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독립선언.
잠깐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가보겠다.
"딸, 글짓기 숙제한 것 좀 아빠 보여줄래?"
"아직 안 했는데."
"아빠, 글짓기가 뭐야?"
흐릿한 기억이지만 과학의 날이었을까 학교에서 과학 상상 글짓기 숙제를 내주셨다. 국민학교를 입학하고 '글짓기'라는 숙제를 처음 접한 나는 칠판에 쓰인 '글짓기' 단어가 그저 생경하기만 했다. 글 짓는 건 글을 쓰라는 얘기겠지? 하지만, 어떻게? 뭘?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각할수록 마음만 복잡했다.
여유로운 주말, 책상에 앉아 원고지를 앞에 두고 손도 못 대며 한숨만 푹푹 쉬고 있던 나. 그 뒤에서 우리 아빠도 한숨만 짓고 앉아있다. 성격이 급하고 뭐든 딱딱 맞아떨어져야 하는 파워 J의 아빠가 소매를 걷어붙인다. "원고지 갖고 와봐." 아빠의 말투가 편안하지 않다. 제일 힘든 것이 자식 농사라는데 본인의 기대만큼 영특하지 않은 내가 늘 아빠는 아쉬웠을 거다. 원고지는 아빠의 손놀림에 따라 한 칸 한 칸 채워져 갔다. 원고지가 채워져 갈수록 내 자존감은 나를 계속 지워대는 기분이었다.
그 후에도 글짓기 숙제는 힘을 들이지 않고 클리어했다. 내 글씨체로 옮겨 써야 하는 위장술만 늘어갔다.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상도 탔다. 남들이 알아챌까 봐 상장을 받고서는 얼른 책가방 속에 쑤셔 넣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인지 심장이 나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남들과 다르게 나는 글을 쓸 줄 모르는 아이로 생각하며 자랐다.
중학교 진학 후 엄마는 나를 논술학원에 보냈다. 왜? 왜? 왜? 하필 논술학원이란 말인가. 선생님은 S대 학력을 들먹이며 자신의 화려한 경력을 읊어댔다. 경계심에 가득 찬 마음으로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한 번도 글을 써본 적 없는 나의 얄팍한 글쓰기 능력이 까발려질까 봐 겁이 났다. 그야말로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성실하게 생활하던 나로서는 첫 위기에 봉착했고, 결국엔 날라리 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라 생각한 '학원 땡땡이'를 감행하고 말았다. 글쓰기라는 녀석이 내 영역에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두꺼운 철벽을 계속 해서 쌓아갔다.
결혼 11년 차,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양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책으로 육아를 배웠다. 책으로 의지한 인생은 계속해서 나를 책으로 이끌었다. 독서토론 세계에 발을 담그기도 했고, 독서토론 리더 수업도 듣게 되었다.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독서와 글쓰기는 한 세트처럼 자꾸 내 영역에 침범해도 될지 간을 보는 듯했다. 나이가 든 탓인지, 아이를 키우면서 집에 주저앉은 나에 대한 발버둥인지 무언가에 새롭게 도전하려는 마음이 움트기 시작했다. 다른 건 쉽게 발을 들여도, 글쓰기만큼은 발을 살짝 디밀었다가 다시 빼게 만드는 범접하기 힘든 큰 산과 같은 존재였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그래도 글쓰기에 대한 미련은 내려놓지 못했던 것 같다. 글쓰기 수업을 결제할까 말까 매번 마우스 버튼만 공허하게 내면서 망설이기를 몇 달했다. 내 인생을 통틀어 한 번도 완수해보지 못한 이 놈을 내가 넘어설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감의 문제이기도 했다. 왠지 지금 넘어서지 않으면 죽어서도 후회할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글쓰기 수업 인연은 따로 있었나 보다. 인생자체가 프로 심사숙고인(人)인 내가 이은경 작가의 슬초 프로젝트 브런치 작가되기 수업을 맞닥뜨리고 고민 없이 도전하게 됐다. '저렴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사람만 신청하세요. 대신 호되게 멱살 잡혀서라도 성장하고 싶은 사람을 찾겠다.'는 야심 찬 문구가 내 눈에 확 들어왔다. 솔직히 브런치가 뭔지 몰랐다. 아무나 글을 쓰면 글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라 생각했다. 호기롭게 신청을 하고 첫 수업을 듣는데 아뿔싸!!!!!!! 글을 써서 작가가 되어야 하는 거네. "나 뭘 믿고 이런 곳에 발을 담근거니?" 아마도 신청 버튼을 클릭한 날 귀신에 홀린 게 자명했다. 첫 수업은 들었고, 뒤를 돌아보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호되게 멱살 잡힐까 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말이 되는지 안 되는 지도 모르고 무작정 썼다. 신기하게도 남자아이 둘을 키우면서 셀 수 없이 울고 힘들었던 시간들을 글로 토해낼 만한 영감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내 글감의 VVIP가 되었다. 인생에서 파이프를 많이 심어두라는 말을 듣고 이것저것 심어봐도 헛된 삽질인가 싶었던 나날이 많았다. 육아라는 인생이 글쓰기라는 삽질과 만나 파이프 라인이 연결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난 당당히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어랏! 되네? 이게 되네~ 나도 되네~ 얼떨떨하면서도 성취감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념일과도 같은 날이 왔다. 30년 전 책가방에 상장을 쑤셔 넣던 그 아이는 브런치 작가 선정 메일을 독립 선언문처럼 카톡에 뿌려대고 글쓰기 독립 만세를 알렸다. 내 생애 첫 번째 글이 그것도 공인된 플랫폼에 합격하여 인정받았다는 것에 큰 의미로 다가왔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듯 내 인생의 철벽이 그렇게 무너졌다. 내 의지와 나의 힘으로 글을 쓰면서 내 인생의 글쓰기 독립이 찾아왔고, 30년 전 숙제를 드디어 완수하게 되었다.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고 세상을 보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것들까지도 잠깐 멈춰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제 글감을 찾아 글로 꽃을 피우는 글가드너의 삶으로 새롭게 살아가보고자 한다.
아빠, 나 작가 됐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