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80대 치매노인에 합의금 요구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1. 오늘 주제는 최근 보도를 통해 짚어 본 절도사건에 관한 팩트체크입니다. 절도와 관련돼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 많이 있나요? 오늘 짚어볼 사건은 무엇인가요?
- 대구 수성구에서 80대 여성이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화단에서 꽃을 꺾었다가 절도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는 내용을 많은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이 지역 한 아파트에서 10년 넘게 거주해 온 80대 여성 입주민 A 씨는 지난 3월 아파트 화단에 핀 노란색 꽃 한 송이를 꺾었는데요. 꽃이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경찰에 신고했다고 합니다. 경찰은 CCTV를 통해 A 씨를 비롯해 입주민이 아닌 노인 2명 등 모두 3명을 용의자로 특정했습니다. 이들이 꺾어간 꽃은 모두 합쳐서 11송이였다고 합니다.
A 씨는 당뇨와 치매 초기 증상을 겪고 있으며, 경찰에 “꽃이 예뻐서 꺾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관리사무소 측은 A 씨 가족에게 KTX 무임승차 시 30배에 이르는 벌금을 부과하는 규정 등을 언급하며 합의금 명목으로 35만 원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뉴스1 보도에 따르면 A 씨 가족은 사과와 함께 관리사무소에 돈을 전달해 합의했고, B 씨 등 2명은 합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이달 초쯤 해당 사건을 검찰에 넘겼는데요. 절도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지 않아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사건이 접수되면 송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2. 할머니와 그 가족이 많이 놀라셨겠네요.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화단에서 꽃 한 송이 꺾었다고 절도죄에 해당되나요? 좀 무서운데요.
- 기사 댓글에도 이런 내용이 많이 달려있었는데요. 내가 관리비 낸 돈으로 화단을 꾸몄는데 예뻐서 한 송이 가져갔다고 그게 절도죄가 성립되냐는 주장이었습니다. 내 돈으로 꾸민 화단에서 내가 꽃 한 송이 가져갔다. 이게 핵심인데요. 내가 내 텃밭에서 기른 작물을 따먹었다고 해서 절도죄가 성립되지 않죠. 그건 내 텃밭은 온전히 내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파트 화단에 심은 꽃은 입주자가 돈을 내서 관리사무소가 심은 것이죠. 누구의 소유일까요? 이런 걸 공유재산이라고 합니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개념이죠. 내 지분도 들어있는 것 내가 가져가겠다는데 뭐 어떻냐고 물으실 수도 있지만, 꽃을 공유하는 다른 사람들이 누군가 가져가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겠죠.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화단의 꽃은 입주자가 가져가도 된다고 규칙을 정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허락 없이 공유재산을 마음대로 가져간다면 절도죄가 성립되는 겁니다.
3. 아파트 화단에 열린 모과나무 열매를 따가는 사람들도 많이 봤습니다. 이런 것들도 절도에 해당되나요??
- 네 마찬가지입니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우리 아파트 화단에 맺힌 열매는 입주자가 따가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허락하지 않는 한에는 무단으로 화단의 열매를 따가면 절도에 해당됩니다.
가로수에 맺힌 열매도 마찬가지인데요. 실제로 가로수로 심은 은행나무 열매를 장대를 이용해 털어서 40kg 정도 채집해 갔다가 입건된 사례가 있습니다. 산에 열린 도토리나 산나물 이런 것들을 산주 허락 없이 채취해도 임산물 절취죄가 성립하죠.
중요한 것은 물건의 소유주에게 허락을 받았는지 아닌지입니다. 주인이 없어 보이는 것 같아도 사실은 다 주인이 있단 말이죠.
4. 그럼 꽃을 따간 할머니는 처벌을 받는 건가요? 검찰로 넘어가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 대구지검은 지난 12일 A 씨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가) 고령에다 사안이 경미하고 반성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재판에 넘기지 않겠다는 이야깁니다.
기소유예란 검찰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을 뜻합니다. 검사는 피의자의 범죄가 인정되더라도 ①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②피해자에 대한 관계, ③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④범행 후의 정황을 참작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재판에 넘기지 않기 때문에 유죄 선고가 될 수 없죠.
5. 해당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합의금으로 피해액의 30배를 요구했다고 하는데요. 합의를 하면 처벌을 받지 않게 되나요? 30배에는 무슨 근거가 있는 건가요?
- 앞서 말씀드렸듯이 절도죄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라서 피해자가 합의를 해도 사건이 취하되지 않습니다. 폭행죄·존속폭행죄, 과실치상죄, 협박죄·존속협박죄, 명예훼손죄 및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돼 있어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 재판에 넘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폭행사건이 벌어지면 합의를 시도하는데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사건이 종결됩니다. 그런데 절도죄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기 때문에 일단 사건이 접수되면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의사를 밝혀도 사건이 종결되지 않습니다.
