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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정답은 동물권 감수성이야

그물무늬왕뱀 논란을 보며

by 선정수

먼저 그물무늬왕뱀 새끼들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불철주야 사육 동물들의 복지 향상과 생물학 꿈나무를 위한 양질의 전시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동물원 직원들에게도 위로를 전한다. 하지만 이번 그물무늬왕뱀 논란을 보며 의문점이 한 두 개가 아니고 영 찜찜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글로 정리해 본다.


◇사건 개요

2019년 6월 서울대공원 서울동물원에서 국제적 멸종위기종 2급(CITES Ⅱ)으로 지정된 그물무늬왕뱀이 알을 낳았다. 현재까지 사건의 전말을 가장 잘 파악한 것으로 평가되는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모두 33개. 이 가운데 20개가 유정란으로 확인됐다. 동물원 관계자들이 모여 회의 끝에 가장 건강한 개체 2마리를 남기고 나머지는 냉동시켜 박제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야생생물보호및관리에관한법률>에 따르면 그물무늬왕뱀은 1마리가 늘어날 때마다 사육장 면적을 35%씩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감당할 수 없는 동물원 측에서는 2마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폐기>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동물원 관계자는 "사육 기준을 지키지 않을 경우 각종 제재를 받고 동물원과 사육사가 처벌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서 뱀들에게는 정말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9월 새끼 뱀들이 태어나자 서울동물원은 계획을 실행했다. 가장 건강한 2마리는 기르고 아직 깨지 않은 알 2개와 나머지 새끼 뱀 16마리를 냉동실로 보냈다. 당초 동물원은 새끼 뱀들을 냉동 박제해 전시할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냉동된 나머지 뱀들은 박제로 만들어져 일반 공개를 앞두고 있다. 갓 부화한 뱀, 알껍데기를 뚫고 나오는 뱀, 아직 알 속에 있는 뱀 등 다양한 모습이라고 한다"라고 보도했다.

이후 동물권 보호단체들과 시민들의 이의제기가 잇따르자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이 현장 조사를 실시한 뒤 관할 과천경찰서에 서울동물원을 고발했다. 서울동물원이 야생생물보호법을 위반한 혐의다.


◇위반 혐의

a. 국제적 멸종위기종 2급 생물 살해(법 14조 위반) -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

야생생물보호법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에 해당하는 생물을 죽이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예외규정을 두고 있는데

1. 학술 연구 또는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보호ㆍ증식 및 복원의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경우

2. 제35조에 따라 등록된 생물자원 보전시설이나 제39조에 따라 설치된 생물자원관에서 관람용ㆍ전시용으로 사용하려는 경우

3.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른 공익사업의 시행 또는 다른 법령에 따른 인가ㆍ허가 등을 받은 사업의 시행을 위하여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이동시키거나 이식하여 보호하는 것이 불가피한 경우

4. 사람이나 동물의 질병 진단ㆍ치료 또는 예방을 위하여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환경부 장관에게 요청하는 경우

5.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인공 증식한 것을 수출ㆍ수입ㆍ반출 또는 반입하는 경우

6. 그밖에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보호에 지장을 주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환경부령으로 정하는 경우


1~6까지의 경우 환경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 국제적 멸종위기종 생물을 처분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서울동물원은 환경부의 사전 허가를 얻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b. 폐사 신고 의무 위반, 인공증식증명서 발급 의무 위반(법 16조 위반) 1000만원 이하 과태료

법 16조6호는 국제적멸종위기종 생물이 죽거나 질병에 걸려 더 이상 사육할 수 없게 됐을 경우 지체 없이 환경부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역시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국제적멸종위기종 생물이 증식한 때에는 인공증식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지만 이 역시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국내 최고 동물원에서 왜 이런 일이?

서울대공원은 명실공히 국내 최고 동물원이다. 시설, 인력, 규모 등 모든 면에서 의심할 여지없는 국내 최고 수준이다. 1984년 동물원 개원 이래 유례가 없었던 비단무늬왕뱀의 증식은 충분히 축하받고도 남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서울동물원은 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울동물원 측은 이미 야생생물보호법 규정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개체수가 더 많아지면 그에 따라 사육공간을 더 늘려야 했고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라는 게 동물원의 입장이다.


그러나 유정란이 발견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관련 법령을 알고 있었음에도 왜 유정란을 18개나 부화시켜 새끼가 나오도록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사전에 환경부에 신고를 하고 조치 계획을 공유해 승인을 얻었으면 고발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함께 든다. 제한된 정보에 근거해 판단해보자면 서울동물원 측은 건강한 새끼 2마리만 키우기로 결정하고 (보다) 건강한 새끼 2마리를 얻기 위해 나머지 새끼들을 도태시키는 계획을 세웠음이 분명하다. 나머지 새끼들은 박제를 만들어 전시 또는 교육용 자료로 활용하려 했을 것으로 보인다. 동물원 관계자의 입장에선 관리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인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미 시민사회에 동물권 보호에 대한 담론이 커질 대로 커진 상황에서 이 선택은 경솔하지 않았나 싶다. 태어난 시점에서 신고 의무를 게을리했다는 점은 둘째치고 건강한 새끼 뱀 2마리를 얻기 위해 나머지 16마리와 알 2개를 냉동시켜 죽여야만 했냐는 지점에서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동물들도 엄연히 생명을 가진 존재인데 무고한 새끼 뱀을 죽인 행위를 용납하기 어렵다는 지적인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동물원 측은 폐기 처분 직전까지 새끼 뱀을 받아줄 다른 동물원 등 시설을 찾고 있었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해명했다.

2020년 1월 14일 현재 서울동물원 이달의 동물 '그물무늬왕뱀' 게시판 댓글

◇다시는 동물원 안 간다는 성난 시민들

논란이 커지자 시민들은 서울동물원 홈페이지로 몰려들었다. 대부분 서울동물원이 생명을 경시한다는 비판적 입장이었다. '귤밭 옆 사진관'이라는 이용자는 게시판에 " 대한민국 큰 동물원이라는 곳이 동물에 대한 기본상식도 없고 생명의 존중도 없고 돈만 벌면 다입니까? 갓 태어난 새끼 뱀을 단계별로 얼려서 박제한다뇨 뱀은 산소요구량이 적은 동물이라 천천히 몸이 얼어가는 걸 느끼면서 죽어간다고 합니다. 생명의 소중함이란 걸 단 1도 못 느끼셨나 봐요. 사람 맞습니까. 서울대공원 앞으로는 절대 방문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적었다.


정말로 사육면적이 문제였다면 그물무늬왕뱀의 알이 유정란으로 확인된 시점에 알 2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부화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거나 그물무늬왕뱀을 받아줄 수 있는 해외 시설을 알아보는 것은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건강한 개체 2마리를 얻기 위해 나머지는 도태시켜도 좋다는 것은 시민들의 성숙한 동물권 보호 의식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동물원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상황인데 환경당국이 고발을 할 게 아니라 같이 대책을 찾아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밝혔다. 명실공히 국내 최고인 서울동물원이 앞으로도 사랑받는 정상의 동물원이 되려면 볼멘소리를 내기보다는 사건의 전말을 소상히 밝히고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는 자세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메인 사진의 출처는 서울동물원 홈페이지(https://grandpark.seoul.go.kr/korea_grand/board/view.do?boardSeq=40736&headerId=41237&menuid=41243&parentId=52414&bbsId=56)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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