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정부
난리다. 마스크, 휴대용 손 소독제가 인터넷 쇼핑몰과 대형마트에서 사라졌다. 거리에는 온통 마스크 쓴 사람들이다. 평택 등 일부 지역은 어린이집 유치원 휴교령이 내려졌다. 보통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나와 우리 가족에게도 재앙이 닥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재리에 밝은 일부 사람들은 물들어 올 때 노 젓는다면서 일확천금을 꿈꾸고 있다. KF 80, 94, 99 이런 정부 인증을 받은 보건용 마스크가 특히 품귀 상태다.
마스크를 하고 다니긴 해야겠다. 공포가 너무 심하니까.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옆에서 기침을 했다는 이유로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헷갈린다. 미디어에선 KF 80 이상의 마스크를 쓰라고 권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감염 예방을 위해서는 ‘KF94’, ‘KF99’ 등급의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밝혔다.
수많은 미디어들도 정부의 발표에 따라간다. 제목은 이런 식이다. < 식약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차단 마스크 'KF94·99' 사용해야" 2020.01.29 | 세이프타임즈 > 신종코로나바이러스+마스크로 검색해보면 이런 결과가 표출된다.
정부 기관이 감염 예방을 위해 바람직하다니 KF 94 또는 KF99 마스크를 착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잠깐. 이건 뭔가 상식과는 다르다. 손발이 안 맞는 느낌이다.
뭔가 속아 넘어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찾아봤다. 사스, 메르스와 마찬가지로 '우한 폐렴'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유발한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현재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공기로는 전염되지 않는다고 명확이 밝히고 있다. 만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공기로도 전염된다면 이 이야기는 더 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모두가 보건용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한다.
질병관리본부 정은경 본부장은 지난 27일 기자회견에서 이런 문답을 주고받았다.
(기자) 가족이나 병원 같은 좁은 공간 있을 때 감염 일어난다고 확실히 보는 것인데, 공공장소에서도 가능한가. 공기 중 전파 도 가능한가.
(정 본부장)"현재까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메르스나 사스와 유사하게 비말, 접촉 호흡기 통해 전파되는 걸로 추정하고 있다. 긴밀 접촉한 가족이 첫 번째 전파 사례이고, 의료진도 접촉해서 일단은 비말 접촉으로 생각한다. 메르스도 공기 중 전파는 침이 아니라 침에 있는 바이러스다. 작은 입자로 분비될 수 있는데 아직까지 그것에 대해선 밝혀진 바 없다. 메르스도 일반적 상황 공기 전파라기보다 기관 삽관하거나 의료적 시술하면서 에어로졸 발생하는 환경에서는 가능하다고 돼 있어서 아직 공기 전파된다고 보기 어렵고 아직 불확실한 부분 있다."
(기자) 공기 전파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얘긴가.
(정 본부장)"신종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정확한 전파 경로 등 이런 부분 아직 조사 중이다. 조사 결과 봐야 된다."
(기자) 일반 시민들 마스크 쓰고 다니는데 권장 사항인가.
(정 본부장)"지역사회에는 광범위하게 바이러스 위험 있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인플루엔자 유행 확대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마스크나 기침 예절 일반적으로 말씀드린 것이다. 호흡기 증상 있으신 분들은 다른 분 위해 마스크 착용 권고드린다. 인플루엔자나 호흡기 감염도 마찬가지다. 지역사회 위험 있어서 마스크 쓰고 다니라는 건 아니다."
(기자) 마스크 지수는.
(정 본부장)"의료용 마스크를 얘기하는 거고 의료인들 권고하는 건 KF94, N95 등 의료인용 마스크를 의미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경로는 비말 감염이다. 비말 감염은 환자의 분비물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것이다. 즉, 기침, 재채기, 가래침, 똥오줌 등에 섞여있는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의 호흡기, 점막 등으로 들어갔을 때 감염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감기에 걸린 딸내미를 안고 있었는데 그 딸내미가 아빠한테 기침 또는 재채기를 해서 침방울이 눈 코 입으로 들어가 감기에 옮는 상황 같은 것이다. 환자의 침방울에 들어있는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으로 옮겨지는 주요한 경로는 바로 그 사람의 손이다. 우리 집 딸내미가 감기에 걸려 여기저기 기침을 하고 다녔다고 치자. 아빠는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만지게 된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코도 후비고 눈도 비비고 이빨에 낀 고춧가루도 뺀다. 바로 이때 딸내미가 기침하고 다닌 침방울이 손에 묻는다면 감기에 옮을 확률이 높아진다. 아빠가 무지무지 건강하고 면역력이 강하고 침방울에 들어있는 활동하는 바이러스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다면 안 걸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침방울에 섞여있는 바이러스가 내 몸 점막 어딘가에 닿았냐 그렇지 않냐는 문제다. 다른 사람이 내 옆에서 재채기 또는 기침을 하는 일이 없고, 내가 손 씻기를 잘하고 눈코입을 안 만지면 병에 옮을 일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밀폐된 공간에 바이러스를 푹푹 내뿜는 환자와 함께 장시간을 함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KF 94, 99는 필요 없다. 앞서 언급한 질병관리본부장도 "호흡기 증상이 있다면 마스크 착용을 권한다"라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국민행동수칙에도 "기침 등 호흡기 증상이 있을 경우 마스크 착용"이라고 명시했을 뿐이다. "다른 분을 위해"라는 표현도 눈에 띈다. 기침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침방울을 튀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마스크를 쓰는 것을 권고한다는 뜻이다.
결론을 내자면 건강한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KF94, KF99 마스크를 굳이 찾아 쓸 필요 없다. 적당한 마스크를 착용해 혹시 모를 비말의 직접 침입을 막고, 나도 모르게 얼굴로 접근하는 내 손을 차단하면 감염의 위험이 낮아진다. 자주자주 꼼꼼하게 손을 씻어 주는 것이 감염 예방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되도록 가지 않는 것도 감염 확률을 낮춘다.
다만, 호흡기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외출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보건용 마스크를 써야 한다. 내가 하는 기침과 재채기에 섞인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들에게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고규격 마스크를 착용해야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마다 만원 지하철,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수도권 외곽지역에서 서울 중심가로 출근하는 경우라면 2시간 가까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환자가 아니라는 보장이 있을까. 그건 확률의 문제다. 100%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내 옆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있을 확률은 정말 낮을 것이다. 확진환자가 늘지 않고 있는 상황도 다행이다.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말고도 독감 등 바이러스로 인한 호흡기 질환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비말 감염을 상당 부분 차단하게 될 테니까. 보건 당국이 기침 예절을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 마스크가 비싼 것이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때문에 식약처가 내놓은 KF94 이상 권고는 생뚱맞아 보인다.
나는 종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련다. 그래야 나도 몰래 재채기를 했다가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 일이 없을 테니까. 봉변을 당하기는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