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임금체불한 사장님 체포해도 되는 거임?
1.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일반인이 불법체류자를 체포하고 있다는 내용이 알려졌는데요. 아무리 불법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이라도 일반인이 체포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데요. 일단 보도 내용부터 짚어보죠.
- 경향신문이 보도한 내용인데요. 지난 27일 자 <극우 정당 출마자, 전국 돌며 이주노동자에 강압적 사적 검문·체포 자행>이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한 군소정당 지역구에 출마한 A후보가 불법체류자를 사적으로 검색하고 체포한다는 내용인데요. 보도에 따르면 A후보는 자신이 이끄는 단체 회원들과 함께 전국 각지를 돌며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을 붙잡거나 이동을 막은 뒤 경찰에 넘기고 있다고 합니다. 길을 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불러 세워 억류하거나, 이들의 거주지·사업장을 찾아가 붙잡는 방식인데요. A후보 등은 이주노동자를 잡은 뒤 경찰에 신고해 신병을 넘기고 있습니다. ‘무면허 오토바이’ 등을 사유로 신고한 뒤 체류자격을 확인하게 하는 경우도 잦고요. 이들은 이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해 유튜브·틱톡을 통해 공개하기도 합니다.
2. 동영상도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체포는 강압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는데요. A후보가 올린 한 영상을 보면 외국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갑니다. 이때 A후보 일행이 외국인들을 막은 채 신분증을 요구합니다. “야 일로와, 일로와”라며 신분증을 요구하고 인도에 강제로 앉히고요. A후보 일행은 외국인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주변을 둘러싸고 목덜미나 어깨를 잡아 누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영상에서 이들은 외국인을 바닥에 눕힌 채 가슴을 누르며 “솔직하게 얘기하면 봐줄게” “비자 없잖아, 우리가 확인했어”라고 말합니다. 외국인은 “전 비자 없어요”라고 답하고요. 이들은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외국인을 강제로 붙잡고 있었습니다.
3. 비자가 없다고 하는 것을 보면, 취업 비자가 없다는 이야기일 테고. 취업비자가 없이 일을 하거나 체류기간을 넘겨서 국내에 체류하고 있으면 불법 아닙니까?
- 불법입니다. 출입국관리법 94조 7호는 체류자격이나 체류기간의 범위를 벗어나서 체류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취업비자 없이 취업활동을 하거나 부여된 체류기간을 넘겨서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외국인은 이 조항의 적용 대상이 되는 거죠.
4. 그렇다면 합법적인 비자가 없이 일을 하거나 체류기간을 넘겨서 한국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 그러니까 불법 체류 신분이 되는 건데요. 아무리 불법 체류자라고 하더라도 일반인들이 타인을 막 체포해도 되는 겁니까?
- 이들은 외국인 체포 활동이 불법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A 후보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현행범은 누구나 체포할 수 있다고 법에 나와 있고, 불법체류자들은 불법을 저지르는 현행범”이라며 “번호판도 없고 면허증도 없지 않나. 불법 체포 감금의 요건이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 “저희는 경찰과 항상 같이 활동하기 때문에 무단으로 폭행하거나 하지 않는다”며 “(경찰은) 우리에게 감사해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5. 현행범체포는 누구나 할 수 있게 법에 규정돼 있다. 불법체류자는 불법을 저지르는 현행범이다. 그러니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다. 이렇게 요약되는데 사실인가요?
- 일단 현행범체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헌법 12조는 신체의 자유에 대해 규정합니다.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죠.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지 않고는 체포ㆍ구속ㆍ압수ㆍ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않도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현행범인인 경우와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사후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이런 규정입니다. 현행범은 영장 없이도 체포할 수 있다는 뜻이죠.
