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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선 Jun 10. 2024

점쟁이의 예언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인 이정재가 관상가로 나오는 송강호에게 던진 질문이다.


나도 송강호 같은 관상가를 만난다면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게 딱 한 가지 있다.

이 난임 동굴을 얼마나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그 끝은 있기나 한 것인지, 있다면 그 끝을 마주한 내 얼굴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인지. 그 하나가 정말 궁금할 뿐이었다.


이식 후 피검사 전까지 또다시 인고의 열흘 중이었다.

예전보다 장마가 일찍 찾아왔다. 창문에 후드득 거리는 빗소리에 잠이 오지 않았다. 우두득거리는 총각김치에 막걸리를 사발로 들이켜니 체증이 쑥 내려갔다. TV에서는 대사를 거의 외우다시피 한 영화 관상을 또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대사처럼 나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몇 년 후면 50살인데, 그때는 내 옆에 누가 있을까?

와이프랑 복순이는 있을 것 같은데... 우리 아기도 있을까? 그러면 유치원 다닌 나이일 텐데...

정말 이거 하나는 해보고 싶다. 유치원 안 간다고 울고불고하는 우리 아기를 달래며 볼에 굿바이 뽀뽀를 하고 노란색 유치원 버스에 태우는 것. 너무 평범한가?

나의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막걸리 먹고 주정의 나래가 펼쳐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 나는 갑자기 안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유동인구가 많은 동네 사거리마다 있는 현수막 광고들 중 하나가 눈에 쏙 들어왔다.


'막 신 내린 총각 보살'

'신점/사주/타로 전문'

'연애운, 궁합, 택일, 작명, 풍수 전문' 등


술 먹고 영화 관상을 괜히 봤는지 자꾸 이 광고들이 눈에 밟혔다.

내가 왕이 될 상인 지는 궁금하지도 않고, 딱 5년 후의 내 나의 표정이 어떤지만 알면 되는데...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났다.  

그런데 그런 혹 하는 내 마음을 내 이성이 방해했다.

나는 공대 출신에 소수점 하나까지 꼼꼼히 봐야 하는 엔지니어다. 모든 것을 데이터로 얘기하는 직업인데 점이 맞을 확률이라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제일 망설이게 하는 이유는 와이프였다. 와이프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다. 그런 와이프 덕분에 신부님 주례로 결혼식도 성당에서 했다. 그런데 내가 만약 점을 보러 간 게 와이프한테 걸리는 날이면 난 집에서 쫓겨날게 안 봐도 뻔했다.

또다시 어떡할까 고민하는 내 마음을 내 머리가 합리적인 이유를 대며 설득한다.


'그냥 신문에 오늘의 운세 보는 거야. 괜찮아. 와이프한테 안 걸리면 되잖아.'

'OK' 그래서 이성적으로 다섯 가지 기준을 세우고, 딱 이번 한 번만 재미 삼아 보기로 했다.


1. 점집에서 난임 얘기는 절대 안 한다.

2. 딱 이 말만 한다. '5년 후가 궁금하다'

3. 부적이나 삼신굿이나 돈 들어가는 것은 절대 안 한다.

4. 사주에 애가 없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바로 욕을 한다.

5. 와이프한테는 점 봤다는 것을 절대 말하지 않는다.


이제 어디서 점을 볼까 고민하는데, 예전에 우리 어머니가 친구들이랑 같이 갔던 점집이 아주 특이했다는 말이 기억났다.

점집 간판이 아귀찜 식당이라고 씌어있다고 했다. 듣기로는 20여 년 전에 아귀찜 식당에서 주인아줌마가 서빙을 하다가 갑자기 신빨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바로 그 자리에서 간판도 안 바꾸고 아귀찜에서 점집으로 업종 전환을 했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마치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내용같이 아주 신기했다.


장소도 알아봤겠다 이제는 가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막상 가려고 하니 정말 걱정되는 것 한 가지 때문에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내 사주에 애가 없다고 하면 어쩌나?'

'50살에도 아기가 없다고 하면 어쩌나?'


