주 나옴을 듣고 나는 아주 신기했다. 내가 알고 있는 이 단어의 쓰임은 '전복 채취', '산삼 채취', '진주 채취', '월석 채취' 등 중요한 무언가를 캐다라는 의미로 알고 있었는데 채취라는 단어를 병원에서 들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와이프와 나 모두 열 곱 번의 체외 수정 시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마지막 시술과 이 첫 번째 시술이다.
이상한 나라에 처음 발을 내디뎠던 엘리스 기분이 이랬을까? 우리에게 첫 번째 시험관 시술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과정 하나하나가 호기심이 넘치고 신기했다.
사용하는 용어도 한자와 영어가 섞여 있었다. 의사가 하는 그런 말을 듣고 있노라면 왠지 명품 브랜드를 설명하는 것처럼 폼도 났다. 그렇게 신기한 게 많은 만큼 우리는 참 많이도 설레기도 했다.
엘리스가 회중시계를 보며 '늦었다'라고 말하는 흰 토끼를 따라 토끼 굴로 들어간 것처럼 산전 검사지를 보며 '더 늦으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의사를 따라 우리는 그렇게 난임의 동굴로 들어가 버렸다.
처음이기에 이상한 것인가? 이상하기에 처음인가?
첫 번째 시험관시술에서 와이프가 과배란 주사를 스스로 맞았던 그 순간은 지금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옛날 요구르트 아줌마 가방처럼 생겼는데 훨씬 작은 크기의 가방을 와이프가 냉장고에서 꺼내온다.
냉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방 안에는 서슬 퍼런 주사기가 산신령처럼 튀어나온다.
와이프가 심호흡한다.
'하'
배꼽 바로 옆의 살 뭉텅이를 왼손으로 비틀어 한 움큼 손에 쥔다. 천장 형광등 불빛을 잔뜩 머금은 주삿바늘이 카랑카랑 번뜩이는가 싶더니 이내 살갗을 뚫는다. 와이프 얼굴이 종잇장처럼 일그러진다.
시퍼런 주삿바늘이 뚫은 살갗에서는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방울처럼 시뻘건 핏방울이 아랫배를 타고 흘러내린다. 눈물 훔치듯 하얀 솜으로 닦아낸다. 하얀 솜이 빨갛게 변한다. 그리고 '휴 끝났다'라는 나지막한 와이프의 목소리가 들린다.
과배란 주사 맞는 이 모습은 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동판화처럼 박혀있다.
며칠 후 첫 번째 시험관 시술의 난자 채취 날이었다.
여성의 나팔관을 금관악기 중 하나로 알고 있었을 정도로 나는 무식했다. 하지만 매달 난자는 한 개만 배출되기에 그 개수를 늘리기 위해 과배란 주사를 맞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는 대기실에서 난자 채취를 위해 시술실에 들어간 와이프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 자리에 앉은 것처럼 바로 정면에 시술실이 바라다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내 주위에는 남편인 듯한 사람들 여럿이 핸드폰을 보면서도 시술실 문 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시술실 문이 열리더니 힘든 기색이 역력한 한 여자가 나왔다. 그때 내 오른쪽에 앉아있던 남자가 그쪽으로 재빠르게 다가가 여자를 부축하더니 뭔가를 물어봤다.
"난포 몇 개 나왔어?"
"다섯 개 나왔다네"
여자가 말하는 게 들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과배란 주사를 맞았다 치더라도 그렇게 많은 난자가 배출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바로 이어서 내 왼편 남자도 시술실 문이 열리자마자 와이프인 듯한 사람에게 가더니 똑같은 질문을 했다.
"스물세 개 채취되었어"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우와! 주사를 맞으면 바다거북이 알처럼 난자가 많이 나오는구나'
그 후 십여 분이 더 지났을까 와이프가 드디어 시술실 밖으로 나왔다.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 곧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나는 재빨리 달려가 와이프를 부축했다. 수납도 겨우 하고 주차장으로 어렵게 내려가 차 뒷자리에 와이프를 태웠다. 시동걸기 전 나는 다른 남편들이 물어본 것처럼 와이프한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아니 왜 이리 죽으려고 그래? 시술실 나오는 다른 여자들은 이 정도는 아니던데…. 도대체 난자가 몇 개 나왔길래 그래?"
와이프가 힘겨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개 나왔데"
"응? 한 개? 아니 왜?"
물어서는 안 되는 질문이었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와이프가 대답했다.
