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를 읽고…
작년즈음, 서점에서 우연히 축구선수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님이 팔짱을 켠 채 서있는 책표지가 내 시선을 끌어당겼다.
(“엥? 손흥민 아빠잖아! 뭐야? 책을 낸 거야?”)
책 표지를 찍어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대박!! 손흥민 아빠가 책을 냈네. 요즘엔 전문적인 작가가 아니어도 책을 낼 수 있는 세상인 듯 해."
손흥민을 세계적인 축구선수로 키워낸 아버지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축구선수로 유명세를 탔던 것도 아니었고, 운동만 하던 사람이 무슨 글솜씨가 있어서 책을 냈을까 라는 의문이 제일 먼저 들었다. 미디어 영상에 비치는 맹수 같은 이미지와 꼬장꼬장한 그의 언행들은 더욱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도록 부추겼던 것도 한몫했다.
새해가 되면서 지인들과 단톡으로 안부를 묻다가 유아교육 전문가인 지인이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된다>를 언급하면서 육아서로도 손색이 없다고 꼭 읽어보기를 추천했다.
“아~그래요??” 내 머릿속에서 잊혔던 그 책이 다시 호기심을 일깨운 건 그때부터였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된다>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성장과정에 놀라고, 삶을 대하는 자세에 또 놀라고, 부모로서의 확고한 교육철학에 한번 더 놀랐다. 무엇보다 손웅정이 독서광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운동선수는 배운 것이 없다는 선입견에 벗어나고자 매일 독서를 하며 자신을 갈고닦았다는 내용에 안일한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부끄러웠다.
큰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지역구에서 몇 안 되는 축구부가 있는 곳이다. 자연스럽게 축구부 코치들이 지도하는 방과 후 수업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그저 취미로 즐기는 운동이었다. 학교 행정상의 문제인지 축구부가 해체되면서 고스란히 학교 축구부는 사설 학원으로 인가를 받음과 동시에 비용 또한 부담스럽게 올랐다.
부담스러운 비용은 가계 사정에 영향을 미쳤고, 취미로 즐겼던 축구라 큰 아이에게 그만두자고 설득했다. 아이는 멋있게 유니폼을 입고 무리 지어 가는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부러운 듯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엄마, 나 선수반 들어갈래. 학원 등록해 줘”
“아침부터 일찍 훈련도 매일 나가야 하고, 밤에나 돼서 집에 들어온대. 그럼 네가 좋아하는 피아노 학원도 끊어야 하는데 괜찮겠어?"
“피아노 학원은 다니고 싶은데……”
“선수반은 축구 선수라는 직업을 목표로 삼고 놀고 싶어도 참고 훈련만 해야 하는 거야. 다른 건 앞으로 하고 싶어도 포기해야 해. 그리고 부상당하면 그동안 못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해서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많이 공부해야 하는데 그래도 할래?”
엄밀히 말하자면 선수반은 꿈도 꾸지 말라는 소리를 돌려 말하는 중이었다. 체대 출신 친구들이 인정한 축구 실력을 갖춘 남편도 아들의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 선수반까지의 실력은 아니라는 말에 마음을 더 쉽게 굳힐 수 있었다.
솔직히 아들의 실력을 떠나서 축구를 더 이상 가르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교육비 외에도 여러 벌을 구매해야 하는 유니폼과 트레이닝복, 점퍼만으로도 100만 원이 웃도는 의류비와 단체회식비, 훈련비 기타 등등 부담해야 할 돈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인지 도통 가늠이 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일단 몇 달만이라도 시켜보라고 얘기하지만 두세 달에 몇 백만 원을 투자해야 하는 기회비용을 생각하자니 무리라고 판단되었다.
다시 책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손흥민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축구를 가르쳐달라는 두 아들의 말에 손웅정은 가차 없이 “축구, 말도 못 하게 힘들어. 정말로. 그래도 할래?”였다. 반복해 물어도 아이들의 대답은 항상 “좋아요!”였고 그렇게 축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자식들에게 축구를 가르친 이유는 그들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행복의 길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자의 질문) “흥민이를 데리고 축구를 해보니, 크게 될 축구선수로 가망성이 보였나요?”
“제가 집중해서 데리고 훈련하다 보면 재미있게 찰 수 있는 정도는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부터 현타가 온다. 아들이 축구 선수반에 들어간다 했을 때, ‘크게 될 수 있을까’하는 성공에만 기준을 두고 생각했다. 이 아이가 실패했을 경우, 내가 들인 돈에 대한 허비만을 적용하며 계산기를 눌렀다. 아이가 얼마나 축구를 즐기고 행복해하는지에 대해서는 열외였다. 뭣이 중헌 지를 모르고 성공과 실패에만 골몰했다.
손웅정은 자녀의 운동을 지원하는 부모들을 지켜보면 많이 조급해하는 걸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내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두각을 보여야 하고, 이른 나이에 경기를 뛰어야 하고, 좋은 성적을 내야 하고, 좋은 학교에 가서 프로로 발탁되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이 룰처럼 아이를 부추기기만 한다는 것이다. 남보다 빠른 성공 가도를 달리고 싶게 하고자 아이는 기본기를 다지지도 못한채, 강도 높은 훈련으로 부상 당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남들만큼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비록 성적이 좋지 않아 프로 축구에 입단을 못하게 되더라도 축구가 너무 좋다면, 돈을 적게 벌더라도 축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하면 된다는 것이다.
“네 삶을 살아라. 주도적인 네 삶을 살아라.”
부모라면 내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건 당연하다. 성공의 유무를 떠나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는 삶을 도와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부모의 역할이라고 하지만 쉽지는 않다. 아이에 대한 애정만큼 성공에 대한 욕심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아들이 축구장 안에서 더없이 행복하길 바랐다. 그걸 돕고 싶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들이 원하는 자신의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부모는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중략)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그저 믿고 응원하고 지켜보는 조력자, 버팀목이 되는 일뿐이다.”
아들이 축구를 한다고 했을 때, 돈에 대한 기회비용만 생각하며 주저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몇 백만 원이 들어도 이 아이가 자신의 삶에서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조력자가 되어주는 것이 맞는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계속하게 됐다면 나도 아이를 위해서 다른 방안을 찾아가며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을까? 부모의 자리를 이용해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수 없도록 내가 막은 것은 아닐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복잡한 심정을 계속 안겨주었다.
어느 날, 어린 손흥민이 어려운 집안 살림살이에 비싼 축구화가 맘에 들어도 매만지기만 하며 사달라고 말도 못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알아채고 눈치 보지 않도록 과감하게 사줬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한 푼, 두 푼에 저울질하던 내 모습이 아들에게 어떻게 비쳤을지, 돈에 전전긍긍한 모습을 보여주며 눈치 보는 아이로 키워낸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됐다.
부모의 역할은 참으로 어렵다. 아이만 낳았다 해서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하던 행동, 언어, 생각들이 내 아이 눈에 담아내면서 그 아이의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생각하니 부모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돈에 치중하여 아이의 인생을 개입한 것도,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보지 않은 안일한 행동에도 되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이가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고 살아갈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자고 다짐해 본다. 그 길이 힘들더라도 아이가 행복하다면 자신이 선택한 삶을 존중해 주고 적극적인 조력자가 되어주기로 말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앞으로 이 아이가 카이로스(기회의 신)를 다시 한번 만난다면 그땐 카이로스의 머리카락을 꽉 붙잡고 기회를 당당하게 내놓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길을 갈고닦기를 그저 뒤에서 응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