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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Sep 22. 2024

눈도 못 뜰만큼 쏟아지던 빗속에서 서핑에 눈뜨다!

생태유학 42. 양양 송천 떡마을 + 서핑 체험

징그럽게 버티던 2024년 여름이 물러가지 않으려는 듯 마지막 폭우를 쏟아낸 주말에 설피마을 생태유학 어린이들은 강원도 양양군 서면 송천떡마을로 향했습니다. 원래는 양양군 서면 해담마을에서 수륙양용차 체험을 하려고 했는데요. 이날 날씨가 궂고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를 접한 인제로컬여행사업단에서 일정을 변경한 거죠. 이번 프로그램은 양양 해양문화체험으로 진행됐습니다. 양양의 어린이들은 인제 산촌 문화를 체험하고 인제 산골에서 생태유학을 하는 도시 아이들은 양양 해양문화를 접하는 일종의 '문화 품앗이'인 셈이죠.


송천떡마을은 설피마을에서 양양 읍내로 장을 보러 나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서 양양 읍내로 나갈 때마다 지나치게 되는 곳이죠. 봄 여름엔 제비 둥지에 들어찬 귀여운 새끼 제비를 보러 몇 번 발걸음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마을 어귀와 집집마다 울타리 삼아 온갖 꽃이 피어있는 아름답고 정겨운 시골 마을입니다. 이번 체험은 용대초등학교 생태유학 어린이들과 함께 진행했는데요. 고소함이 가득한 인절미 만들기 시간을 가졌답니다.

설피마을 어린이들이 양양 송천떡마을에서 인절미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송천떡마을 어머님들이 미리 준비해 주신 찰밥을 떡판 위에 놓고 아이들이 번갈아 가면서 떡메로 내리쳤습니다. 무거운 떡메에 힘을 실어 내리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굉장히 진지하네요. 철썩철썩 잘 내리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무거운 떡메를 주체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아이들도 있었죠. 그래도 모두들 관계자분의 통제에 잘 따라주어 아무런 사고도 생기지 않고 재미나게 체험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떡메로 내려쳐 찰기 가득해진 반죽을 잘라 콩고물을 입힐 차례입니다. 고소하고 달콤한 콩고물 냄새를 참지 못하고 입으로 가져가는 아이들도 있었지만요. 옷소매와 바지가 콩고물 범벅이 돼도 진지한 모습으로 반죽을 자르고 콩고물을 입혀 인절미를 완성시키는 아이들의 눈이 빛을 냅니다. 송천떡마을에서 준비해 주신 종이 상자에 인절미를 넣고 콩고물을 담으니 정말 방금 떡집에서 만들어 파는 '시판용'처럼 그럴듯한 인절미가 완성됐어요.


다음은 기다리던 서핑 체험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양양군 강현면 낙산해변으로 향했습니다. 비가 엄청 퍼붓고 파도가 세차게 치고 있어서 서핑이 가능할까 싶기도 했습니다. 몇몇 조심성 많은 아이들은 "나는 절대 서핑 안 해"라고 외치기도 했죠. 몇몇은 "나는 그래도 해 볼래"라며 전의를 불태우기도 했어요. 양양서핑학교에서 한 시간 정도 실내교육을 받았습니다. 서핑보드의 구조와 명칭, 서핑보드를 바다로 가지고 나가서 보드 위에 올라타고 헤엄치다가 일어나는 모든 과정을 이론으로 배웠습니다.


여기서 끝일 줄 알았죠. 세찬 비바람이 몰아쳤고요. 창밖으로는 파도가 거세게 일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교육이 끝나자 강사님들이 서핑보드 타러 물로 나갈 사람들 손들어 보라고 하더라고요. 꿋꿋이 손을 든 어린이와 부모님이 꽤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우리 집 딸내미와 옆집 겸이 엘이 남매였어요. 저와 겸엘 아버님은 덩달아 서핑 옷인 윁수트(wet suit)를 입고 양양 낙산 해변으로 향했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쫄쫄이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이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마치 영화 '실미도'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어요. 그런데 배가 너무 쪼이고 숨도 잘 안 쉬어지고, 남들 보기에도 민망하고 여러모로 좀 불편했어요. ㅎㅎ

실미도 특수부대 훈련 아닙니다. 생태유학 어린이들(용대초+진동분교)이 서핑 체험 하는 모습입니다. 

보드를 하나씩 꿰차고 모래밭 위에 엎어놓고 다시 지상훈련을 실시합니다. 쏟아지는 빗발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지만 이론 교육에서 배운 대로 열심히 손발을 휘적거립니다. 그다음은 실전 투입이에요. 강사 1분이 한 가족을 맡아서 진행합니다. 완전 귀족 강습입니다. 저와 딸내미는 친절한 강사님의 지도로 서핑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1대 2로 말이죠. 우리가 향한 곳은 남대천이 동해로 흘러들어 가 만나는 바로 그 '남동만곳'입니다. 모래톱 바깥쪽은 성난 파도가 몰아쳤지만 모래톱 안쪽 남대천은 불어나서 흙탕물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매우 잔잔했습니다. 깊이도 어른 허리 높이 정도로 적당했죠.

처음 타 본 사람이 벌떡 일어서면 국가대표라더니... 딸아이는 소질이 있나 봐요. ㅎㅎ

딸아이는 서핑에 소질이 있는 모양입니다. 강사님의 지시를 따라 두어 번 보드에 올라타는 연습을 하더니 세 번째인가 만에 제법 폼이 나게 올라탑니다. 보드에 올라타 손으로 노를 젓는 '패들링'을 하다가 옆구리 쪽에 양손을 밀착시켜 엉덩이를 띄워 플랭크 자세를 만드는 '푸시', 그리고 엉덩이를 들면서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당김과 동시에 일어나 기마자세를 잡는 '업'까지 해주면 완성이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요. "여기 있는 어린이들 중에서 네가 제일 잘해~"라는 강사님의 칭찬에 힘입은 딸아이는 번쩍번쩍 몇 번이고 일어나고 또 일어납니다. 폭우가 쏟아져도 눈앞이 보이지 않아도 역시 칭찬에는 장사 없습니다. 딸아이는 "아빠 서핑 정말 재밌다. 다음에 꼭 또 오자~"라고 합니다.


저는 어땠냐고요. 일단 저는 서핑보드에 엎드리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배가 닿아서 좀 많이 불편했고요. 서핑 실습은 안 할 줄 알고 점심을 너무 많이 먹은 것도 패착이었죠. 분명히 성인용 보드를 가지고 나왔는데 올라타면 반쯤 가라앉더라고요. 강사님은 "이거 120킬로까지 끄떡없는 건데 이상하네요~"라면서 보드를 뒤집어 가면서 살펴봅니다. 몇 차례 물에 빠진 끝에 결국 보드 위로 일어서는 데 성공하기는 했는데요. 보드 뒤쪽 '테일'이 남대천 강물 속 모래밭에 박힌 채로 일어섰답니다. ㅎㅎ 열심히 식사 조절+ 운동을 해야겠어요 ㅠㅠ 

설피관에서 설피마을 어린이들과 함께 진엘 생일파티

일요일에는 하루 차이로 생일을 맞은 진이와 엘이가 함께 생일 파티를 열었습니다. 뭐 거창한 건 아니지만요. 케이크와 과일 과자를 사다가 먹고, 마을 체육관에서 신나게 놀았답니다. 저는 그 틈을 타서 아이들과 배드민턴을 치면서 운동을 시작했죠. 신나는 주말이었습니다. 설피마을의 여름은 이렇게 재미있게 끝을 맺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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