형사소송법 211조와 212조는 현행범인과 현행범 체포에 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211조는 "범죄를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하고 난 직후의 사람을 현행범인이라 한다"라고 규정합니다. 또 준현행범도 규정하고 있는데요. 1. 범인으로 불리며 추적되고 있을 때 2. 장물이나 범죄에 사용되었다고 인정하기에 충분한 흉기나 그 밖의 물건을 소지하고 있을 때 3. 신체나 의복류에 증거가 될 만한 뚜렷한 흔적이 있을 때 4. 누구냐고 묻자 도망하려고 할 때 현행범으로 간주합니다. 212조에선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6. 그렇다면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일반인 누구나가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위해선 행위의 가벌성, 범죄의 현행성·시간적 접착성, 범인·범죄의 명백성 이외에 체포의 필요성 즉, 도망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야 하고, 이러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현행범인 체포는 법적 근거에 의하지 아니한 영장 없는 체포로서 위법한 체포에 해당한다.>고 나와있습니다. (2011도 3682 판결)
A후보 일행은 지나가는 외국인을 불러 세우고 강제로 앉힌 뒤에 비자 있냐고 물어보는데요. 이건 범인·범죄의 명백성을 갖추지 못한 행위죠. 누가 봐도 범죄를 저지르고 있거나 범죄를 저지를 직후인 경우가 현행범에 해당되는데요. 이들은 그냥 의심만으로 외국인을 체포하고 있는 것이죠. 불법체포에 해당할 소지가 다분한데요. 형법 276조는 체포와 감금을 금지하고 있는데요. 사람을 체포 또는 감금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고 신체를 수색한다면 이것도 처벌 대상입니다. 형법 321조는 사람의 신체,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자동차,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을 수색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해져 있습니다.
경찰도 단순 불법체류자, 그러니까 다른 형사사건과 연루되지 않은 사람을 말하는데요. 이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할 때는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가 나타날 때만 현행범으로 체포한다고 합니다. 경찰용 스마트폰에 외국인 체류정보 모바일 조회시스템이 탑재돼 있는데요. 다른 혐의로 외국인을 검거했을 때 이 시스템으로 조회를 한 뒤에 불법체류 혐의가 드러나면 현행범으로 체포한다는 거죠. 그냥 길 가는 외국인 붙잡고 어이 이리 와봐 이런 식으로 단속하지는 않습니다.
7. 시민단체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내고 있다고 하는데요?
- 이주인권단체들은 이주민 혐오 정서에 기반한 ‘사적 제재’가 확산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지난해 7월 경기도 포천에서는 10대 청소년 4명이 한 이주노동자를 “불법체류자로 신고하겠다”며 집단 폭행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최근에도 이주노동자들이 자주 찾는 식당·공장 등에 ‘도박을 한다’ ‘마약을 한다’ 등 허위신고를 하거나, 신고를 빌미로 돈을 뜯는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유럽 극우파들이 이주민 추방을 부르짖으면서 하는 행동과 비슷한 양상인데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격언이 있잖아요. 외국인들도 우리나라에 왔으면 우리나라 법을 따라야겠죠. 출입국관리법도 예외는 아닌데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비자를 발급받았으면 그 조건을 잘 지켜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취업비자를 받지 않고 일하거나, 아니면 취업허가 조건과 다르게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단 말이죠. 그런데 일부 사업주는 이런 불법체류 신분을 악용해서 임금을 약속보다 적게 주거나 떼어먹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합법적인 취업비자를 받고 일하다가 임금을 체불당해 소송을 진행하던 외국인 노동자가 떼인 돈을 받기도 전에 출국하거나 불법 체류자로 전락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고요. 임금체불로 노동청에 진정을 넣은 외국인들을 사업주가 불법체류로 신고해 강제출국 당하는 사례도 나타납니다.
8. 정책으로 풀지 못하니까 불법체류자가 늘어나고, 이들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이 사적 제재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우리나라는 인구절벽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고, 지금도 지역 산업현장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공장과 농장을 돌릴 수 없다고 호소하는 곳이 많습니다. 외국인들을 다 제나라로 쫓아낸다고 해서 그 빈자리에 내국인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죠. 외국인력 정책을 보다 정교하게 설계하고 집행해서 불법체류자가 늘어나는 걸 막아야 되겠습니다. 일반인의 사적 제재는 강하게 엄단해 외국인 혐오가 발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하겠고요. 이거 가만히 두면 현상금 사냥꾼이 횡행하는 야만의 시대가 다시 올 수도 있는 그런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주노동자와 공생하지 않으면 산업이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민간인이 외국인을 불법체류 혐의로 현행범 체포할 수 있나.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한국인이 해외에서 현지 민간인들에게 강제로 체포되고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는다고 생각해 보시면 명확해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