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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Feb 23. 2024

엄마야, 이제 정신차려보자.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를 읽고

어렸을 적부터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아이. 말하기 전에 눈물부터 흘려서 늘 엄마에게 꾸지람을 듣던 아이. 내가 원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먼저 살피느라 내 마음을 살피지 못했던 아이.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자신과 똑 닮은 미니미를 낳았다. 남들은 모르지만 나만은 정확하게 알고 있는, 나와 자로 잰 듯 똑 닮아서 보고 있으면 안쓰럽다가도 나의 예상을 1도 벗어나지 않게 행동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는 게 힘들어 결국은 화를 내게 되는 애증의 관계.   



  

나와 다르게 키우고 싶었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딸을 통해 볼 때마다 고쳐주고 싶었고 그래서 아이에게 상처되는 말을 쏟아내고는 ‘다 널 위한 거야. 나처럼 살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거야. 누구보다 엄마가 잘 알잖아. 너는 나처럼 살게 놔둘 수 없어. 널 사랑해서 그러는 거라고.’라며 나의 말과 행동을 정당화시키고 있었다.

절대 나만은 닮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모질게 굴었지만 그럴수록 더욱 나와 판박이가 되어가는 우리 기쁨이. 위험의 순간 등껍질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달팽이처럼 점점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에 바빠지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딸.     



자신감 없는 딸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아이를 통해 불쑥불쑥 튀어 올라오는 나의 불안임을 알고 있었다.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혹 실패했다 하더라도 금방 회복하는 첫애와 막내와는 달리 딸아이는 도전 자체를 두려워했고, 그 두려움의 밑바닥에는 실패할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기쁨아. 왜 학교에서 선생님이 발표해 보라고 했는데 안 했어?”

“아 그거. 사실 나 다 알고 있었는데 혹시라도 내가 틀릴까 봐.”     


자신이 틀릴까 봐, 거부당할까 봐 지례짐작해서 먼저 선을 그어버리는 기쁨이. 그런 기쁨이를 보는 게 답답하고 속상했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보다 내가 더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그 불안감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아이를 닦달하고 채근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자녀를 키우는 궁극적인 목적은 자녀가 주도적이고 독집적인 성인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립’이다. 인생을 항해에 흔히 비유한다. 우리 삶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배의 선장이 되어 망망대해를 항해해 가는 것과 같다. 아이를 낳았다면 그 아이들이 내 배에서 큰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내 배에 계속 태우고 살 수는 없다. 애들을 낳아서 자녀의 배들을 줄줄이 내 배 옆에 달아놓으면 어떻게 될까? 서로 부딪힌다. 아이들이 자기 갈 길을 못 가고 부모도 아이도 헤매게 된다. 아이가 스스로 배를 띄워 제 길로 항해해 가지 못하고 부모 길을 계속 따라가려고 한다거나 성인이 되었는데도 독립적이지 못 하고 의존적이라면 육아의 최종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한 것이다.
  -p.34     


내 불안 때문에 아이의 배를 내 옆에 묶어 두고 있었던 나. 아이가 실패했을 때,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고 말은 해 줬지만 내면에서는 ‘이런 것 하나도 제대로 못 하면 대체 넌 뭘 할 수 있는 건데. 이러니 내가 널 혼자 둘 수가 없어.’라는 말이 내 마음에 요동치고 있는데 아이에게는 괜찮다고 말을 했으니 아이라고 과연 느끼지 못했을까?

부모의 불안은 숨길 수 없고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고 하던데, 내 아이가 아무리 둔한 곰 같은 아이라 할지라도 모두 느끼고 있었으리라.     

아직도 혼자 집에 있는 것을 무서워하고, 밖에 나갔을 때 혼자 화장실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그래도 전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다. 엄마 여기 꼭 있어야 해, 절대 다른 데 가면 안 돼. 를 수십 수백 번 말하고 안심되는 대답을 듣고 나면 후다닥 다녀오기는 하니까) 처음 만난 친구들,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우리 기쁨이. 원하는 것이 있어도 엄마가 안된다고 거절할까 봐 부모에게 조차 머뭇거리며 자신의 생각을 숨기는 우리 기쁨이.     

많은 부모가 육아를 밥 짓기가 아니라 만두 만들기라고 착각한다. 내가 최선을 다해서 고기도 썰어 넣고 파도 넣고 뭔가 많이 넣으면 귀한 만두가 되는 줄 안다. 아이들이 비어 있다고 생각하고 부모가 자신을 희생해서 다 넣어주려고 한다. 그러다 밥을 망치는 것이다.   
  -p.55

어쩌면 나는 아이의 잠재력을 무시한 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와 다르게 조각하고 싶다고, 나처럼만 안 되면 된다는 생각에 내 기준에 적합한 만두피에 아이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속재료들로 꽉꽉 채우고, 그러다 만두피가 터져버리면 이것도 못해서 되겠냐며 안달복달의 반복.     


 ‘호두 까기 요법’은 자신의 단점을 보듬어 안으면서 자존감을 올리는 방법이다. 어떤 점이 나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면 이걸 숨기거나. 단단한 껍데기에 싸서 자꾸 가리려고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의 단점을 숨기려고 포장하는 일은 정신적으로 피곤하다. 또한 서로서로 다른 사람들의 포장된 모습만 보다 보니 남들은 완벽한데 나만 단점투성이인가 하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자존감은 더 낮아진다.) 이런 단점을 오히려 당당하게 드러내는 역발상법이 바로 호두 까기 요법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부인하기보다 긍정적으로 보듬어 안고 당당하게 드러내면 다른 사람들이 그 부분을 험담하기가 오히려 어려워진다.  
-p.87  

아이의 부족한 부분(사실 내 눈에만 부족해 보이는 것 일 수도)을 채워줘야 한다는 생각에 혼자만의 레이스를 시작했던 나. 영문도 모른 채 엄마를 따라가다 자꾸 넘어지고, 넘어졌는데 위로는 못 해줄망정 자꾸 채근하는 엄마. 아이의 낮은 자존감은 내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아이를 위해서 했던 것은. 없.었.다. 아이의 부족한 모습을 괜찮다고 내가 먼저 인정했다면 어땠을까. 단점마저도 너의 일부분이라고 주문을 외우듯 머리로만 인정하는 게 아니라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아이를 믿었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한 뼘은 더 나아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이는 나와 다른 존재이다. 내가 아이의 미래까지 점쳐볼 수 있는 능력은 내게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내 눈에 부족해 보이는 것들이 나중에 아이가 성장하는데 거름이 되고 바탕이 될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아이에게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부모는 행복한 부모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기쁨이가 가진 잠재력을 펼치기를 기다려주면 아이는 충분히 자기 길을 찾아가는 선장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내 마음에 뿌리내리길 소망하며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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