"난소 기능 저하는 원래 그래.
근데 그래서 더 눈물이 나.
난포가 한 개만 나오니 서러워서 눈물이 나고,
한 개뿐이라 마취를 안 하고 채취를 하니 아파서 눈물이 나고,
남들과 비교를 하는 남편이 얄미워서 눈물이 나"
[시험관 아기 시술 정의 : 네이버 지식 백과 ]
시험관 아기 시술은 의학적인 정식 명칭으로는 체외수정 및 배아 이식이라고 한다. 여성의 몸 안에서 정상적으로 일어나는 수정 과정을 인체 밖에서 인위적으로 이루어지게 하여 임신을 유도하는 시술을 말한다. 즉 여성의 성숙된 난자를 채취하고, 남성의 정액을 인위적으로 채취하여 시험관이나 배양 접시에서 수정시킨 후 2~5일 동안 배양하여 여성의 자궁내막으로 이식해 임신이 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쉽게 '시험관 아기 시술' 이라고 한다.
[시험관 아기 시술 과정 : 네이버 지식 백과]
1. 과배란 유도
- 배란 유도제를 투여하여 여러 개의 난포를 키운다. 배란 유도 주사는 보통 생리 2~3일째부터 시작하여 약 1~2주 동안 사용한다. 난포의 성장을 관찰하기 위해 3~4일 간격으로 내원하여 초음파 검사를 시행한다.
2. 난자 및 정액 채취
- 난포가 성숙되면 배란 주사를 맞고 34~36시간 후 질 초음파를 이용하여 난소에서 난자를 채취한다. 시술은 약 30분가량 소요 되며 반나절 정도 안정이 필요하다. 남성은 시술 3일 전부터 금욕 후 시술 당일 오전 정액을 채취한다.
3. 체외수정 및 배양
- 채취한 난자와 정자는 체외에서 수정시킨다. 수정된 배아는 3~5일간 배양 후 여성의 자궁 내에 이식하거나 상황에 따라 동결한다.
4. 배아 이식
- 배양된 배아는 자궁 내로 이식된다. 이식 시 통증이 없으므로 마취가 필요 없으며 약 2시간 안정 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5. 임신 확인 피검사
- 난자 채취일로부터 약 10일에서 12일 후에 피검사를 통해 임신 여부를 확인하다. 임신이 확인될 경우 피검사일 약 10일 뒤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하면 시험관 시술 과정은 마무리된다.
[난임 용어사전 : 마리아 의료재단]
- 과배란 : 여러 개의 난포를 키울 목적으로 과배란 약물을 투여하는 과정.
- 과배란 주사 : 여러 개의 난자를 배란시킬 목적으로 사용하는 호르몬 주사.
- 나팔관 : 난자와 정자의 오작교. 자궁과 난소를 연결하는 가늘고 긴 관으로, 이곳에서 수정이 이루어지며 수정란을 자궁으로 이동시키는 역할.
- 배아 :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어 수정란 형성 이후 세포분열이 시작되는 단계부터 임신초기(일반적으로 임신 10주)까지를 지칭. 자궁에 착상이 이루어지는 시기는 포배기 배아 단계이며, 그 이전에는 세포 수에 따라 2세포기, 4세포기, 8세포기 배아 등으로 구별.
- 배란일 : 배란되는 날. 28일의 생리주기를 갖는 여성은 평균 생리 시작 14일 전후가 배란일에 해당.
- 배아이식 : 체외수정시술에서 배아를 여성의 자궁에 주입하여 위치시키는 것.
- 생리주기 : 생리 시작부터 다음 생리 시작까지의 기간. 정상적인 생리주기는 25일부터 35일 정도이며 이 범위를 벗어날 경우 '생리불순'이라고 부름.
- 수정 : 난자와 정자가 합쳐져 핵이 융합되어 하나의 세포가 되는 과정. 수정과정을 거친 난자를 수정란이라고 부르며, 이후에 발육을 시작하여 '배아'로 발달.
- 착상 :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고 나서 5~6일에 걸쳐 포배기 배아 단계까지 발달한 후 자궁벽에 부착되는 과정.
- 착상 전 유전진단 : 체외수정 시술에서 배아 이식 전에 배아의 유전자 검사를 하여 정상 유전자를 가진 배아를 선택하여 이식하는 방법.
- 체외수정시술 : 시험관내(배양접시)에서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성립되면 그 수정란을 자궁 내에 이식하는 배아이식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