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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Apr 12. 2024

[팩트체크] 헌법에서 자유를 뺀다?

국민의힘 개헌저지선 관련 발언 사실 확인

1.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했습니다일부 출구조사 결과는 범 야권이 200석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나오기도 했는데요여당이 100석 이상을 가져가면서 "개헌저지선을 확보했다"는 보도가 많았습니다오늘은 이 개헌에 관한 팩트체크를 해보겠습니다먼저 왜 100석 이상을 개헌저지선이라고 부르는지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개헌, 즉 헌법을 바꾸려면 여러 가지 절차가 필요합니다. 일단 헌법개정안을 제안해야 하는데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 발의로 제안할 수 있습니다. 민주당이 비례를 제외하고도 재적의원 300명의 과반이 넘는 의석을 확보했으니, 민주당 단독으로 개정안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국회 의결이 필요한데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통과됩니다. 이게 200석이죠. 범야권이 200석을 확보하게 되면 헌법개정안을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 결과 범야권은 189석을 획득했습니다. 여당의 협조 없이는 야권의 힘으로만 헌법개정안을 통과시킬 수 없는 것이죠. 일단 헌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되는데요. 유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헌법 개정이 확정됩니다. 그런데 유권자 과반수의 투표에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이라면 산술적으로 전체 유권자의 25%만 찬성해도 개헌이 확정되는 것이죠. 물론 유권자 과반수의 투표가 전제돼야 하는 것이지만요. 이번 비례대표 선거에서 더불어민주연합과 조국혁신당이 50.9%를 획득했거든요. 전국 투표율은 67%였고요. 

의미 없는 가정이긴 하지만 이번 선거가 개헌 찬반 국민투표였다면 개헌안은 충분히 가결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개헌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게 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겁니다. 그래서 '개헌 저지선'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고요.


2. 국민의힘은 선거기간 동안 개헌 저지선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는데요그러면서 '민주당이 헌법에 들어있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려고 한다이런 이야기를 했어요사실 확인을 해보죠.


-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헌저지선 확보를 호소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서 자유를 빼내겠다는 겁니다. 대한민국을 다른 나라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게 과장 같습니까? 문재인 정부는 실제로 그걸 추진하지 않았습니까?" 일단 사실여부를 확인할 대상은 이 발언인데요.

문재인 정부는 2018년 3월 개헌안을 발의했습니다. 당시 공개된 헌법개정안을 살펴보면 4조에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바탕을 둔 평화 통일 정책을 수립하여 추진한다."라고 돼 있습니다. 현행 헌법과 달라진 게 전혀 없습니다.


3. 문재인 정부가 발의한 헌법개정안에서 자유를 빼려는 시도가 없었다이런 결론인데요그렇다면 왜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자유를 빼려 한다고 주장했을까요?


- 2018년 1월부터 보수 유튜브를 중심으로 개헌 방향에 관한 가짜 뉴스가 횡행한 적이 있습니다. '공산화 개헌 추진', '결국 드러난 좌파적 헌법 개정안' 이런 내용들인데요. 2017년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가 내놓은 보고서를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자문위가 만든 보고서에는 현행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을 완수’한다는 내용이 빠졌습니다. 대신 ‘평등한 민주사회의 실현을 기본 사명’ ‘연대의 원리를 사회생활에서 실천’이라는 내용이 삽입됐습니다. 이를 두고 장제원 당시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이 정권이 왜 이렇게 국민 개헌을 걷어차고 졸속 개헌을 밀어붙이려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아마 대한민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려는 것이 문재인 정부 5년이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라고 논평했습니다. 그런데 이 자문위원회는 개헌 초안도 아니고 정부 초안도 아니었습니다. 이 보고서는 2017년 국회 개헌특위를 거친 뒤 최종 발표됐는데요. 당시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 8명이 참석했고, '참고용 의견서'라는 점이 공유됐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당시 자유한국당 개헌특위 위원이었던 정종섭 의원은 "자문위원단은 본래 개헌안을 만드는 것이 그 목적도 아니고 그럴 권한도 없는 것이므로 이는 소동에 불과하다. 개헌안을 만들 자격도 없고 부여한 것도 아니다."라고 직접 바로잡았습니다.     


4.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의원이 직접 바로잡은 건데요왜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에서 또 이런 이야기를 꺼냈을까요?


