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뒤, 나의 미래에 대한 확언
기내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나온다.
"우리 비행기는 곧 홍콩국제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얘들아, 게임 그만 끝내고 각자 짐 챙겨."
"네, 엄마 우리 숙소 어디예요? 수영장은 있죠?"
"그럼~ 너희들 신나게 수영하라고 하버뷰에 수영장까지 큰 곳으로 예약해 놨어."
"엄마, 나 디즈니 랜드는 꼭 갈래."
"그래, 엄마 오늘 일 잘 마무리하고 한 달 동안 머무르면서 가고 싶은 곳 다 알차게 놀다 가자."
국내 개인책방 매출 1위를 찍었다. 중국, 대만, 홍콩에서 숨은 그림책을 발굴하여 번역하고 출간한 덕에 ‘고유한 책방’의 매출을 정점에 올려놓은 영광을 안았다. 꾸준히 홍콩 작가들의 그림책을 번역한 인연으로 운이 닿아 ‘고유한 책방’ 첫 해외지점을 홍콩에 내게 됐다. 한 달 동안 머무르면서 매장도 알아볼 겸 본격적인 시장조사에 들어가려고 한다. 무엇보다 더 뜻깊은 일은 브런치로 연재하며 출간한 책 <<40대 엄마, 오늘도 뜁니다.>>가 홍콩, 대만, 중국으로 번역되는 출판 계약을 맺게 되었다. 이번 일만 잘 성사되면 홍콩 해외지점 오픈과 함께 나의 북토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성과에 따라 대만, 상해를 넘어 영국과 독일까지 점차 지점을 늘려가고 싶은 대찬 포부도 생겼다. 글을 쓰면서 제대로 팔자 고친 사람 그게 바로 나다. (나야, 나~ 바로 나~~)
글은 신비로운 마법을 지니고 있다. 나를 돌아보며 나를 찾겠다고 쓴 글들이 하나하나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내면에 숨어있던 자아는 내 손가락 끝에서 어우러지고 버무려지면서 나를 찾아주는 기적을 일궈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며 매일같이 했던 운동과 시간들이 축적되어 하나의 책을 출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그토록 희망하던 박사 공부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대학원을 수료하고 결혼과 동시에 큰 아이 키우느라 논문이 늦어져 석사도 힘겹게 졸업했다. 막연히 박사까지 마칠 수 있겠지 있겠지 하며 미련만 앞세우며 육아하던 그 시절에는 박사와는 인연은 없다고 생각했다. 외벌이에 아이 둘까지 키우며 큰 아이 교육비에도 등골이 휘청거렸고, 둘째가 뭐라도 배우고 싶다고 말을 꺼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던 게 불과 5년 전의 일이다. 글로 싹을 틔워 인생을 활짝 피워놓고 나니 실로 글의 힘을 체감할 수 있었다.
계약은 원만히 성사되었다. 호텔로 돌아오니 아이들은 역시나 물고기가 물 만난 듯 수영장에서 정신없이 놀고 있다. 남편은 선베드에 누워 와인을 마시며 나에게 손짓한다. 내가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건 제주 국제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을 뒷바라지해주며, '고유한 책방' 제주분점을 관리해주고 있는 남편 덕분이다. 워낙 치밀하게 계획하고 분석하는 사람이라 일에 대해서 조언을 아낌없이 해준다.
관광객이 붐비는 금요일 저녁 7시, 호텔 안에서 홍콩섬을 바라보며 펼쳐지는 화려한 야경쇼와 함께 가족과 먹는 저녁은 행복 그 잡채다. 홍콩으로 오기 전날까지 '고유한 책방' 서울본점에서 원데이 클래스와 북토크가 계획되어 있어 홀로 서울에서 집필을 하며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즐기며 거실에 앉아 바라보는 한강뷰 아파트보다 가족과 함께 바라보는 한 시간짜리 야경뷰가 훨씬 황홀하게 느껴진다.
북토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북토크의 저자는 박재범이었다. 박재범의 찐 팬으로서 사심을 담아 정성을 들이붓다시피 한 건 안 비밀이다. 아이돌부터 시작해 사업가로 성공한 그의 스토리가 책 한 권으로 지난달에 출판되었다. 어린 나이에 홀로 한국으로 건너와서 대성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북토크가 끝나고 그는 우리 책방에서 책 몇 권을 골라 지인에게 선물하겠다며 사가는 센스까지 갖춘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박재범과의 악수와 포옹은 내 인생 최대의 두 번째 사건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은 가보로 보관하리.
지 이이이 잉,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작가님, 축하합니다. <<40대 엄마, 오늘도 뜁니다.>>가 10쇄에 들어갔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내일 아침 우리 가족은 마카오로 2박 3일 여정이 계획되어 있다.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서 둘째 아이가 기대하고 있는 디즈니랜드에 가려고 한다. 아이들이 이번 여행으로 견문을 넓히고 다양한 문화에 깊이 있게 이해를 하기를 바라본다.
2028년 11월 10일 금요일, 구름 한 점 없는 맑음.
내 인생의 끝내주는 하루가 이렇게 지나간다. 그저 행복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