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또 한 소리를 해댄다.
한 번만이라도 우리 강아지 복순이 발톱을 잘라주란다. 개 아빠가 그 정도는 해줘야 되는 것이 아니냐면서...
맞는 말이다. 나도 정말 그러고 싶다. 그러나 나는 못하겠다. 그 단풍잎 꼬다리 같은 복순이 발톱이 잘 보이지가 않는다.
바로 노안 때문이다.
마흔 넘은 후부터 슬슬 가까운 것이 안보이더니 중반이 되니 거의 책 읽기도 힘들다. 서럽기 그지없다.
노안은 코로나가 한창인 난임 4년 차에는 절정에 다다랐다. 그러한 시국에도 우리는 시험관 시술을 진행했다.
난임 병원에서는 특히 접촉을 각별히 주의한다.
정액 채취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간호사는 빈 채취통을 자기 손에 들고 보여주며 통에 쓰인 이름이 와이프가 맞는지 확인시켰다. 맞다면 통에 사인하고 그것을 들고 채취실로 들어가라고 말했다.
그런데 간호사는 적당한 거리라고 생각했겠지만 통을 너무 내 얼굴 가까이 들이 내밀 었다.
적힌 이름이 확실하게 안보였다.
그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안경을 벗고 확인을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믿고 사인을 해야 하나'
안경 벗고 자세히 본다면 노안인 줄 분명 알 텐데, 노안 남편이 시험관시술하러 왔다고 간호사들끼리 수군거릴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냥 간호사를 믿고 사인하다가 만에 하나 와이프 이름이 아니라면 어느 드라마처럼 애가 바뀔 위험성도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생각한 것이 안경을 쓴 채로 조금씩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면서 적힌 이름을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해도 이름이 흐릿했다.
앞에 성씨는 맞는 것 같았다. '홍' 우리나라에 홍 씨가 흔하지는 않으니 맞을 확률 90%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채취통에 사인했다.
점점 더 알겠다. 노안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특히 1초라도 더 빨리 그 순간을 확인하고 싶을 때는 더 하다.
이식할 때는 와이프가 시술실 나오자마자 배아 사진을 항상 보여주고는 했다.
나는 더 빨리 보려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매번 안경을 머리 위로 까고 사진을 들여다봤던 것 같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와이프는 창피하다고 하면서 도로 초음파 사진을 뺏어버린 적도 여러 번이었다.
난임 병원은 항상 앉을자리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도 북적거리는데 그들이 나를 어떻게 봤을까 한다. 심각한 표정으로 안경을 이마 위로 까올리고 초음파 사진을 보고 있는 마흔다섯의 남편 모습.
부디 친정 아빠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난임 극복의 의지가 꺾일 수 있는 가장 큰 위기 역시 노화가 아닐까 한다.
특히 눈에 보이는 늙음이 그렇다. 노안은 말할 것도 없고, 흰머리, 눈가 주름, 깊게 파인 팔자주름 등등.
내가 늙었음을 확실하게 인지하게 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이렇게 늙었는데 시험관 시술을 하는 게 맞을까 내 몸 챙기지도 못하는데 계속하는 게 맞는 것인가'
가뜩이나 늙어가는 게 서러운데 애기 없는 서러움을 동시에 안으면 그 서러움은 배가 된다.
시험관 시술 10번째를 넘었을 때인 것 같은데 그때 갑자기 오십견이 왔다. 특히 오른쪽 어깨는 올릴 수도 없을 만큼 통증이 심했다. 정형외과나 통증 의학과 여러 군데를 가보고 한의원에서 침도 여러 번 맞았지만 통증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그러다가 격투기를 배우기 시작한 후부터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노화가 찾아왔다. 예전에 씌웠던 금니가 빠져 치과에 갔더니 뿌리까지 썩어서 이를 뽑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했다.
임플란트는 노인들만 하는 줄 알았는데 내가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를 뽑고는 잇몸이 아물 때까지 3개월을 기다렸다. 그동안 거울 속에 비친 이빨 빠진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어찌나 불쌍해 보였는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또 다른 노화가 슬며시 다가왔다.
이번에는 바로 탈모이다.
난 어릴 적부터 머리숱이 말총처럼 빼곡히도 많았다. 그런데 마흔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정수리가 슬슬 훤해지고, 이마는 점점 삼지창 모양이 되어갔다.
유전적인 모양으로 거의 이십 대부터 백발이라 염색을 하고 있는데, 탈모까지 생기면 절대로 안되었다. 난임 병원에서 정말 할아버지가 왔다고 그럴 것이 분명했다.
피부과를 갔다.
의사는 진료 후 중년 탈모라고 확실한 진단을 내리더니 탈모약 처방을 해주려고 몇 가지를 물어봤다.
"좋은 탈모약을 하나 처방하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늦둥이 계획 같은 거는 없으시지요?"
"늦둥이요? 왜요?"
나는 늦둥이라는 말에 움찔했다.
의사 설명으로는 탈모약의 한 종류인 피나스테리드라는 약은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을 해줬다.
"임신했거나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이 탈모약에 피부 접촉을 하거나 복용했을 경우 태아에서 기형이 발생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사용을 금해야 합니다."
의사가 친절해서 참 다행이었다. 이러한 부작용 설명을 안 해줬으면 큰일 날 뻔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머뭇거렸다.
'첫둥이도 없다고 해야 하나'
'시험관 시술 열 번이 넘어가고 있다고 해야 하나'
나는 그냥 조금만 더 버텨보겠다고 말하고 놀란 마음 부여잡고 병원을 박차고 나왔다.
이렇게 노로로 진입하는 초입에서 난임 극복 의지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당시 나의 큰 고민거리였다. 목구멍에 손을 넣어 이미 먹은 나이를 다 게워내고 싶을 정도로 속이 쓰렸다.
나는 그 후 눈에 보이는 노화를 조금이나마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초점 렌즈 안경을 했다. 탈모 샴푸를 했다. 저자극 염색을 했다. 치과 검진을 6개월에 한 번씩 했다. 뿐만 아니라 이십 대 때에도 안 입었던 후드티를 입었다. 청 잠바를 다시 챙겨 입었다.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는 없겠지만,
사라지는 젊은이의 흔적만큼은 꼭 움켜쥐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