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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Feb 26. 2024

처음부터 핑거푸드 같은 글을 쓰고 싶은 건 아니었다

읽어준 당신들, 정말 고맙습니다

30일 동안 매일 짧은 글을 발행하며 에세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했다. 내 글을 에세이로 지정하는 그 순간이 하루 중에 제일 민망하고 어색하다. 정확히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남의 신발을 신어 불편한데, 누군가에게 들키고 지적당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매일 느꼈다. '쟤 왜 저러고 다니는 거야'라는 들리지 않지만 들을법한 수군거림에 숨고 싶은 30일이었다.

그 부끄럽고 지리하기 짝이 없는 글쓰기도 시작은 있다. 글쓰기의 근본으로 거슬러가기엔 갈길이 너무 지루하니 이 30일의 출발점으로 가보자.


1. 에세이를 써보고 싶었다.

에세이는 선호하는 장르가 아니다. 에세이는 작가의 감정에 공명해야 할거 같은 부담을 준다. 정보를 얻는 지식책, 발전을 도모하는 자기 발서, 재미를 주는 소설책이 편하다. 에세이는 두리뭉실하다. 감정만으로도 포화상태인데 타인의 애매모호한 감정을 활자로 만나면서까지 알고 싶지 않다. 그래서 에세이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읽지도 않는 에세이를 쓰겠다고 브런치에 지원하고 4번 만에 합격한 거 보면 내 글은 에세이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어쨌거나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은 써야겠고 일기가 아닌 에세이를 쓰고 싶은데 뭐를 알아야 쓰지. 알기 위해 브런치 글들을 읽었다. 처음에는 억지로 읽었지만, 언제부턴가 눈길 가는 글과 작가가 생겼다. 다음 내용을 궁금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됐다. 공감이 되는 글들을 만나니 나도 저런 에세이를 쓰고 싶어졌다.


2. 책으로 용기를 얻다.

마침 쓰는 독서 모임에서 읽기 시작한 이유미의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은 쓰고 싶다는 목마름에 단비 같은 책이었다. 처음부터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점을 알려주고 일기 쓰기의 중요성도 일깨워주니 꽤 위로가 됐다. 책에 쓰인 대로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글감을 찾고 이슈도 떠올리며 틈틈이 메모로 남긴다. 순간의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이야기 도중 핸드폰을 드는 미안함을 감수하는 중이다. 이럴 땐 머리가 좋았으면 좋겠다.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쓰라는데 이 부분이 어렵다. 쓰다 보면 너무 장황하게 길어지면서 나만의 일기가 돼버린다. 에세이 쓰기 더럽게 어렵다. 안 써지니 미칠 노릇인데 쓰고 싶으니 더 환장하겠다.

그렇게 매일 읽다가 신의 계시를 받듯이 만나고 말았다. 할렐루야!

여러분, 처음 시작은 일단 가볍게 쓰는 거예요. 흔히들 술술술 쓴다고 이야기하죠? 좀 엉성하면 어때요? 처음엔 쓴다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게 좋습니다. 우선 많이 써보는 게 글쓰기 실력 다음 단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지름길이니까요. 오늘 이 한 편의 글만 쓰고 앞으로 영영 절필할 게 아니잖아요. 우리는 내일도 쓰고 모레도 쓰고 한 달 뒤에도 쓸 거니까 '오늘 조금 못 써도 된다, 다음에 더 잘 써야지'라고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시작하세요.

- 이유미의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p72. 우리에겐 다음이 있잖아요(가벼운 마음으로 쓴다)

우리는 기승전결 압박이 있어요. 또 훈훈하게 마무리 짓길 원합니다. 물론 기승전결이 탄탄한 글은 독서를 자극하죠.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 버거워할 수도 있다는 것도 잊지 마세요.

- 이유미의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p75. 빨리 넘어가는 페이지도 넣어주세요(툭 끝나도 좋다)

가볍게 시작해 보자.

맛없는 정식 코스요리는 먹는 이에게도 만드는 이에게도 힘든 일이다. 아무리 신장개업을 한들 아직 실력이 안 되는 요리사의 요리를 누가 먹으러 오겠는가. 일단 가볍게 먹을 수 있는 핑거푸드부터 시작해 보자. 고구마를 굽 듯, 사과 껍질을 벗기 듯, 누룽지를 만들 듯 매일 아이에게 간식을 차려주는 마음으로 담백하게 글을 써보자. 애피타이저로 시작해서 디저트까지 갈 필요도 없다. 일단 코코아 한잔이라도 맛나게 타보자. 코코아를 타는 것도 우유의 온도, 코코아 가루의 분량, 녹이는 스푼의 휘저음의 정성이 들어가 듯 그렇게 쉽지만 정성껏 써보자.



