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마지막 한 장만 넘기면 이에 와이프는 마흔이 된다. 노산 기준 나이인 35세를 훌쩍 넘기게 되는 것이다. 그 숫자의 무게를 와이프가 어떻게 느낄지 걱정이었다. 하지만 와이프는 걱정이 무색하게도 악착같이 난임 동굴을 빠져나오려고 애쓰고 있었다.
영양제는 기본이고, 매일 아보카도, 땅콩, 포도즙을 먹었다. 시험관 차수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추어탕을 세끼 내내 먹었다.
또한, 뚱뚱해서 착상이 안 되는 것 같다고 하면서 낮에는 필라테스를 배우고, 밤에는 복순이와 탄천에서 뜀박질했다. 자기 전에는 몸무게를 매일 재더니 계속 빠지고 있다며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와이프는 그해 마지막 시험관 시술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 같았다.
난임 4년 차, 12월 중순 채취 날이었다.
우리가 다니는 병원은 12월이 되면 병원 입구에 내 키보다 큰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해 놓았다.
그 트리는 카퍼레이드 할 때 뿌려진 색종이처럼 알록달록한 메모지들로 빼곡했다. 그 메모지마다 사람들의 손글씨로 눌러쓴 바람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바람을 응원하는 듯 태아 초음파 사진들도 붙어있었다.
‘찰떡이야 와줘서 고마워’
‘쌍콩이 들아 빨리 보고 싶어’
‘하느님 정말 감사합니다. 예쁘게 잘 키우겠습니다.’
'우리 아기 건강하게 잘 있다가 엄마 만나자'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언제인가부터는 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봐도 아무리 봐도 별다른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난임 병원에서 만난 크리스마스트리는 볼 때마다 항상 설렜다.
난자 채취를 위해 시술실로 들어가는 와이프를 배웅한 후 나는 트리에 매달려 있는 메모지를 꼼꼼히 하나씩 다 읽어 내려갔다. 모두 착상에 성공한 사람들이 쓴 글이었다.
‘저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부러웠다. 그런데 나도 메모지에 한 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모지에 오늘 채취한다는 글은 전혀 찾을 수 없어서 나는 쓸까 말까 주저주저했다.
그러다가 문득 일곱 살 때가 생각났다. 우리 집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한 기억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같다.
그때 나와 내 동생은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을 너무 받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동화책에서 읽은 데로 똑같이 했다. 갖고 싶은 선물을 쪽지에 써서 일주일 전에 트리에 매단 양말 속에 넣어두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겨우 받침 없는 한글만 겨우 깨친 내가 대표로 쪽지에 선물 이름을 써서 양말 속에 집어넣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정말 자고 일어나니 정말 그 선물이 트리 앞에 짠하고 놓여있었다.
산타할아버지가 소원을 이루어주었다고 우리는 방방 뛰며 어찌나 기뻐했는지 모르겠다.
40년 전 어릴 적 그 산타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나는 메모지에 소원을 적기로 했다. 뭐라 쓸까 잠시 고민했다. 빨리 고민하고 빨리 소원을 적어야 했다. 많은 사람이 트리에 메모지와 초음파 사진을 계속 붙이고 있는데 다 여자들이었다.
남편이 소원 붙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기에 나도 아무도 안 보는 틈에 얼른 붙일 심산이었다.
메모지 제일 앞에는 갖고 싶은 선물 이름처럼 우리 아기 이름을 썼다. 그다음에는 내 바람을 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혹여나 우리 아기가 걱정하는 게 있어서 아직 안 오고 있는 것 인가해서 그 걱정 하나도 하지 말라고 당부의 말을 썼다.
그리고 두 손 모아 산타할아버지에게 기도하고 트리 제일 한가운데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얼른 메모지를 붙였다.
하지만 나와 내 동생 소원을 이루어준, 나의 일곱 살 때의 그 산타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것일까.
마흔네 살. 그 해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난임병원 크리스마스트리)
(산타할아버지에게 쓴 소원 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