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붙하는 공무원과 언론
- 네 그렇습니다. 저도 매생이 참 좋아합니다. 굴국에 넣고 매생이 굴국으로 먹으면 정말 맛있죠. 미운 사위에게 매생이국 끓여준다는 말이 있다고도 하는데요. 펄펄 끓는 매생이국을 그릇에 담아도 김이 잘 나지 않아서 뜨거운 지 잘 알 수가 없는 특징을 잡아낸 말입니다. 미운 사위가 뜨거운 매생이를 한 숟가락 입 안에 넣으면 굉장히 고통스럽겠죠. 보복의 의미를 담은 말이라고 하는데요. 저도 뜨거운 매생이국 먹다가 입 안을 덴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참 맛있는데요. 너무 뜨거워서 고통스러운 ㅎㅎㅎ 그런 적이 많았죠. 저는 ㅓ+ㅣ 메생이인줄 알았는데. ㅏ+ㅣ 매생이였더라고요. 여태껏 잘못 알고 있었는데 이번 취재에서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 매생이는 겨울이 제철인데요. 해양수산부가 1월의 수산물로 송어와 함께 매생이를 지정했습니다. 해수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매생이는 순우리말로 ‘생생한 이끼를 바로 뜯는다’라는 의미를 가진 가늘고 부드러운 해조류이며, 우주식량으로 지정될 만큼 영양이 풍부하다. 매생이는 겨울이 제철인 굴과 함께 국을 끓여 먹거나, 무침, 전으로 먹으면 특유의 감칠맛이 어우러져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이렇게 말이죠.
- 저도 그러면 좋겠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NASA는 매생이를 우주식품으로 선정한 적이 없습니다. 매생이가 우주식품으로 선정됐다는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을 해봤는데요. NASA 홈페이지와 학술논문 아카이브 등 다방면으로 확인을 해봤지만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수부에 확인을 요청했죠. 그랬더니 이틀 동안 해수부가 자료를 찾아보고 나서 답을 해줬습니다. 해수부는 “NASA가 매생이를 우주식품으로 선정했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라고 알려왔습니다. 해수부는 앞으로 매생이가 NASA 우주식품에 선정됐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 해양수산부는 2013년 11월에도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낸 적이 있습니다. 당시 보도자료를 보면 <식물성 고단백 식품인 매생이는 우주식량으로 지정될 만큼 영양적으로 우수한 식품으로 철분과 칼슘, 요오드와 같은 무기염류가 풍부하고 비타민A와 비타민C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부침, 맑은 탕, 무침으로 드시면 더욱 좋다.> 이런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운영하는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홈페이지에서는 2008년에 관련 글이 작성된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식물성 고단백 식품으로 우주 식량으로 지정된 적이 있을 정도로 몸에 좋은 강알칼리성 식품이라고 한다.> 이런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언론보도를 찾아봤는데요. 2006년 국제신문이 보도한 <휴게소 음식 지존들>이라는 기사에서 <매생이는 주로 남도지방에서 채취되는 파래와 유사한 해초류. 특히 매생이는 우주식량으로 지정될 정도로 영양가가 많은 데다 요즘이 제철이다.>라는 내용이 언급됩니다. 이게 최초 사례인데요. 정작 NASA가 매생이를 우주식량으로 지정했다는 기사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결국 출처도 근거도 없는 내용이 정부 보도자료에 인용되고 이게 다시 언론에 인용되면서 정설처럼 받아들여진 허위정보 확산 루트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네. 스스로를 NASA에 근무하는 과학자라고 소개한 작가가 펴낸 청소년 대상 과학도서가 있는데요. 여기에 <한국의 매생이가 면역력을 높여 준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NASA에서 우주식품으로 선정되기도 했어.>라고 언급됩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NASA에서는 매생이를 우주식품으로 선정한 적이 없습니다. 다각도로 취재를 해봤는데요. 해당 도서는 작가의 NASA 근무 여부 등에 논란이 있어서 절판된 걸로 확인됩니다. 책 내용도 신뢰할 수 없습니다. 해수부도 이 책의 내용을 매생이가 우주식품으로 선정된 근거로 주장을 했었는데요. 이런 논란이 있었다고 하니까 바로 수긍하고 주장을 철회했습니다. 이 부분은 추가 취재 중인데 결과가 나오면 다시 한번 소개해 드리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 매생이 관련 보도에선 ‘면역력을 높여준다’, ‘영양가가 많다’, ‘몸에 좋은 강알칼리성이다’ 이런 이유로 우주식량으로 선정됐다고 보도합니다. 그런데 우주식품의 가장 큰 문제는 안전성입니다. 변질되지 않도록 방사선으로 살균하고 오래도록 저장할 수 있게 동결건조하고 이런 노력을 많이 기울였죠.
