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팩트체크] 10가구 중 4가구 자녀 김치 안 먹어?

잘못 베끼거나, 확인하지 않는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

by 선정수

1. 최근 김치 산업 실태조사 보고서가 나왔는데요. 좀 충격적인 내용이 들어있었어요. 10 가구 중 4 가구에서 아이들이 김치를 안 먹는다. 이런 내용인데요. 이것부터 좀 짚어보죠.

- 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최근 2023년 김치산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이 보고서 내용을 가지고 많은 언론들이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연합뉴스가 <10 가구 중 4 가구 "자녀가 김치 안 먹어"…'매운 음식 못 먹어'>라는 제목으로 가장 먼저 보도했고요. SBS Biz가 <10 가구 중 4 가구는 "자녀가 김치 안 먹어"... 사 먹는 가구 더 많아>라는 제목의 기사로 연합뉴스와 대동소이한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그 뒤로 굉장히 많은 언론사들이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2. 그렇다면 정부와 공공기관이 낸 보고서를 토대로 수많은 언론이 보도를 한 건데요. 잘못될 리가 있을까요?

- 요즘에 아이들이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 하잖아요. 어린이집에서도 급식을 하고요. 그런데 급식 메뉴에 꼭 김치가 들어갑니다. 어린이집 유치원에서도 깍두기 담그기 이런 체험도 하고요. 덜 맵게 김치 만들어서 아이들 먹도록 합니다. 그런데 10 가구 중 4 가구 자녀들이 김치를 안 먹는다는 것은 과도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 확인을 해봤습니다. 보고서를 직접 찾아봤는데요. 보고서 내용은 이렇습니다. <가정에서 김치를 전혀 먹지 않는 가족 구성원은 ‘자녀’가 40.9%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는 2021년 기준 응답률(37.2%)보다 3.7% p 상승한 것으로 자녀들의 김치 미 섭취 성향은 더욱 심화된 것으로 파악됨.>

김치 설문.png 2023 김치산업 실태조사 질문지

3. 그렇다면 언론들이 잘 인용을 한 것 아닙니까? 가정에서 김치를 전혀 먹지 않는 가족 구성원은 자녀가 40.9%다. 아.. 아니군요. 가정에서 전혀 김치를 먹지 않는 구성원은 자녀가 40%이면 다른 가족들 60%가 김치를 전혀 먹지 않고 나머지 40%인 자녀가 김치를 먹지 않는다. 좀 헷갈리는데요. 뭡니까?

- 헷갈리죠. 그래서 설문조사 질문지를 찾아봤는데요. 귀댁에서 가정 내 식사할 때 김치를 반찬으로 내어 놓으면 가족들이 먹는 편입니까?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모두 먹고 있음으로 응답하면 다음다음 문항으로 뛰어넘고요. 한 명이라도 먹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다음 문항으로 갑니다. 다음 문항은 귀댁에서 함께 살고 있는 가족(본인 포함) 가운데 김치를 가정 내에서 전혀 먹지 않는 분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해당되는 가족을 모두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습니다. 선택지는 본인, 배우자, 본인 또는 배우자의 부모, 자녀, 기타 동거인(형제, 자매 등), 없음. 이렇습니다.

그래서 나온 대답이 자녀 40.9%, 본인 15.3%, 배우자 12.7% 이런 식입니다. 이 결과를 가지고 10 가구 중 4 가구의 자녀는 김치를 먹지 않는다라고 해석하면 안 되는 거죠. 아이들이 억울합니다.


4. 그럼 올바른 해석은 뭔가요?

- 이 문항의 응답자는 743명입니다. 자녀가 전혀 김치를 먹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40.9%니까 응답자 수로 따지면 304명이 됩니다. 그렇다면 전체 설문조사 대상자였던 3148명을 놓고 보면 9.6% 정도를 차지하게 됩니다. 전체 응답자 중에 1인 가구라서 자녀가 없는 집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요. 올바르게 표현하자면 "집에서 김치를 전혀 먹지 않는 자녀가 있는 가구는 열 집 중 한집 정도다"라고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5. 김치를 즐겨 먹는 아이들이 도매금으로 넘어갈 뻔했네요. 보고서 내용이 많아 보이던데요. 다른 재미있는 김치와 관련된 이슈들이 있을까요?

- 가정 내 김치 반찬 섭취 정도를 묻는 물음이 있습니다. '귀댁은 가정 내에서 식사를 할 때 김치를 반찬으로 내어 놓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인데요. ‘반드시 김치를 반찬으로 내어놓고 있음’이 66.0%의 비중으로 가장 높습니다. ‘때때로 김치를 반찬으로 내어놓고 있음’은 29.2%인데 비해 ‘거의 김치를 반찬으로 내어놓고 있지 않음’은 3.7%, ‘전혀 반찬으로 내어놓고 있지 않음’의 경우는 1.1%에 불과합니다. 전체 응답자 중 김치를 반찬으로 내지 않는 집은 5% 미만이라는 걸 볼 수 있죠.