영남일보 보도에 따르면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절도죄로 신고되면 벌금 100만 원가량이 나올 수도 있다"며 합의금 명목으로 35만 원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관리사무소 측은 KTX 무임승차 시 30배에 이르는 벌금을 부과하는 규정 등을 거론하며 이 같은 합의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꽃을 꺾은 잘못을 인정한 노부부는 사과와 함께 10만 원의 합의금을 관리사무소에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소식을 뒤늦게 접한 할머니의 딸이 관리사무소를 찾았고, 그제야 관리사무소 측은 "합의금은 내도 되고, 안 내도 된다"며 말을 바꿨다고 하는데요.
평소에 꽃을 따가는 사람이 많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관리사무소가 좀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6. 할머니가 처벌을 받지 않아서 다행이긴 한데요. 씁쓸함이 남네요. 다른 주제를 알아보죠. 이것도 절도에 관한 이야긴데요. 요즘 굉장히 많아진 무인점포에서 절도사건이 자주 일어난다고 하는데요.
- <"걸리면 100만 원"… 무인점포, 절도 늘자 '합의금 장사'> 지난 11일 자 한국경제 기사 제목입니다. 전국 무인매장 수가 10만 개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청소년·노인 소액절도도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합니다. 그런데 일부 업주들은 절도가 적발되면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보도 내용을 보면요. <일선 경찰관은 “무인점포 때문에 치안 공백이 생길 정도”라고 호소했다. 서울 은평경찰서 관계자는 “매일같이 80대 노인의 과일 2000원어치 절도 사건 등이 접수되는데, 다른 범죄와 마찬가지로 절도범 CCTV 동선을 파악하는 등 수사에 상당한 시간을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보도합니다.
또 <일부 업주가 ‘합의금 장사’를 점포 주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는 의혹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절도범이 미성년자이면 경찰의 도움으로 부모에게 연락해 합의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라고 귀띔했다. 14세 이상 중·고등학생에게 학교 통보를 압박하며 물건값의 최소 10배에서 최대 수백 배의 합의금을 받아낼 때도 많다는 것이다. 일선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매일 경찰서에 사건을 가져오고 합의해 공갈·협박을 하는 게 아닌지 의심되는 업주도 있다”라고 전했다.> 물론 모든 무인점포 업주가 이렇지는 않겠지만요. 무인점포에서 일어나는 절도도 대단히 많은 게 사실입니다.
7. 아이가 무인점포에서 물건을 훔치는 건 분명히 잘못된 일인데요. 그걸 빌미로 부모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뜯어내려고 하는 것도 올바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합의금을 달라는 이유는 뭔가요?
- 일단 물건을 훔쳐갔으니까 물건 값을 배상하는 것은 기본이겠고요. 기존에 입었던 다른 피해에 대해서도 배상을 받겠다는 겁니다. 물건을 훔치다 걸린 사람이 한두 번 훔쳤겠느냐 이런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고요. 높은 배상금을 내걸면 절도 심리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들어있습니다. 정신적인 피해에 대한 위자료 성격도 들어있고요.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일단 절도사건으로 경찰에 접수되면 합의를 하든지 안 하든지 사건은 진행되게 돼 있습니다. 물론 합의 여부에 따라서 진지한 반성 이런 식으로 양형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는 있지만요. 합의를 한다고 해서 사건이 없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란 말이죠.
그런데 일부 업주들은 어린이, 학생들이 절도를 저질렀다가 적발되면 학교에다 알리겠다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서 합의금을 요구하는 상황인 거죠.
8. 늘어나고 있는 무인점포 절도사건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요?
- 무인점포에서 절도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가게에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니 자제심을 잃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인데요. 신용카드나 QR코드로 신원을 확인해야 문이 열리는 보안시스템을 사용하면 절도 범죄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리고 가게에 들어온 이상 물건을 훔쳐서 나갈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일부 무인점포 업주들은 비용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보안시설을 설치하는데 비용이 든다는 건데요.
심야시간까지 무방비 상태로 가게를 방치하면서 범죄를 유발하고, 사건 처리는 공권력에 떠넘긴다. 이건 긴급한 치안 수요가 발생했을 때 치안 공백을 유발할 수 있어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배상금 장사를 한다 이런 식으로 인식이 악화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선 무인점포에서는 자체 보안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정부가 지원을 해주는 것을 모색해 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고요. 아예 무인점포를 열기 위해서 갖춰야 할 요건을 정하는 것도 국회 차원에서 논의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좀 더 신경 써서 교육할 필요도 있고요.
이 내용은 KBS 오늘아침1라디오(2024.06.14)를 통해 방송됐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