이러한 말을 들을까 무서웠다. 또다시 망설이며 고민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그리 말할 확률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상식적으로 내 나이 때면 애가 중, 고등학생일 텐데, 애 얘기를 한다 치더라도 입시나 학업 얘기나 할게 분명했다.

점집이 있다는 시장 복판을 아귀찜 간판을 찾으면서 한참을 걸었다. 삼복더위에 걷기만 해도 땀이 뚝뚝 떨어졌다. 힘들어서 그런지 갑자기 또 청승맞은 생각이 들었다.


'아 이렇게 찜통 날씨에 내가 찾아가는 곳이 아귀찜으로 위장한 점집이 아니라, 입덧 심한 와이프가 먹고 싶다고 하여 찾아가는 아귀찜 맛집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드디어 간판을 찾았다. 빛바랜 파란색 글씨로 정말 '아귀찜 전문점'이라고 써져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다섯 가지 유념사항을 머릿속에 새기고 점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옛날 시장 선술집 분위기가 물씬 났다. 낡아빠진 나무 식탁 대 여섯 개가 보였다. 신문지로 도배한 벽에는 요새는 볼 수 없는 괘종시계가 걸려있다. 주방은 그릇대신 책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어서 오세요'


식당 가면 항상 듣는 인사를 어느 여자분이 한다.

나이는 환갑을 넘은 것 같고 이목구비는 막 찬물로 세수한 것처럼 뚜렷했다.

생각했던 무당옷 같은 것이 아닌 식당 주인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메모지에 써서 달라고 하였다. 점값은 선불 만오천 원이라고 했다. 내 얼굴을 쓱 한번 보더니 왼손을 달라고 한다. 그러더니 꽉 부여잡았다. 이제부터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어머니한테 들었다. 말이 엄청나게 빨라서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전혀 못 듣는다고 했다.

이제 시작한다. 그리고 갑자기 반말을 한다.


"우리 재선이는 76년생 용띠구나. 그동안 힘든 일을 참 잘도 극복했구나'


어찌나 말이 빠른지 겨우 알아들었다. 귀를 쫑긋 세우며 다시 정신을 부여잡는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듣기 시작했다.


"우리 재선이가 조만간 애기를 낳겠구나.

많을 때 애가 생기겠구나."


그리고 그 후의 말들은 하나도 들리지가 않았다.

아니 내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애를 낳는다고 했다. 갑자기 느닷없이 시작하자마자 애를 낳는다고 말한 것이었다. 일분정도 혼자 말하는 것을 끝내고 질문할 거 있으면 하라고 한다.

나는 바로 물어봤다.


"아니 선생님 제 나이가 마흔셋인데 제 또래들은 애가 중학교 다닐 나이인데 제가 지금 애를 낳아요?"


점쟁이가 말했다.



"나는 모르지. 보이는 걸 어쩌노.

애기 기저귀 갈고 있는 우리 재선이 모습이 보이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나올뻔한 것을 꾹 참았다.

더욱이 우리 재선이라고 반말로 얘기를 하니 마치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 같았다. 삼신할머니 같았다.


점집을 나왔다. 여전히 햇살 뜨거웠다.

나는 마치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처럼 태양빛이 쏟아져내리는 시장 한복판에서 두 손을 치켜들고 소리쳤다.


"나 드디어 아빠가 된다.'


며칠 후 피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나는 폭우를 뚫고 겨우 출근을 했다. 그날은 호우경보가 발령 중이었다. 나에게는 너무도 좋은 날씨가 아닐 수 없었다.

퇴근 무렵 전화로 와이프에게 피검사 결과를 들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그 해 장마는 끝났다.

그리고 이어진 가을장마도 아무 일 없이 끝났다.

그다음 해의 장마도 마찬가지였다.

다음다음 장마 즈음에는 와이프가 자궁에 물이 차서 착상이 어렵다는 진단까지 받았다.


'아니 물 많을 때 임신 한다며?'


점쟁이의 물 임신 예언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져 갔다.

그렇게 나는 다시 난임 동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외친다.


'내가 아빠가 될 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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