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메산골에서 살던 경진이와 아빠는 엄마를 만나 호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호주의 자연과 사람, 문화를 만나기 위한 여행이었죠. 비행시간은 10시간 하고도 20분이나 걸렸습니다. 9살 초4에겐 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꼬맹이는 생각보다 강하더라고요. 목적지는 시드니였는데요. 밤 비행기를 타고 떠났는데요. 평소 잠자는 시간을 지나친 꼬맹이는 잠이 들고 싶었지만 비행기 승무원들이 이것저것 나눠주고 면세품을 파느라고 불을 꺼주지 않아서 잘 수가 없었죠. 그래서 좀 짜증을 냈답니다.
그래도 무사히 비행을 마치고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어요. 에어포트 링크 지하철을 타고 시드니 시내로 들어왔죠. 아직 이른 시간이라 체크인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호텔에 짐을 맡겨두고 다시 걸어 나왔어요. 아까 봐뒀던 하이드파크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경비행기가 연기로 하늘에 글씨를 쓰고 있었어요. 눈부시게 파란 하늘에 흰 연기구름으로 무언가를 쓰고 있었는데요. 길을 가던 시드니 사람들도 흥미롭게 무슨 글씨를 쓰는지 지켜보고 있었어요. 비행기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하늘에 글씨를 새겼죠. marry me라고 쓴 다음에 ZJJ라고 썼죠. "결혼해 줄래 ZJJ야?" 이런 뜻인 것 같아요. 누군가가 ZJJ에게 청혼을 하는 모양입니다. 찐좐좐?
청혼 문구를 비행기로 그리는 건 정말 로맨틱한 일이죠. 경진이가 좋아했던 아보카도 샌드위치. 저는 알러지성 비염 때문에 약을 사먹었죠. 호주흰따오기는 정말 신기했어요.
신기한 구름글씨를 구경하고 하이드파크로 향합니다. 시드니 중심가에 위치한 정말 큰 공원이에요. 큰 나무도 많고 굉장히 신기한 새들도 많습니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호주흰따오기, noisy miner, 초록 앵무새(정식 명칭은 뭘까요?)가 먼저 눈에 띄었고요.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제비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호주흰따오기는 커다란 핀셋 같은 부리로 잔디밭을 두드려서 지렁이를 꺼내 먹었습니다. 노이지는 지나가는 사람들 머리를 공격했고요. 이 모습이 굉장히 신기했던 경진이는 용기를 내서 후드를 뒤집어쓴 다음에 노이지가 사람을 공격하는 장소로 향했습니다. 우리의 예상대로 노이지는 경진이 머리를 노렸는데요. 경진이는 후덜덜한 모습으로 돌아왔죠. "내 머리 앞으로 날아갔어. 발톱으로 머리도 건드렸어. ㅠㅠ" 라고 말합니다.
새와 교감하고 싶은 경진이는 공원 곳곳에 '새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을 발견하고 조금은 실망했어요. 마구마구 먹이를 주고 손바닥에 먹이를 올려놓고 새를 유혹하고 싶었는데요. (경진이가 생각하는 교감 끝판왕은 손바닥에 먹이를 올려놓으면 동물이 와서 받아먹는 것이랍니다.) 준법정신이 매우 강한 어린이는 망설인 끝에 먹이를 주지 않기로 했어요. 대신 주변에 피크닉 나온 호주 사람들의 음식을 호주흰따오기가 훔쳐먹는 걸 보며 반응했죠, "저 도둑놈들... 저거 저거... ㅉㅉㅉ"
하루 종일 하이드파크에서 새를 관찰한 뒤에 호텔로 돌아왔어요.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발바닥이 아플 지경이었죠. 스마트폰 앱으로 확인해 보니 1만 9000걸음이나 걸었더라고요. 꼬맹이가 굉장히 튼튼해지는 여행입니다. 꽈악 자고 나서 눈을 떠보니 10시가 넘었어요. 둘째 날엔 시드니 수산시장(SYDNEY FISH MARKET)을 찾아갔습니다. 펠리컨을 보기 위해서인데요. 경진이 엄마랑 아빠는 12년 전에 시드니에서 반년 정도 살았었는데요. 당시 수산시장에 놀러 갔다가 개냥이 같은 펠리컨을 만났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다시 펠리컨을 볼 수 있을지 몰라서 다시 찾아가 봤죠. 오~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더라고요. 혹시 그때 그 펠리컨이 산신령처럼 살아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거대한 녀석이 생선 가게 앞을 지키고 있더라고요. 눈을 부라리면서 부리 밑으로 축 늘어진 먹이 주머니(또는 막?)를 흔들면서 걸어 다녔죠.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경진이가 어디에선가 배워온 신기한 사진 마술도 보여줬어요. 경진이가 사진을 찍는데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바깥의 내가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엄청나게 신기한 마술이에요.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하면 된다고 하는데요... 사실 저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ㅎㅎ)
시드니 수산시장에서 만난 펠리컨. 파노라마 기능을 사용한 신비한 속마음 사진.
