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터 플랑크튼>
서울을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 어떤 대단한 문장을 빚어내고 싶어서 이토록 처연하게 굴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곳까지 흘러왔는지 여전히 선명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서울에서는 이 복잡한 마음을 글로 정리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발길 닿는 대로 떠나온 이곳에서, 머릿속을 부유하는 생각들을 하나씩 꺼내어 본다.
최근 드라마 <미스터 플랑크톤>을 봤다. 해양 생태계 최하위에서 존재하지만 그들이 없으면 지구의 생명체는 멸종하고 만다. 주인공 해조는 자신을 비천한 존재라 여기는 시한부 인생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너무나 많다. 그는 말한다. "목적지를 정하지 말라. 목적지를 정하고 가다 길을 잃으면 방황이 되지만, 목적지 없이 가다 길을 잃으면 방랑이 된다"고.
방황과 방랑의 차이는 한 끗 차이다. 돌아올 곳이 있느냐 없느냐. 만약 나에게 돌아올 곳이 있다면, 내가 헤매는 모든 시간은 길을 찾는 '방랑'이 된다.
지난 일 년,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했던 사주를 네다섯 번이나 보러 다녔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어떻게든 버텨낼 이유를 찾고 싶었다는, 간절한 생존 신호였다. 퇴근 후 스터디카페로 달려가며 매일 밤 이직과 탈출을 꿈꿨다. 그러면서도 업무의 완벽함을 포기하지 못했다. 비효율과 부조리가 가득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 신념과 순수를 조금씩 깎아내야 했고, 나를 지키기 위해 역설적으로 나를 지우는 법을 배워야 했다.
하지만 그 모든 '탈출 장치'들이 무산되었을 때, 한동안 공허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이 불경기 속에서도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도전을 이어가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는 사실 말이다.
최근 선배와의 대화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내가 조급함에 발을 동동 구르던 이 길을 선배 또한 여러 번의 굴곡을 거쳐 지나왔다는 것을. 나의 가능성은 여전히 무궁무진한데, 나는 왜 그리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을까. 언젠가 도달할 곳이라면 굳이 오늘 울며 서두르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답은 찾아올 텐데 말이다.
방황이 참 길었다. 하지만 모든 질문의 답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어떤 선택이 나를 미소 짓게 하는지, 내 강점은 무엇인지, 내가 얼마나 근사한 사람인지.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어 스스로를 설득하기까지가 오래 걸렸을 뿐이다.
이제는 조금 편해지기로 했다. 뚜렷한 기한을 정해두지 않고, 목적지 없는 방랑을 시작하려 한다. 이것은 이제 방황이 아닌 방랑이다. 내가 돌아올 곳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원할 때 여행을 떠나고, 웃고 싶을 때 웃으며, 때로 견디기 힘들면 엉엉 울기도 할 것이다. 내가 딛는 모든 땅이 나를 찾아가는 방랑의 길이 되길 바란다. 거창한 목표보다는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는 것, 일도 사랑도 우정도 현재의 나에게 온전히 쏟아붓는 것.
나의 방랑은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