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언론의 복붙병(病)
1. 한국에서 태어난 자이언트판다 푸바오가 중국으로 돌아갔어요. 비가 오는 날씨에도 많은 팬들이 몰려들어서 푸바오를 배웅했는데요. 귀여운 모습으로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터라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았단 말이죠. 그런데 오늘 팩트체크 주제는 푸바오입니까?
- 네 푸바오가 중국으로 돌아가는 이유에 대해 사실과 다른 보도가 넘쳐나서 짚어보려고 합니다. 조선일보 지난 3일 자 <“굿바이 푸바오”… 강철원 사육사, 모친상에도 오늘 중국행> 기사를 살펴봅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해외에서 태어난 판다는 짝짓기를 위해 만 4세가 되기 전에 중국으로 가야 한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 외에도 국민일보, 한국경제, 세계일보, 중앙일보 등 많은 언론사들이 푸바오가 중국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CITES 협약으로 지목했습니다. 푸바오는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중국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고 처음 중국으로 가는 것이죠.
2. 많은 언론사들이 공통적으로 그렇게 표현하면 믿을만한 것 아닐까요?..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사례를 봐왔죠. 이번 것도 사실과 다른 겁니까?
- 저도 참 이 팩트체크 하면서 굉장히 답답한 부분인데요. 국내 유수의 언론사들이 한 군데도 아니고 굉장히 많은 수의 언론사들이 동시에 사실과 다른 정보를 쏟아낸단 말이죠. 푸바오가 중국으로 가는 이유로 지목된 CITES 협약문 원문을 확인해 봤습니다. 정식 명칭은 'UN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입니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을 분류해 놓고 거래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내용입니다. 푸바오는 자이언트판다인데요. 부속서 1에 포함된 멸종위기종입니다. 수출국과 수입국 양쪽에서 허가서를 받아야만 거래를 할 수 있고 수출과 수입이 종의 생존에 해롭지 않다고 판단돼야 합니다. 이 허가가 굉장히 까다롭기 때문에 멸종위기종 동물이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수입 또는 수출되는 게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CITES 협약문 어디에도 <해외에서 태어난 판다는 짝짓기를 위해 만 4세가 되기 전에 중국으로 가야 한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특정 조건에 있는 특정 종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정 자체가 없습니다. 이런 식의 보도는 사실과 다른 것이죠.
3. 그럼 협약문에도 없는 내용을 왜 언론사들은 버젓이 기사에 적어놓은 건가요?
- 몇 차례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우리나라 언론을 관통하고 있는 '복붙 관행'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군가 눈에 띄는 보도를 가장 먼저 내놓으면 다른 언론사들이 이 보도를 가져다가 자기 회사 기자 이름을 달고 기사를 내보냅니다. 정상적이라면 다른 언론사 보도 내용에 대해 확인을 거치고 데스킹을 거친 다음에 사실에 부합하는 기사만 발행을 해야 되는 거죠.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언론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다. 조회수 경쟁, 속보 경쟁 이런데 매몰돼 있어서 다른 언론사에서 특출 난, 눈길을 잡아끄는 기사가 나왔다고 하면 그냥 가져다 씁니다. 자체 확인 노력은 거의 없는 편이죠. 특히 각 언론사의 닷컴 부서 또는 자회사들이 써내는 기사들 가운데 이런 게 많습니다. 누군가 처음 잘못 써놓은 기사를 베끼고 또 베끼는 거죠. 기자들이 자기가 쓰는 기사 한 줄 한 줄의 무게를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확인하고 쓰지 않는다는 말이죠.
4. 그럼 푸바오가 중국으로 가게 된 이유는 뭡니까?
- 경향신문이 잘 보도했는데요. 이 신문은 3일 자 <푸바오 귀환에 들썩거린 중국… 외교부 “한국 사육사에게 감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푸바오의 귀환은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 보호 협약에 따른 한·중 양국의 협의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전에는 판다를 외교의 일환으로 외국에 선물했으나 1981년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가입 이후 임대 정책으로 전환했다." 이렇게요. 판다를 해외로 보낼 때 아예 주는 게 아니라 임대형식으로 빌려주는 중국 정부의 정책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푸바오의 어미인 아이바오와 러바오는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임대가 추진됐는데요. 중국야생동물보호협회와 삼성물산이 '자이언트 판다 보호연구 협력 추진에 관한 협의서'를 체결했습니다. 이 협의서에 임대하는 판다 한 쌍으로부터 태어나는 새끼 판다는 성 성숙기가 되는 만 4살 이전에 돌려보낸다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중국 정부 방침에 따라 맺어진 양측의 계약에 따라 푸바오가 중국으로 가게 되는 거죠.
5. 그렇다면 CITES 협약에 따라 판다를 돌려보낸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군요. 그럼 푸바오의 가족 판다들도 중국으로 가게 되는 건가요?