이날은 나쁜 눈(?)을 한 부채꼬리딱새사촌과 갈매기, 집참새를 만났습니다. 갈매기는 우리나라에서 보는 녀석들보다 조금 덩치가 작았고요. 부채꼬리딱새사촌은 까치처럼 생겼는데 까치는 아닌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종이래요. 집참새도 한국에서 만나는 참새와는 약간 다르게 생겼어요. 좀 더 크다고 할까요.(경진이가 그러는데요. 집참새는 한국에서도 볼 수 있대요.)
부채꼬리딱새사촌, 갈매기, 집참새
셋째 날은 아침 일찍 움직였어요. 패키지 관광으로 돌고래 관찰과 사막체험을 떠난 건데요. 한국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포트 스티븐스로 (Port Stephens) 향했습니다. 배를 타고 포트 스티븐스항구를 나선 지 십여분 만에 헤엄치는 돌고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미가 새끼를 업고 헤엄치는 모습이 귀여웠어요. 계절이 맞으면 혹등고래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우리가 갔던 겨울은 혹등고래가 오는 철이 아니라고 하네요. 한국 관광객이 많이 왔는지 선장님이 한국말로 "저기 왼쪽... 여기 여기 오른쪽"이라고 말해줘서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여기저기 옆에"라고 하는데 여기는 어디고 저기는 어디고 또 옆은 어딘지... ㅎㅎ
포트 스티븐스에서 돌고래를 만났어요. 경진이는 호주의 바다에 들어가보고 싶어했죠. 바다와의 교감?
고래 관광을 마치고 점심을 먹은 뒤에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요. 경진이는 호주 바다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팔다리를 걷어붙이고 바다로 들어갔죠. 바다가 깨끗하고 파도도 없고 신기했어요. 경진이는 신이 났고요. 다음은 사막 관광입니다. 바닷가에서 15분 정도 들어갔을까요? 사막 체험을 한다고 해서 사실 믿지 않았는데요. 제가 알기로 호주의 사막은 울룰루가 있는 내륙 황무지 지역에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사막체험하는 곳에 도착해 보니 정말로 사막이더라고요.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밭이요. 우리나라에는 충남 태안에 신두리 해안사구가 있는데요. 여기가 바로 그런 해안사구였어요. 바다 모래가 날아와서 끝없이 쌓인 곳이죠. 호주는 뭐든지 큰가 봅니다. 높다란 모래 절벽으로 올라가서 보드를 타고 내려옵니다. 샌드보딩인데요. 경진이는 낭떠러지에서도 전혀 망설임 없이 출발하더라고요. 대단한 꼬맹입니다. 화성에 온 것 같은 비현실적인 광경 속에서 신나게 놀고, 화성 탐험차 같은 해괴하게 생긴 차를 타고 철수합니다.
포트스티븐스 해안사구는 정말 사막 같습니다. 모래가 끝없이 펼쳐져 있으니 사막이라고 해도...
네 번째 날에는 호주 박물관(AUSTRALIA MUSEUM)에 가봤는데요. 호주의 역사와 자연에 대해 정리를 잘해놨더군요. 여태껏 우리가 봤던 호주의 새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박제로 만들어진 새들이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생동감 넘쳤지요. 거주지 인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로 몇 종을 꼽고 있었는데요. 호주까치, 노이지 마이너, 래핑 쿠카부라, 코카투, 호주흰따오기, 레인보우 로리킷을 소개하고 있었어요 이번 여행에서 진짜 많이 만났던 새들이었죠. 여기에 갈매기까지요. 웃는 쿠카부라는 보타닉 가든에서 만났는데요. 두 마리가 나무 위에서 울어대는데 동네가 떠나갈 것처럼 호탕하게 웃어대더라고요. 새 웃음소리라니, 정말 신기한 나라에 신기한 새입니다.
호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 TOP6. 그 중 가장 신기했던 건 래핑쿠카부라였는데요. 두 마리가 웃어대는데 정말 동네가 떠나갈 것 같았어요.
다섯 번째 날에는 울롱공(WOOLONGONG)에 가봤어요. 기차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요. 시드니 남쪽에 위치한 NSW주의 두 번째 큰 도시라네요. 큰 제철소가 있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어요.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비가 많이 왔는데요. 다행히 내려서는 비가 좀 잦아 들어서 울롱공의 파도와 갈매기를 구경했죠. 호주의 산은 한국 산처럼 뾰족하지 않고 땅이 통째로 솟아오른 것처럼 생겼어요 시루떡을 잘라놓은 것 같은 모양이랄까요.
