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겁박하기
중대재해처벌법은 2021년 1월 제정이 됐고 2022년 1월 시행이 됐습니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연료공급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하청 노동자 김용균 씨 사망사고가 계기가 돼 산재 사망 유가족들이 단식투쟁을 펼치면서 국회를 압박한 끝에 통과가 됐죠.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매년 2000명 이상 산업재해로 숨지는 현실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아 사업주의 책임을 더 강화하는 취지로 법이 만들어지게 된 겁니다. 법 제정 당시 공포 후 1년 뒤 시행하는 조건이 달려 있었고,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2024년 1월 27일부터 시행한다는 유예가 있었습니다. 그 유예기간이 다 지나서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이 된 것이고요.
중소기업과 정부 여당은 소규모 사업장들이 아직 준비가 덜 됐다고 주장합니다. 법이 소규모 사업장에 적용되면 중대재해가 일어난 사업장은 사업주가 처벌받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작은 사업장이 망하게 되고, 결국 노동자도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일부 처벌이 두려운 소규모 사업체 사업주들은 회사를 접을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중대재해법 1조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사업 또는 사업장,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을 운영하거나 인체에 해로운 원료나 제조물을 취급하면서 안전ㆍ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 등을 규정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3조는 <상시 근로자가 5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의 사업주(개인사업주에 한정한다. 이하 같다) 또는 경영책임자등에게는 이 장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일단 5인 미만 사업장, 사장님 빼고 종업원이 네 명인 사업장은 이 법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상시 근로자 5인부터 법 적용 대상이 되는 게 맞습니다. 음식점이든 미용실이든 업종과 상관없이 종사자수가 법 적용 대상을 가르는 기준입니다.
일단 이 법은 중대재해가 일어난 사업장의 사업주가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가 발생하게 했을 때 처벌하도록 돼 있습니다. 장사 잘하시던 빵집 사장님이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될 것처럼 공포를 조성하는 보도가 많은데요. 이건 너무 나간 겁니다. 실제로 숙박 및 음식점업에서는 산재 사망사고가 잘 일어나지 않는 편입니다. 위험한 기계를 다루지도 않고 유독물질을 다루지도 않으니까요.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재해조사대상 사망사고 통계에 따르면 사망자 459명이었고 이중 숙박 및 음식업점에서는 1명이 나왔습니다. 건설업이 241명, 제조업 124명으로 두 업종에서 80% 이상 사망자가 발생하죠. 음식점업에서 발생하는 산재 사망사고는 대부분 사업장 외 교통사고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고용부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음식점업 사고사망의 발생형태를 분석한 결과 109건의 사고 중 사업장 외 교통사고가 97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음식 배달에 나선 오토바이 등 이륜차 사고가 주를 이룹니다.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무조건 처벌하도록 규정돼 있지는 않습니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등 안전 및 보건을 확보하기 위한 제반 의무를 이행했다면 중대재해가 발생했더라도 처벌되지 않습니다. 또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의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위반과 종사자의 사망 사이에 고의 및 예견 가능성, 인과관계 여부 등을 수사를 통해 확인하고, 고의 및 예견 가능성, 인과관계 등이 명확한 경우에만 처벌받게 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은 중대재해법 적용대상이 아닙니다. 5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이 되는 거고요. 이것저것 알아보는 게 막막하신 사장님들은 정부가 하고 있는 2024 산업안전 대진단에 참여해 컨설팅을 받을 수 있습니다. 1544-1133 상담센터로 전화를 하시면 절차를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PC나 모바일로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안전관리자'는 50인 이상 사업장, '안전보건관리담당자'는 20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배치 의무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제조업, 임업, 하수 환경 폐기업 등 5개 업종에만 안전보건관리담당자를 선임하도록 돼 있습니다. 20인 미만 사업장은 별도의 인력 배치 의무는 없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는 <사업 또는 사업장의 안전ㆍ보건에 관한 사항에 대해 종사자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마련하고, 그 절차에 따라 의견을 들어 재해 예방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그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여 이행하는지를 반기 1회 이상 점검한 후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는 조문이 있습니다. 또 작업 중지, 근로자 대피, 위험요인 제거 등 대응조치와 중대재해를 입은 사람에 대한 구호조치, 추가 피해방지를 위한 조치가 담겨있는 매뉴얼을 만들어 보관하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일종의 여론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중소기업계와 자영업자들의 표심을 공략하는 거죠. 통계청의 사망재해 현황 통계 2022년 치를 분석해 봤는데요. 2022년 산재사망자는 2223명입니다. 이중 5인 미만 사업장에서 572명이 산재로 사망했고요. 5인 이상 50인 미만이 800명입니다. 전체 산재 사망사고의 62% 정도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거죠. 이래서 노동계를 중심으로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업종별로는 건설업과 제조업에 사망사고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정부로서는 소규모 건설업과 제조업 등 취약 업종에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시사점이 나오죠. 그런데 재계의 반대가 있고, 여당이 재계의 편에서 유예 연장을 주장하니까 고용노동부가 부화뇌동하는 겁니다. 역대 정부에서 고용노동부는 산재 사망사고 줄이기를 최우선 역점과제로 놓고 있었거든요. 법이 제정된 게 3년 전이고 이미 시행이 예정돼 있었으면 정부는 시행 준비를 했어야죠. 이제 와서 준비가 덜 됐다고 하는 것은 직무 방기 또는 무능을 자임하는 것 밖에는 안 되죠.
우리나라의 산재사고 사망 만인율, 근로자 1만 명 가운데 산재 사망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건데요. 2022년 기준 0.43입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보다 사고 사망 만인율이 높은 나라는 콜롬비아(1.80), 코스타리카(0.97), 멕시코(0.75), 터키(0.60) 밖에 없습니다. 큰 사업장이든 작은 사업장이든 최소한 출근했던 노동자들이 살아서 퇴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