3. 매일 글쓰기 미션을 시작하다.

가볍게 글을 쓰기로 결심했지만 혼자 하려니 일기가 되는 건 아닐까, 어떻게 면 좋을까, 주제는 어떻게 정할까, 할 수 있을까. 오만가지 고민을 하던 중 인스타그램에서 좋은 피드를 발견했다. 마음연결이라는 출판사에서 매일 정해주는 주제와 미션으로 300~500자의 짧은 글을 쓰면서 글쓰기 습관을 만드는 한 달 매일 글쓰기의 기적 프로그램이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그 주제를 얻을 수 있으니 너무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가 어느덧 한 달을 채우고 30개의 짧은 에세이(라고 말하기 부끄럽지만)를 채운 브런치북이 끝을 맺었다.



사실 글을 쓰면도 계속 이게 맞는 건지, 내가 브런치를 쓰레기통으로 사용하며 쓰레기를 투척하는 건 아닌지, 차라리 시간이 걸려도 긴 글을 쓰는 게 맞는 건 아닌지 매일 고민했다. 그럼에도 최대한 솔직하게 써보고 미션에 맞는 글쓰기와 글 줄이기에 신경을 쓰며 30개의 글을 썼다. 그렇게 쓰자 내가 가지고 있던 비계덩이 같던 척척척도 조금씩 빠져나가는 거 같다. 짧게 써보니 장황 대신 결한 글쓰기가 되어가고, 미션을 하며 은유적으로 쓰는 맛도 조금은 알 거 같다. 글쓰기를 하며 지양하고 신경 써야 할 것들도 알게 되서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불안한 글쓰기를 하며 지금 내가 잘하는 건지 확신이 필요했다. 그렇게 30일이 지나고 마지막 날 단톡방의 사람들과 단체보이스톡에서 인사를 나눴다.

진행자이자 출판사 대표님이 그동안 참여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글쓰기는 태도다.
글쓰기를 키우는 방법은 6개월 간 매일 쓰는 거밖에 없다.
글쓰기를 6개월간 쓰다 보면 는다.
글쓰기는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하다.
글쓰기는 정답이 없다.
매일 읽고 매일 쓰는 게 중요하다.


잊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이은경 선생님한테 듣고, 은유작가의 책으로 읽어서 알고 있던 이야기였는데 멋에 취해 잊었나 보다. 꾸준히 쓰기 위해서 다시 한 달 쓰기에 참여하며 30일간 꾸준히 동화를 써보고자 한다. 그렇게 6개월을 지속하다 보면 정식코스는 아니어도 요리 하나는 만들겠지. 곰도 백일을 버텨 사람이 됐는데, 사람이 태어나서 6개월은 버텨야 면이 설 거 같다.




드디어 나의 30일의 여정이 끝나고 핑거푸드 같은 에세이 브런치 북을 발간했다. 발간 버튼을 눌렀다 마지막에 되돌아가기를 서너 번, 조금 더 글을 다듬고 싶은 욕심도 생기지만 용기를 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수차례 브런치북을 뒤적이며 퇴고를 한다. 글을 볼 때마다 수정할 부분들이 눈에 띈다. 잘 못쓰던 내가 조금은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한 가지 결심을 했다.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뒤적인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책에서 새로운 미션을 만난 까닭이다.

우리가 많이 채워 놔야 하는 건 나의 경험, 즉 다양한 미션입니다.
에세이에 넣을 에피소드가 많아지는 거니까 모으기를 게을리하면 안 돼요.
우리는 이제 막 에세이를 쓰려고 준비 운동하는 단계이니 각각의 에피소드를 연결 짓는 연습을 꾸준히 해보도록 해요.

- 이유미의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p78. 한 편에 하나의 에피소드는 지루해요(한 꼭지에 2,3가지 에피소드를 넣는다)


틈틈이 30일간 써간 짧은 에세이들에 살을 붙여 봐야겠다.


https://brunch.co.kr/brunchbook/dailyessey-1


ps. 이 글을 발행하는데 키워드에 에세이가 자동으로 뜹니다! 기분이 무척 좋아요. 오랜만에 당당하게 발행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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