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선 Jul 01. 2024

나의 안식처 순대국밥 집

나는 난임 3년 차에 이런 제목의 버킷리스트를 계획했다.


"애기랑 해보고 싶은 다섯 가지"


첫 번째는 내 품에 애기를 안고 분유를 먹이는 것이다.

그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당연하기에 생각도 못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은 나에게는 너무도 간절한 소망이었다.


두 번째 버킷리스트는 목마 태우고 동물원 구경 가기이다.

그동안 내가 동물원 갈 일은 거의 없었다. 와이프랑 연애할 때 에버랜드 한 두 번 간 것이 다였다.


세 번째는 바로 우리 애기 초등학교 운동회 때 아빠들 달리기에서 1등 하는 것이다.

그때쯤이면 내 나이 오십 대 중반이 되어, 삼십 대 아빠들과 같이 뛰어서 1등을 할 수 있을까 조금 걱정이 되지만 나는 기필코 해낼 것이라 다짐했다.


네 번째 버킷리스트는 바로 내 환갑 때 우리 애기와 같이 술 한잔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조금 고민이 필요하다. 내가 환갑이면 우리 애는 중학생인데 미성년자랑 술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 그냥 와이프 없을 때 딱 소주 한잔만 하기로 다짐했다.


다섯 번째는 우리 애기 결혼할 때 양가 부모님 대표로 축가 불러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다섯 번째는 진짜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우리 애기가 내 나이에 결혼하게 된다면 내 나이 구순이 될 텐데... 그때까지 정신줄 놓지 말고 꽉 부여잡고 버텨야 하는데...


내가 이러한 버킷리스트를 생각한 장소는 바로 집 앞에 있는 순대국밥집이다. 나는 시험관 시술 피검사 다음날에는 항상 혼자 이곳을 방문했다.

난임 시술을 6년 동안 열일곱 번 했으니 이곳에 혼자 온 게 족히 열 번은 넘은 것 같다. 이곳은 그냥 참 편했다.


예전에 스페인 투우 관련 책에서 '퀘렌시아'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투우장 한쪽 구석에는 사람들에게는 안 보이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구역이 있다고 한다. 이곳을 퀘렌시아라고 부는다. 스페인어로 안식처라는 뜻이다.

나의 난임 기간 동안의 퀘렌시아는 바로 이 순대국밥집 었다.

이 집에 오면 항상 참이슬 한 병과 공깃밥 하나 그리고 얼큰한 돼지국밥을 시켰다. 그리고 마치 다람쥐가 양 볼 가득히 물고 있는 도토리 뱉어 내듯이 내 가슴속 고민들, 바람들을 소주 한잔 마실 때마다 한 개씩 뱉어 내었다. 그 도토리 중 하나가 바로 애기 랑 해보고 싶은 다섯 가지 버킷리스타였다.

이 국밥 집에서는 우울한 생각도 많이 했었다.


중학교 동창 주우영과 정종규가 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얘네들과 가끔 술 한잔을 하면 참 즐겁기 그지없었다. 나의 난임 과정도 다 안다. 간혹 시험관 과정을 묻고는 위로도 많이 해줬다. 참 고마운 친구들이다. 술자리에서도 나를 배려해서인지 애들 얘기도 일부러 안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배려를 알아차린 나에게는 가끔씩은 튀어나오는 그 친구들의 애기들 얘기가 더욱 생생히 잘 들리는 것은 왜일까?

종규는 서른세 살에 결혼해서 서른여섯에 애기를 낳았다. 가끔 애기 사진을 보여주는데, 지 엄마를 쏙 빼 닮았다고 말하면 종규는 그게 기분 나쁜지 항상 반반씩 닮았다고 우기고는 했다.

어릴 적 국민학교 시절 녹색 어머니들처럼 아침 일찍 횡단보도에서 깃발을 들고 애들 통학 가이드도 해봤다는 자랑은 세 번은 넘게 들은 것 같다.  

딸내미가 발레를 배워서 다리 찢기를 잘한다는 자랑도 했다. 딸내미가 밥을 잘 안 먹을 때면 '아빠 소원이니 한 숟가락만 먹자'라고 말하면 그제야 잘 받아먹는다는 자랑도 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우영이는 나보다도 두 달이나 늦은 마흔한 살 되던 해 1월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허니문 베이비로 나를 새치기하듯 그해에 애기를 낳았다. 애기는 지 아빠를 쏙 빼닮았다. 우영이는 얼마나 좋은지 그 말만 하면 히죽히죽 웃으며 '아고! 엄마를 닮아야 예쁜데'라고는 말했다. 딸내미가 영어 유치원을 다녀서 자기보다 영어를 잘한다고 했다. 엄마가 해준 밥은 잘 안 먹고 자기가 해준 밥만 맛있다고 하면서 잘 받아먹는다는 자랑을 하고는 했다. 참 부러웠다.

그런 친구들이 부러워지면 들면 왕만두 같은 순대 덩어리를 우걱대면서 소주잔을 목구멍에 털어버리곤 했다.

 이렇게 나만의 퀘렌시아인 이 순대 국밥집에서 나는 남과 비교하면서 소주 한잔 하고, 혼자 슬퍼하면서 한잔 하고, 나중에는 술 한잔하니 더욱 슬퍼져서 또 한잔 하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인가는 순댓국 뚝배기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던 적도 있다. 그때 순대국밥 사장님이 뒤에서 들썩거리는 내 어깨를 본 것일까 '서비스예요'라고 속삭이듯 말하며 풋고추 한 무더기와 갓 삶은 수육을 살며시 밀어놓고 간 적도 있다.

나는 나만의 안식처에서 감정의 찌꺼기들을 마구마구 배출하였다.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도 희망이 생기고 힘이 솓았다.

이 순대 국밥집에서의 쉼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이 글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순대국밥집에서 나는 시험관 실패할 때마다 와이프를 어떻게 위로해줘야 할까 고민했다. 시험관 실패의 원인을 생각했다. 그 결과를 기록했다. 시험관에 대해 공부하였다. 그리고는 좌절감, 분노감, 허무감을 차가운 소주 한잔으로 시원하게 털어버리려고 참 많이도 애쓰고는 했다.


나의 안식처는 순대 국밥집이다.


                               (순댓국밥 집 혼술)

이전 12화 점쟁이의 예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