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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Oct 17. 2024

야생동물생태학교가 있어 행복했다

생태유학 45. 대암산 용늪에서 

2024년 10월 13일. 가을하늘이 눈부시게 파랗고 구름바다가 산 아랫동네를 덮은 날. 우리는 대암산 용늪을 향했다.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고산습지로 람사르협약에 등록된 곳이다. 정말 예전부터 한 번 와보고 싶었던 곳인데 드디어 발을 딛게 됐다.


이날은 4기 인제야생동물생태학교 마지막 수업 날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최고 야생동물 전문가인 한상훈 박사님의 인솔 하에 우리는 용늪을 향했다. 언제나 가장 먼저 와서 학생들을 기다리시던 한 박사님은 이날 늦잠을 자서 가장 늦게 도착하는 인간미를 보여주셨다. 그래도 지각은 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력도 함께 보여주셨다. 

용늪에서 바라본 인제 쪽 운해. 아이와 한 박사님.

강원도 인제군은 땅덩이가 굉장히 크다. 홍천 다음으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넓은 기초자치단체다. 우리가 사는 곰배령 설피마을에서 대암산 용늪은 자동차로 한 시간 반 이상 걸리는 거리다. 인제군의 동쪽 끝에서 북쪽 끝으로 가는 길이다. 지도에도 없는 길로 올라가고 또 올라가면 대암산 용늪 생태탐방 안내소에 도착한다. 거기서 임도 14km를 오르고 또 오르면 주차장에 도착하고 자동차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이른다. 주민안내원분과 만나 본격적인 용늪 탐방을 시작한다.

용늪에는 데크가 설치돼 있어 인간의 훼손을 최소화한다.

해발 1200미터가 넘는 용늪은 바위산 구릉지대에 낙엽 등이 쌓여 만들어진 이탄층 위로 물이 고여 이루어진 고층습원이다. 늪이라는 말을 들으면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곳을 상상하기 쉽지만, 대암산 용늪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이탄층이란 식물이 죽어도 채 썩지 않고 쌓여 스펀지처럼 말랑말랑한 지층의 일종으로 용늪에는 평균 1m에서 1.8m 정도 쌓여있다. 용늪이 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어 1년 중 170일 이상이 안개에 싸여있어 습도가 높고, 5개월 이상이 영하의 기온으로 춥고 적설기간이 길어 식물이 죽어도 짤 썩지 않고 그대로 쌓여 ‘이탄층’이 발달하게 됐다고 한다. 


용늪은 곰배령 정상부와 마찬가지로 높은 산 꼭대기 아래 우묵하게 들어간 모양으로 생겼다. 여기에 넓은 늪지대가 형성됐는데 늪 위로 데크를 설치했기 때문에 걸으면서 보기 참 쾌적하다. 데크 가장자리로 안전 난간이 설치돼 있지 않기 때문에 약간 아찔한 느낌은 있는데, 허리를 숙이면 늪 바닥까지 잘 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곳에서만 자라는 비로용담 등 멋진 동식물들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끈끈이주걱을 보고 싶었지만 철이 아니라서 늪 바닥 가까운 곳 낙엽 밑으로 잎이 퍼져있는 상태라 데크 위에서는 보기 어렵다고 안내원 분이 설명해 주셨다.

아름다운 대암산 용늪에서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탐방 시간이 1시간으로 제한돼 있어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1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만큼 환상적인 탐방이었다. 외계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용늪 초입에선 맹금류 한 마리가 우리 머리 위로 굉장히 가깝게 날았다. 나는 참매 또는 말똥가리로 봤는데, 딸아이는 황조롱이였다고 한다. 사진을 찍지 않았으므로 그냥 맹금류로 정리한다. 

무엇보다 연중 구름과 안개에 덮이는 날이 많아 시야가 좋지 않다고 하는데 이날은 멀리 향로봉이 보일 정도로 시야가 깨끗했다. 강원도 높은 산에 불이 붙기 시작한 단풍도 만끽할 수 있었다.

봄에 꽃을 피우는 동의나물이 10월에 꽃을 피웠다. 이상 기후 탓?? 


이날 대암산 용늪 탐방을 마치고 4기 인제야생동물생태학교 수료식을 할 예정이었지만, 설피마을 진동분교 친구들은 한상훈 박사님과 함께 하는 마을 생태지도 만들기 수업이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에 수료식을 잠깐 미뤘다. 이 이야기는 추후 상세히 알려드릴 예정이다.   도시 촌놈이 강원도 야생에 와서 가장 잘한 짓은 한상훈 박사님이 이끄는 인제야생동물생태학교에 참여한 일인 것 같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야생에 가까운 곳들을 직접 가보고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면을 빌어 한상훈 박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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