- 푸바오의 부모인 아이바오와 러바오는 임대기간 15년으로 계약을 맺었고요. 2031년까지 국내에 머물 수 있는 거죠. 판다 수명이 25년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임대 연장을 통해 여생을 한국에서 다 보낼 수도 있다고 합니다. 푸바오 동생인 루이바오와 후이바오는 푸바오와 마찬가지로 중국으로 가야 합니다. 동생 판다들은 2023년 7월 태어났으니까 만 4살 이전에 중국으로 보낸다고 하면 2027년 7월 이전까지는 중국으로 간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6. 푸바오는 국내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었는데요. 이유는 역시 귀여움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그렇습니다. 판다가 귀엽지 않았으면 진작에 멸종했을 거라는 이야기가 많은데요. 맞는 말입니다. 푸바오 팬 중 많은 사람들이 귀여운 외모와 행동 때문에 푸바오에 열광했던 거잖아요. 한국일보 최문선 문화부장이 지난달 11일 <귀여움이 푸바오만 구원할 때>라는 칼럼을 썼는데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불가항력이었다. 대왕판다 푸바오에 푹 빠진 것은.(중략) 곧 중국으로 떠나는 푸바오가 마지막으로 관람객을 만난 날 밤 에버랜드 라이브채팅창에 모인 수만 명과 함께 눈물을 글썽이다가 문득 내가 가증스러워졌다. 40년 넘게 갖가지 동물들을 살뜰히 먹고 입고 누려 놓고 또 다른 동물과의 이별엔 센티해진 이중성이라니."라고 적었습니다.
이어서 "동물들의 멸종과 멸종위기를 초래한 인간이 귀여워 보이는 순서대로 줄을 세워 동물을 보호하는 것은 폭력적이며 치졸하다. 우연히 인간으로 태어났을 뿐인 인간은 너무 오래 동물들에게 제멋대로 굴었다. 어떤 동물은 내 동생이라 부르고 어떤 동물은 재미로 죽였다. 어떤 동물에겐 유기농 먹이를 주고 어떤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식재료로 취급했다. 어떤 동물을 위해선 의료보험을 들고 어떤 동물은 의학실험용으로 쓰고 버렸다."라고 지적합니다.
7. 그러고 보니 판다는 귀엽기 때문에 인기를 끌고, 귀엽지 않은 동물들은 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소비되는 것 같은데요. 동물에도 외모 지상주의가 적용이 되고 있는 것이군요.
- 사육곰 구조활동을 펼치는 '사단법인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는 푸바오와 관련된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에버랜드는 푸바오 열풍으로 번 돈을 동물에게 돌려라>는 제목인데요. 에버랜드 동물원 안에 판다 방사장이 두 곳 밖에 없어서 푸바오가 중국으로 가기 전 검역기간 동안 내실에만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했다는 내용을 전합니다. 에버랜드 동물원에 있는 내실이 대부분 지하에 있다고 하고요. 이 단체에 따르면 에버랜드를 운영하는 삼성물산 리조트부문의 2023년 영업이익은 푸바오의 인기에 힘입어 전년 대비 16.8% 증가한 661억 원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단체는 에버랜드가 푸바오로 벌어들인 돈을 동물원 동물 복지 향상에 사용하라고 주장합니다. 이 단체는 "푸바오 역시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번식한 사육 판다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판다를 포함한 동물원에서의 번식은 보전이라는 허울을 쓰고 귀엽고 어린 동물을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마케팅 수단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합니다. 이어 "최소한 지하에 있는 내실을 지상으로 올리고 방사장을 사용하지 못하는 동물이 에버랜드에 없기를 요구한다. 벌어들인 수익으로 당장 전시시설 개선 계획을 세워, 다음번 판다 번식 때에는 관람객들이 덜 불편한 마음일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주장합니다.
8. 동물권 단체들도 많이 등장했고, 일각에선 동물원 폐지 주장도 나오고 있잖아요. 우리나라 전반적인 동물권 실태는 어떻습니까?
- 아직 우리나라 동물권 운동은 반려동물, 그러니까 개 고양이 위주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동물학대나 유기 이런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요. 반려동물은 자격이 있는 사람이 키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게 시급해 보입니다. 동물원 동물은 열악한 동물원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 동물이 탈출한다거나, 경영 상태가 좋지 않은 동물원에서 갈비사자 이런 일도 있었고요. 왜 동물원이 존재하는지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면 동물원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추세로 보입니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야생동물과 인간의 관계 설정인데요. 아직도 곳곳에서 대규모 공약에 의한 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이게 희귀 동물의 서식지 파괴로 이어지거든요. 개발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지역발전을 내세우고 보전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 이런 문제도 있고요. 좀 더 활발하고 열린 토론이 진행돼서 사회적 합의가 시도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