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많은 날 나가 놀자는 딸내미를 위해 알아봤다
#미세먼지가 많은데 어쩌라고 - 마냥 밖에서 놀고 싶은 딸내미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초) 미세먼지 예보가 '나쁨'이다. 웬만해선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일곱 살 딸내미는 놀이터에 가서 놀겠다고 아우성이다. 옥신각신하다가 또 졌다. 미세먼지 마스크를 씌우고 그네에 태웠다. 딸내미가 괴성을 지르며 그네를 타는 동안 또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마스크 씌웠다고 괜찮은 걸까', '마스크는 꼭 써야 하나', '미세먼지 안 먹는 것과 밖에서 신나게 노는 것 중 어떤 게 더 아이에게 중요할까' 등등.
삼십 분 정도 놀이터에서 놀다 들어왔는데 밤에 자던 아이가 가래를 꿀렁꿀렁하더니 쿨럭거리기 시작했다. 코가 막히는지 심하게 코도 곯았다. 아이는 평소 호흡기가 약해 찬바람을 쐬면 밤 기침이 많지만 이날은 유독 심했다. 먼지 많은 날 밖에서 놀아서 그런가. 마스크를 잘 못 씌워서 그런가. 방한용 마스크가 아니라서 찬 공기가 들어갔나. 자책하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정보를 찾아본다.
#미세먼지 마스크의 함정 1- 누설률
정부가 운영하는 미세먼지 예보제와 행동요령에 따르면 아이를 포함한 민감군은 초미세먼지 '매우 나쁨' 예보시 '가급적 실내 활동'을, '나쁨' 시에는 '장시간 무리한 실외활동 제한'을 권고한다. 한 마디로 먼지 많은 날은 밖에서 놀 생각 말라는 것이다. 어른이야 안 나가면 그만이지만 나가 노는 것이 업인 어린이들에겐 외출금지는 정말 참기 힘든 벌이다. 나간다는 아이를 무작정 타이르는 것도 지치고 하루 종일 아이와 방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것도 견디기 힘들다. 그렇다면 마스크 씌워서 잠시만 밖에서 놀자.
미세먼지 마스크는 산업보건용 마스크에서 출발한다. 미세먼지가 많이 발생하는 작업장에서 작업자의 호흡기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이다. 국내에선 식품의약품 안전처가 보건용 마스크 등급 기준을 마련해놓고 있다. 마스크 겉면에 표시된 KF99(94 또는 80) 등급이 바로 그것이다. 숫자는 분진 포집 효율을 나타내는 것으로 마스크를 검사장비에 넣은 뒤 평균 0.6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소금물 입자(염화나트륨 에어로졸)를 얼마나 걸러내는지를 알려준다. 99는 99%, 80은 80% 입자를 걸러낸다는 뜻이다.
일반 소비자들은 이 숫자에 현혹되기 쉽다. KF99 인증을 받은 제품을 사용하면 대기 중의 미세먼지를 99% 걸러주고 우리의 호흡기로 들어오는 미세먼지는 1%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보건용 마스크 등급 기준에는 '누설률'이라는 항목이 있다. 바깥공기가 얼마나 새어 들어오는지를 평가하는 지표이다. 이 항목은 실제 사람이 시험용 마스크를 '얼굴에 잘 맞도록' 쓴 뒤에 바깥공기가 얼마나 새어 들어오는지 측정한다. 실험 장치 안에는 러닝머신이 설치돼 있으며 피실험자는 마스크를 쓴 채 시속 6킬로미터로 걸으면서 머리를 상하좌우로 움직이고 큰소리로 말하고 걷기만 하는 등의 행동을 한다. 이때 실험장치 안에 소금물 입자(염화나트륨 에어로졸)를 채워 넣고 마스크 안쪽의 농도를 측정한 값을 얻는다. 이게 바로 누설률이다. 등급에 따라 KF 99는 누설률 5% 이하, KF 94는 11% 이하, KF 80은 25% 이하를 기록해야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즉 모든 보건용 마스크는 애초에 바깥공기가 누설된다는 가정 하에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얼굴에 100% 밀착하도록 마스크를 씌우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누설률 25%인 KF80 마스크(누설률 25%라고 상정)를 착용했을 때의 미세먼지를 걸러주는 수치상 효율은 55%에 불과하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보다 훨씬 저조하지 않은가. 하지만 실상은 그보다 더 낮을 수밖에 없다.
#미세먼지 마스크의 함정 2- 실험실과 실생활의 차이
시판되는 보건용 마스크는 대부분 코 부분에 금속 재질의 부품이 들어있어 콧대 모양에 맞게 마스크를 고정하도록 하고 있다.(이를 코편이라고 부름) 그러나 코편을 아무리 잘 조작하더라도 마스크와 얼굴을 100% 밀착시키기는 어렵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던 실험조건보다 아이들은 더 격렬히 움직인다. 피실험자는 시속 6킬로미터로 걷지만 아이들은 달리고 뛰어내리고 뛰어오른다. 게다가 국내에는 어린이용 마스크 기준이 따로 없어 어른용 마스크를 크기만 줄여놓은 것에 불과하다.
억지로 억지로 밀착도를 높일 경우엔 아이가 숨 쉬기 불편해진다. 이 경우 아이가 마스크를 벗어던질 가능성이 커진다. 그보다 더 심각한 건 아이가 필요로 하는 만큼 산소를 들이마시기 어렵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어린이 임산부 노약자 등 취약계층에게는 호흡에 불편함이 느껴지면 마스크를 착용을 중지하라고 권고한다. 호흡곤란으로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얼굴에 착 밀착돼 미세먼지를 잘 걸러주면서도 숨쉬기 편한 마스크가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제품을 발견할 수 없었다.
#오늘의 결론 - 먼지 많은 날은 안 나가는 게 상책. 언젠간 너도 이해하겠지
대한민국의 공기가 깨끗해지는 그날까지, 또는 마스크 기술이 대폭 발전하는 그 날까지 먼지 많은 날은 집에서 놀자 딸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