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엑스승 이v에엑스승 엑스에이v승 엑스에이^승
며칠 전 직장 앞 작은 서점에 책을 구경하러 갔다.
그 서점을 들어가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크지 않은 공간 안에 가득히 퍼져 있는 책 냄새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한 때 내 방을 가득 채우던 냄새이기도 했고,
한 때 친구들과 울고 웃었던 학교 독서실을 가득 채우던 냄새이기도 했고,
대학생이 되서도 문득 그리워 부러 찾아가서 맡았던 냄새이기도 했다.
얼마 전 교보문고에서 나는 냄새를 향수로 만들었던 기사를 봤는데 비단 나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닌 듯 하다.
그리고 변비에도 좋다고 한다.
바쁜 일상에 이미 나온지 오래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도 한 번 펼쳐보았다가,
요즘 우후죽순으로 나오고 있는 부동산 책들도 한 번 펼쳐보았다가,
좀 교양있게 살아볼까 싶어 제일 어려워 보이는 철학책의 목차만 한 번 읽어보고는 닫기를 반복하면서
서점을 빙글빙글 돌다 보니
어느새 한껏 쌓여있는 문제집들 앞에 서 있었다.
감히 말하건데, 그리고 분명 기억이 조작되어 있긴 하겠지만,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당시 시중에 나와있던 수학 문제집의 90%는 다 풀었다고 장담할 수 있다.
물론 지방이기도 했고 그 때 만해도 문제집들이 이렇게나 많지는 않아서 가능했던 일 일수는 있지만
(여전히 '수학의 정석'이 정석 책이라고 불리던 시절...)
적어도 '자이스토리', 그리고 '쎈'은 지금도 수백문제를 풀던 기억이 생생하다.
고작 문제집 표지만 본 것임에도 어디선가 입시로 인해 고통받고 있을 학생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짠한 감정과 응원을 함께 속으로 보내며 표지 하나하나를 손으로 훑었다.
표지의 인쇄 방식에 따라 오돌토돌한 느낌이 드는데 이 느낌을 나는 학생 때도 참 좋아했다.
수십권의 문제집에 지쳐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고 책상에 엎드려 있을 때도
손만큼은 문제집 겉면의 오돌토돌한 부분을 계속 훑으며 스트레스를 소소하게 풀곤 했다.
그러다 문득 '미적분'이라는 글씨가 보이기에,
요즘 미적분이 점점 선택 과목으로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었던 것도 기억나기에,
미적분 문제 부분을 펼쳐보았다.
근데 웬걸, 문제를 풀 수 있냐 없냐를 떠나서
기호의 명칭도 기억이 나지 않는 거다. 높은 음 자리표처럼 생긴 이걸 뭐라고 읽더라?
가히 충격이었다.
아무리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훌쩍 넘어가는 중이라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손도 쓰지 않고 눈으로만 미적분 문제를 몇 백개씩 풀어가던 과거의 나는 어디가고
'높은 음 자리표' 이러고 있는지, 심지어 과학고 출신이라는 애가.
인터넷에 찾아보기에는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꾸역꾸역 기억을 헤집으며 '인테그랄'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냈다.
가볍게 수학 문제나 하나 풀다가 가볼까라는 생각은
이미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음이 명백하게
단 한 문제도 풀지 못하고 좌절되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인정하지 못하고 풀 수 있는 문제를 찾아내려던 나는
(e^x)' 를 xe^x 라고 말하는 나 자신을 보고서야 포기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은 가히 씁쓸했다.
정말 과고 다니는 동안에 수학에는 자신있던 난데
세월이 이렇게 무색하다니...
그렇다고 그 지난 세월동안 대신 시간을 투자해온 지금의 전문분야에 자신이 있냐는 질문에도
단언컨대 X 였다.
수학은 그렇다 치고
당시 24시간 중에 최소 17시간은 붙잡고 있었을 수학이 까먹어졌을 정도면
그 때 친구들과 정말 짬을 내서 히히덕 거리던 크고 작은 일들이
지금보다도 더 잊혀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고를 다녔던 과거의 내 일상들을 여기에 옮기고자 마음먹게 되었다.
전체 평균 점수가 30점인게 익숙했던 각종 시험들과,
교실 바로 옆에 20평 남짓하게 있던 '닭장' 이라고 불리던 축구장과,
밤이면 몰래 2층 남자 애들 기숙사로 내려가 치킨을 뜯어 먹었던 기억들과,
공부를 새벽까지 더 하고 싶어 점호할 때는 자는 척하다가 슬그머니 일어났었던, 그 공부가 뭐라고 그것에 진심이었던 나날들을
잊게 된다면 공허해질 것 같았다.
싸이월드가 살아나고,
하이킥을 만드는 각종 과거들을 불러일으키며,
어떻게 보면 가학적인 향수를 즐기는 것이 유행이 된 지금이
최적의 시기가 아닐까 싶다.
다음 글에는 과고생의 하루 일과를 적어볼까 생각 중이다.
내가 기억하는 대로 끄적여보겠지만
나중에는 분명 친구들의 기억을 빌려야 하지 싶기도 하다.
언젠가 한번쯤 치열하게 살아본 경험이
평생의 자산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보며,
Hoc quoque transib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