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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라면 한 봉지 2000원은 왜곡 보도랍니다.

라면 한 봉지 2000원이라는 이상한 언론들

by 선정수

2025년 6월 9일. 대선 승리 및 취임 6일째 되던 그날 이재명 대통령은 "라면 한 개에 2천 원 한다는 게 진짜예요?"라고 물었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비상경제점검태스크포스 회의 석상에서다. 이 대통령은 "최근에 물가가 엄청나게 올랐다고 한다"며 이렇게 질문했다.


도대체 대통령은 뭘 보고 들었을까? 아마 그는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라면을 사 본 적도 가격표도 직접 확인해 본 적이 없을 것 같다. 이전 대통령이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가 십자포화를 맞은 기억이 난다. 그 옛날 재벌 출신의 대선 후보는 버스 요금이 1000원 하던 시절에 70원이라고 말해서 혼이 난 적도 있다. 서민 생활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하니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일인 것 같다.


중앙일보는 8일 오후 <이젠 라면 1개에 2000원 시대… 계란·돼지고기 밥상물가 줄비상>이라는 기사를 온라인에 발행했다. 이 신문은 "라면에 계란 한 알을 풀어 넣어 먹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로 식품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 국민 반찬으로 불리는 달걀도 당분간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밥상 물가’에 비상등이 켜졌다."라고 짚었다. 가공식품과 농산물 등 식재료 가격 상승이 가파르다는 내용이 뒤를 이었다. 열거된 사례 중 2000원이 넘는 라면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내용도 나온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업체들의 도미노 가격 인상으로 2000원을 넘는 라면 제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농심은 탄핵 정국인 지난 3월 라면 업계에서 가장 먼저 라면·스낵 17종 가격을 평균 7.2% 인상했다. 오뚜기도 지난 3월 27개 라면 중 16개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7.5% 올렸다. 진짬뽕 대컵, 열튀김우동 대컵, 열치즈라면 대컵, 열광라볶이, 짜슐랭 대컵, 마슐랭 마라탕은 2000원에 판매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앞서 디지털타임스는 <`서민 한끼` 라면은 옛 말…1봉에 2000원 이상 수두룩>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라면 물가를 짚었다. 그런데 이 기사엔 오류가 너무 많다. 중앙일보 보도보다 7시간 앞선 이 보도는 제목부터 틀렸다. 1봉에 2000원 이상인 라면은 고급화 전략을 구사하는 몇몇 브랜드 제품을 빼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맞다.


기사 본문에서 디지털타임스는 <한 봉지에 2000원이 넘는 제품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지만 기사에선 이 문장에 부합하는 사례를 제시하지 못한다. 다만 <8일 유통업계에 대표 라면 제조사인 농심은 최근 용기면과 봉지면 약 20종의 가격을 인상했다. 이에 따라 농심의 라면 제품 가운데 가격이 2000원에 육박하는 제품은 10개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 밝힐 뿐이다. 이어 <편의점 기준으로 신라면 대컵은 1500원으로 100원 올랐고, 신라면건면 대컵은 200원 올라 최근 1800원이 됐다. 신라면툼바, 신라면블랙, 신라면더레드 용기면도 1800원이다.>라고 적었다.


문화일보는 연합뉴스의 사진을 받아쓰면서 사진 설명을 <올해 잇단 가격 인상으로 한 봉지당 2000원대에 오른 라면들이 늘어난 가운데 8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진열대에 놓인 라면들을 살펴보고 있다.> 라고 적었다. 한 봉지당 2000원대에 오른 라면이 늘어났다고 하는 것은 사실 왜곡이거나 부정확한 사실 확인이다.


대통령 발언이 나온 직후 직접 대형마트의 라면 코너를 찾아 라면 가격을 점검해 봤다. 라면 메이저 3사(농심, 오뚜기, 삼양)의 봉지라면 중 개당 2000원이 넘는 건 농심 생생우동 봉지(2010원) 뿐이었다. 고급화 전략을 구사하는 하림의 제품 가운데 더 미식 초계국수 2입(5980원), 더 미식 안동국시 2입(9800원) 등 고가 제품이 눈에 띌 뿐이다. 사발면으로 눈을 돌려보면 역시 하림의 멕시칸 양념치킨 볶음면이 2200원에 판매됐다. 중앙일보 보도에 나온 진짬뽕 대컵은 1980원으로 아슬아슬하게 2000원을 밑돌고 있었다. 봉지라면 중 국내 판매 1~2위를 다투는 신라면은 개당 830원, 진라면 매운맛은 개당 79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2000원에 한참 못 미친다.


대통령 발언이 전해진 뒤 주식 시장에서 주요 라면 업체들의 주가 변동을 살폈다. 9일 기준 농심은 전일보다 4.52% 급락했고, 삼양식품은 0.44%, 오뚜기는 0.5% 올랐다. 유독 농심 주가가 빠진 것을 두고 언론의 해석이 분분했다. 최근 제품 가격을 올린 농심이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는 식의 해석이 판을 쳤다.


물가가 오르면 서민들은 고통스럽다. 다른 것 다 오르는데 노동자의 월급은 물가상승을 따라잡지 못하고, 자영업자들은 비용 부담 증가와 수요 위축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왜 올랐는지, 식품 기업들의 원가 상승 부담이 얼마나 되고, 인건비는 얼마나 올랐는지, 식품 기업 종사자들의 임금은 어떻게 변동했는지 등을 따져보는 심도 깊은 기사가 나왔으면 좋겠다. 식품 업체들이 폭리를 취하려고 가격을 올리는 건지, 아니면 망하지 않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격을 올리는 건지 독자들이 따져볼 수 있는 기사가 필요하다.


애초에 이런 바람이 무리일지도 모른다. 똘똘한 기사가 안 나와도 좋으니, 새 정부는 이런 것들을 심도 깊게 따져서 서민들이 살림살이 걱정하지 않도록 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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