2008년 우리나라 최초로 이소연 박사가 우주로 갈 때 한국식품연구원이 우주식품 10종을 개발했습니다. 밥·김치·볶은 김치·고추장·된장국·라면·홍삼차·녹차·수정과·생식바였는데요. 당시 러시아 의생물학연구소로부터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먹을 수 있는 우주식품으로 공식 인증을 받았습니다. 영양가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우주인들이 지구에서 먹던 음식을 그대로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주로 우주인을 보내는 나라는 자국 우주인들이 입맛을 잃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우주 식품을 개발하는 것이고요. 영양이나 기능이 특출해서 우주식품으로 선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우주인들이 안전하게 입맛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음식이 최고인 것이죠. 그런데 이게 음식의 효능을 따지는 우리 정서가 겹쳐지면서 ‘면역력을 높여주는’ 우주식품 이런 식으로 허위정보가 과장이 된 셈이죠.
- 헬스조선은 매생이 효능에 대해 이렇게 보도합니다. <매생이는 특히 빈혈기 있는 여성에게 좋다. 매생이의 칼슘 함량은 100g당 574mg이다. 우유의 5배 수준이다. 철분 함량도 100g당 43.1㎎으로 우유보다 40배 정도다. 철분이 부족하면 어지러움 등 철 결핍성 빈혈 증상이 쉽게 나타난다. 실제로 가임기 여성의 경우 생리 기간 동안 철분 부족으로 인해 어지럼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매생이 섭취를 통해 몸속 철분을 보충하면 어지럼증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매생이는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제격이다. 식이섬유를 풍부하게 함유하기 때문이다. 장의 연동운동을 돕고, 배변 활동을 원활하게 해 준다. 칼륨 역시 다량 함유해 체내 콜레스테롤, 나트륨 등을 감소시켜 준다.>
칼슘, 철분 함량이 매우 높은 걸 알 수 있습니다. 식이섬유도 풍부하고요. 그런데 중요한 건 우리가 매생이를 한 끼에 얼마나 먹느냐는 거죠. 매생이굴국 4~5인분에 들어가는 매생이가 400g 정도입니다. 우유는 물처럼 마실 수 있지만 매생이국은 그럴 수 없죠. 음식으로 약 같은 효과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그냥 맛있게 건강하게 즐기면서 드시면 그만입니다.
- 스스로 검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게 우리 사회에 꽉 들어차 있는 병폐 중 하나인데요. 어딘가에서 어떤 내용이 발표되면 그걸 확인하지 않고 그냥 복사하고 붙여 쓰는 겁니다. 복붙 저널리즘이라고 조롱당하기도 하는데요. 언론계에선 정부에서 내놓는 보도자료는 관행적으로 신뢰할만하다고 여깁니다. 여태까지는 또 공무원들이 검증해서 자료를 내놨고요. 그래서 정부에서 내놓는 자료는 믿을만하다고 여기고 추가로 검증을 하지 않는 건데요. 이번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과거에 누군가가 잘못된 정보를 기반으로 보도자료를 만들었고, 이걸 주기적으로 꺼내서 재활용하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공직사회에서 추가적으로 검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죠. 허위 정보가 나갔는데 그 상황에서 아무도 그게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정설로 굳어지는 겁니다. 매생이가 우주식량으로 선정됐다는 해수부 보도자료는 2013년, 2014년, 2023년 이렇게 재활용됐습니다. 언론 보도를 살펴봐도 수십 개의 기사가 매생이를 NASA가 선정한 우주식품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 일단 정부부처는 대외적으로 공표되는 자료, 특히 보도자료 같은 걸 낼 때 철저하게 출처를 확인해야 하겠고요. 자료를 낼 때 근거를 함께 공개하도록 규정을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게 경력 사칭, 허위 이력과 관련된 부분이기도 한데요. 채용, 임용할 때도 이력과 관련해 철저히 검증하는 제도가 도입이 된다면 이런 사칭과 관련된 부분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언론도 보도하기 전에 내부에서 팩트와 관련해 철저하게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