울롱공에선 비가 내렸어요. 그래도 호주의 성난 파도를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여섯 번째 날은 시드니동물원(SYDNEY ZOO)과 블루마운틴 별 보기였어요. 그런데 비가 와서 별은 보지 못했죠. 그래도 블루마운틴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 아찔한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답니다. 동물원에서 경진이가 가장 좋아한 동물은 웜뱃(WOMBAT?)이었어요. 멧돼지 새끼만 한 크기인데요. 다리는 짧고 굉장히 통통합니다. 목도 짧고 꼬리도 짧고 경진이 표현으로는 '짤뚱'합니다. 귀여워요. 비슷하게 생긴 '쿼카'라는 동물이 있는데요. 웃는 상이라서 인기가 많은 동물이죠. 그런데 이 쿼카는 서호주 지역에서 볼 수 있대요. 시드니의 다른 동물원에는 있는 곳도 있는 것 같은데요. SYDNEY ZOO에선 볼 수 없었어요.
블루마운틴에서 아찔한 시간
일곱 번째 날은 페리를 타고 코카투 아일랜드(COKATOO ISLAND)에 다녀왔어요. 원래 계획은 파라마타강을 따라 올라가다가 새를 보기 좋은 곳에 내려서 탐조활동을 하려고 했는데요. 코카투 아일랜드라는 멋진 이름에 반해서 중간에 내렸어요. 코카투가 많을 것 같으니까요. 그런데 이 섬은 옛날에 호주 해군의 군함을 만들던 조선소였나 봐요. 지금은 역사 유적으로 관광 자원이 되었고요. 그런데 갈매기만 엄청 많고 코카투는 한 마리도 볼 수 없었지요. 왜 이 섬의 이름이 코카투 아일랜드가 됐을까요? 찾아봐야겠어요. 아 그리고 이 섬에서 가면물떼새라는 새로운 새를 만났죠. 종 추가 +1
페리 여행을 마치고는 패디스마켓(PADDY'S MARKET)이라는 시장에 가서 기념품을 샀어요. 경진이가 가장 큰 관심을 나타낸 건 바로 부메랑이었어요, 정말로 날아갈까 되돌아올까 싶기도 했지만, 이걸 아이들에게 선물로 줬다가는 대형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류했죠. 캥거루 가죽을 이용한 여러 가지 물건들이 많아서 신기했는데요. 그중에는 캥거루 고환을 그대로 말린 열쇠고리 등 기념품이 있었어요. 갖고 있는 사람에게 재물과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대요. 굉장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을 보호하고 야생동물을 사랑하자면서 왜 캥거루 거시기를 잘라서 팔고 있을까요. 호주보다는 다른 나라에 어울릴 것 같은 상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덟 번째 날은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러 시드니 공항으로 출발했어요. 우버를 불러서 공항까지 편하게 왔는데요 경진엄마는 굉장히 바쁘게 뭔가를 하고 있네요. 우버 결제에 문제가 생겨서 항의 메일을 보내고 사투를 펼친 끝에 결국 해결했다네요. 대단한 경진 엄마입니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맡긴 다음에 보안 검색대를 통과합니다. 몸집이 산더미 같은 호주 아저씨가 경진이를 불러 세우더니 금속 탐지기로 샅샅이 훑네요. '꼬마 테러리스트'라고 발견한 걸까요? 크록스 신발에 꽂아놓은 불빛이 반짝 거리는 지비츠가 문제였나 봐요. 호탕하게 웃으면서 걱정하지 말고 즐거운 여행을 하라고 말하고 보내주네요. 시드니 공항 면세구역에서 토스트로 아점을 먹은 뒤 비행기에 올라탑니다. 파이널콜이 나오고 있는데 경진이는 쿠카부라 인형을 발견했어요. 그래도 탑승 마감에 늦지 않게 줄 뒷부분에 합류해서 무사히 귀국 비행기에 올랐답니다. 열 시간 이십 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경진이는 한국에 도착하면 김치를 마음껏 먹고 싶다고 하네요.
우리가 만났던 호주의 새들이예요. 누락된 새들에겐 미안~
경진이가 신기해했던 레인보우 로리킷입니다.
호주 여행은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하늘은 파랗고 나무는 커다랗고 신기한 새들이 많아서 즐거웠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호주 어디를 가도 정말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좀 더 계획을 세우고 장비도 보강해서 탐조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이번에 볼 수 없었던 네발짐승들도 보게 되면 더욱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