- 너무 수세에 몰리다 보니 100석 이상 확보를 위해 전략적으로 '개헌 저지선'을 부각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분명히 기록이 남아있고 보도가 많이 된 사실이거든요. 문재인 정부가 발의한 헌법 개정안에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현행 헌법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도 모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결과적으로는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민주당이 자유를 빼려고 한다. 문재인 정부는 실제로 그걸 추진했다>는 한 전 위원장의 말은 사실과 다릅니다.     


5. 이번 선거에서 범야권은 헌법개정안 단독 통과 가능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어요그런데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논의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제기돼 왔고헌법을 바꾸자는 논의가 실질적으로 진행이 됐었잖아요


- 현행 헌법은 1987년 제정됐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최초로 헌법이 제정되고 9번째로 개정이 된 헌법이라고 해서 헌법 제10호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1987년 제정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적으로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이를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해서 헌법을 바꾸자는 요구가 많았습니다. 1987년의 대한민국과 2024년의 대한민국은 굉장히 많이 달라졌잖아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담는 우리나라를 규정하는 게 헌법인데요. 바뀐 시대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그릇을 새로 만들자는 이야기죠.     


6. 지금 헌법은 만든 지 37년이 지났네요. 1987년의 대한민국은 군부독재가 막 끝난 상황이었고경제적으로는 개발도상국국제적 위상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형편이었죠그럼 현행 헌법이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시대상 딱 예를 들면 뭐가 있을까요?


-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지점이 바로 소통하지 않는 리더십, 국민에 귀 닫은 정부의 행태인데요. 이게 상당 부분 제왕적 대통령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돼 있다 보니 견제가 작동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민심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기능이 마비되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죠. 그래서 이 과도하게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자. 이런 내용이 한 축을 이룹니다. 우리나라의 정치 체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헌법을 바꿔야 하거든요. 단적인 예가 5년 단임제의 대통령 임기 제도인데요 현행 헌법은 장기간의 군사독재 경험을 반영해 대통령의 연임이 불가능하도록 설계했습니다. 또 다른 독재의 출현을 막겠다는 취지였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시민들의 역량이 커졌다는 것을 대통령 탄핵을 통해 이미 확인한 사례가 나왔고요.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 속에서 장기적 국가과제를 일관성과 연속성을 갖고 추진하기 위해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채택하자는 요구가 커졌죠. 잘하면 8년 못하면 4년으로 바꾸자는 것이죠. 여기에는 여야가 모두 동의하고 있는 부분이고요. 책임총리제, 이원집정부제 등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7. 기본권에 관해 새롭게 담자고 하는 내용도 많이 있는 모양인데요.


- 생명권 및 신체와 정신이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를 명시적으로 규정하자. 정보화 사회로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알 권리 및 자기 정보통제권을 명시하자는 정보기본권을 신설하자. 사회보장을 국가의 시혜적 의무에서 국민의 기본적 권리로 변경하자. 국민이 임신ㆍ출산ㆍ양육과 관련해 국가의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자는 내용이 토론되고 있습니다. 또 주거권을 신설해 모든 국민이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갖도록 하는 방안, 건강권을 신설해 건강에 관한 권리 보장을 높이고, 국가에 질병예방과 보건의료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지우는 내용도 검토되고 있었습니다. 어린이, 청소년, 노인 및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

해 복지정책의 대상이나 보호 대상으로만 규정하고 있었는데요. 이들 또한 독립된 인격주체로 존중하는 한편,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는 내용도 논의가 됐습니다. 안전권을 신설해 모든 국민은 안전하게 살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밝히고,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는 점을 명시하는 내용도 정부 발의 개헌안에 포함됐던 내용입니다.      


8. 22대 국회 임기 내 개헌 실현 가능성 어떻게 봅니까?


- 국민의힘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 때문에 개헌 논의에 응할 가능성이 굉장히 희박한 상황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가 2027년 5월까지 인데요. 22대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일어나면 4년 중임제를 시행하는 대신 윤석열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자는 주장이 나올 가능성이 굉장히 큽니다. 9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2026년 6월 예정돼 있기 때문에 이 선거에 맞춰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면 전국단위 선거 횟수를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역대 개헌 논의 특히 대통령제 개편 논의는 가까운 선거와 일정을 일치시키는 방향으로 항상 진행이 돼 왔는데요. 이렇게 되면 윤석열 대통령 임기를 1년 가까이 줄이는 효과가 있는 거죠. 국민의힘 입장에선 달가울 리 없는 제안입니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뭔가 큰 국면 전환을 노릴 상황이 있지 않는 한 개헌 논의를 먼저 꺼내거나 범 야권의 개헌 논의에 동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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