소비자의 대다수인 78.8%는 가정에서 식사할 때 반찬으로 내어놓는 김치를 본인과 함께 가족 모두가 먹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본인 포함하여 가족 중 일부만 먹고 있음’이라고 응답한 비중은 19.2%, ‘본인 포함하여 가족 모두 거의 먹지 않음’과 ‘반찬으로 내어 놓지만 본인 포함 가족 모두 먹지 않음’은 각각 1.3%, 0.7%에 그쳤습니다. 이 항목만 봐도 10 가구 중 4 가구 자녀가 김치를 먹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걸 알 수 있죠.


6. 역시 한국인의 식탁엔 밥과 김치죠. 그런데 김치를 안 먹는 가족들은 왜 먹지 않는 걸까요?

-가정에서 김치를 먹지 않는 가족이 있는 경우 그 이유를 조사한 결과,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해서’가 30.8%로 가장 비중이 높았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밑으로는 매운 것 잘 못 먹으니까 그럴 수 있죠. 그다음으로는 ‘김치 냄새를 싫어해서’가 16.6%, ‘김치가 맛이 없어서’ 16.5%, ‘염분(나트륨)이 많을 것 같아서’ 14.1%, ‘집에서 식사하지 않고 외식(급식)만 하기 때문에’ 11.5% 등의 순으로 조사됐습니다.


7. 그런데 김치 소비량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 같은데 이번 조사에 포함돼 있나요?

- 과거에 비해 가정 내 김치 섭취량이 변화 없다고 응답한 비중은 51.3%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과거보다 김치를 먹는 양이 늘고 있다고 응답한 소비자 비중은 6.0%에 그쳤습니다. 줄고 있는 추세라고 응답한 비율은 42.7%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조사는 아니지만 보건복지부 국민영양통계에 따르면 1인당 김치소비량은 2000년 74.2kg 에서 2020년 32.2kg으로 줄었습니다. 20년 만에 반토막이 난 셈이죠.


8. 어릴 적 부모님들이 김장을 100포기씩 담았던 기억이 나는데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김장 잘 안 담그는 것 같던데요. 조사에 들어있나요?

- 소비자의 가정 내 김치 조달 방법에 대한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상품김치, 그러니까 시중에서 판매하는 김치를 구입한다는 응답 비중이 30.6%로 가장 높았습니다. 그다음으로는 별도의 가구를 구성하고 있는 가족(부모, 형제)으로부터 얻은 경우가 28.8%였고요. 친척이나 주위의 지인 등으로부터 얻은 비중이 15.0%였습니다. 집에서 김치를 직접 담그는 비율은 24.7%에 그쳤습니다. 10 가구 중 3 가구 정도도 김치를 담그지 않는 거죠. 가구원 수별로는 상품김치 구입 비중이 1인 가구(32.8%)가 2인 가구 이상(29.6%) 보다 높은 걸로 나왔고요. 반대로 직접 담그는 경우는 2인 이상 가구(30.8%)가 1인 가구(10.6%)보다 3배가량 높다고 나왔습니다.

소비자가 김치를 구입하는 경로를 살펴보면요. 온라인을 통해서만 구입한다는 응답이 29.1%, 온라인을 통해 구입하지 않고 마트나 시장 등에서 구입한다는 응답은 29.2%,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를 이용하는 비율이 41.6%로 나타났습니다. 소비자가 상품김치를 구입할 때 고려하는 사항은 ‘맛’(34.5%), ‘가격’(19.1%), ‘원산지’(16.4%) 등의 순이며, 수입 김치를 먹어 본 경험이 있는 소비자는 전체의 51.7%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수입 김치를 먹어 본 소비자는 수입 김치가 국산 김치에 비해 맛, 색, 양념, 보관성에 대해 부정적 평가가 많았으며, 향후 수입 김치 구입 의향은 전체의 13.2%에 그쳤습니다.


9. 김치를 가정에서 담그는 일이 앞으로도 줄어들 것 같은데요. 조사 결과는 어떤가요?

- 향후 김치를 직접 담그지 않고 국산 상품김치를 구입할 계획인 소비자 비중이 40.6%로 가장 높았습니다. 직접 담그는 양을 줄이고 국산 상품김치 구입물량을 늘릴 계획은 36.8%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김치를 직접 담그고 국산 상품김치를 구입하지 않을 계획인 소비자 비중은 10.7%, 직접 담그는 양을 늘리고 국산 상품김치 구입 물량을 줄일 계획은 10.6%에 그쳤습니다. 고령화 현상이 한몫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질수록 김치 담그는 비중도 계속 줄어들지 않을까 싶네요.

아이 키우시는 아버님들이 주말에 아이 데리고 김치 만들기 체험 한번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깍두기 같은 건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들도 체험 시간에 뚝딱 만들어 올 정도로 쉽거든요. 황금 레시피도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다 나옵니다. 저도 주말에 무 튼실한 걸로 두 개 사다가 깍두기 담가 먹어야겠네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팩트체크] 제 발로 응급실 들어오면 경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