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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뚜기호롱불 Jun 08. 2022

2화. 과고생이라고 쉬는 시간에도 공부하지는 않더라

성적이 좋은 과고생은 쉬는 시간에 공부한다 vs 잔다 vs 운동한다

세간의 말에

'남들이 쉴 때 일해야 이긴다'

라는 문장이 있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

도 있었다.


굳이 '있었다' 라고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이 두 문장이 요즘은

'남들이 쉴 때 일하면 손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피곤하다'

는 말로 바뀌어 불리기 때문이다.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쉬는 시간에도 공부를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업과 야자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만 합치면 1시간 20분이나 되고,

그 시간은 본고사 문제 3문제나 풀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수업 따라가랴 학원 쫓아다니랴

허겁지겁 허둥지둥 다니기 바쁜 일정 속에서

개인 공부를 할 수 있는 80분이라는 시간은 매우 중요했고 꽤 소중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막상 과고를 다녀보니,

머리가 좋은 과고생들은 쉬는 시간에 운동을 하더라,

성적이 좋은 과고생들은 쉬는 시간에 잠을 자더라,

열심히 하는 과고생들은 쉬는 시간에 공부를 하더라.


물론 교집합도 있고 여집합도 있긴 하지만,

쨌든 나는 '열심히 하는 과고생'에 속했다.

뭐 그 때는 그게 당연하기도 했고 ('머리가 안 좋은 새는 일찍 일어나야 이긴다'는 국룰!)

같은 반 친구 20명 중에 8-9명 정도의 동지들이 있었기에 계속 문제집을 푸는 것에 불만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지금 돌이켜 보니

정작 같이 자리를 지키던 동지들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고

오히려 쉬는 시간에 빠득빠득(?) 운동을 하러 나가는 친구들의 얼굴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에는 구경만 하지 미처 어떤 감정이라 형언하지는 못했는데

그 운동하는 광경들이 참 신기하고 참 보기 좋은 모습으로 회상된다.

10분 만에 땀 쫙 빼고 화장실에서 대충 땀만 닦고 들어와서는 수업에 바로 집중하는 얼굴들을 보고 있으면

꼭... 무슨 하버드생 같은 느낌적인 느낌으로 다가와서

'걔들은 그 때부터 이미 그랬구나' 싶어 이제와 부럽다.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드라마를 보면서 커 온 할미의 색안경... )


하지만 정작 하버드도서관 새벽 4시반은 이렇다카더라

그래서 그런가, 지금의 나는 일이 너무 많을 때는 오히려 운동으로 몸을 풀고 다시 시작하려는 게 습관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그렇게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물론 게으름이 이기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확실한 건 그때의 친구들이 대단하게 기억되고 있고 지금,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두산백과 doopidaP

우리 학교의 운동장이다.

축구 골대가 없었던 건 맞지만

농구 골대 하나 정도는 있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인터넷에 사진을 찾아보니 완전 텅 빈 공터가 나오는 것이, 그것도 아니었나보다.

고등학교 필수 체육 시험인 50m 달리기를 평가할 공간이 없어서

교실 복도를 뛰며 시험을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어렸을 때도 '이걸 운동장? 축구장?이라고 불러도 되는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사실 이미 그 때도 모두 '닭장'이라고 부르긴 했다)

지금 가서 보면 아마 더 작아 보일 것이다.


이 좁은 공간은

쉬는 시간마다 다시 나누어 져서

-축구를 하는 친구들이 메인으로 큰 영역을 썼고

-그 사이 빈 틈을 노려 농구를 하는 친구들이 함께 썼다.

-그리고 가끔 숨 돌리러 나온 여자애들은 사진에 보이는 컨테이너 박스 오른쪽 계단에 앉아 있었다.


계단 위에 건물 옆면을 따라 올라다가 보면

층마다 작은 창문이 나 있다.

-3층의 작은 창문, 내가 운동하던 친구들을 지켜보던 그 창문이다.

(변태였던건가...?)


과학고등학교는

나름 각 지역에서는 공부 잘 한다고 난다긴다 하는 학생들이 모인 곳이다.

하지만 다시 그 80명 사이에서 등 수가 매겨져서 누군가는 또 꼴등이라는 이름표가 붙었으며

중간기말고사는 기본이요, 교내 경시대회다, 올피아드다, 과학 실험 평가다, 연구 발표 평가다, 뭐다

수없이 치뤄지는 시험과 평가가 이루어졌다.

사실 워낙 경쟁 속에서 살아온 아이들이라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이게 당연하다... 어떻게 보면 이것 또한 특권이다... 쟤도 해내는데 내가 못 해낼 게 뭐냐...' 등

나름의 방식으로 숨통을 어떻게든 틔려고 노력했었을 것이다.


내 생각컨데 그렇게 빠득빠득 운동을 하러 나가는 친구들은

아마 운동으로 숨통을 터 연명했었던 것 같다.

저 좁은 공간에서, 학생 수도 모자라 10명이든 11명이든 인원을 맞추지도 못 하고,

공은 차고 튀기는 대로 담장을 넘어가 버려 학교 밖으로 날라갔는데

뭐 그리 운동 자체가 즐거웠으랴,

그저 그 순간만이 줄 수 있는 여유로 지친 심신을 달랬던 것이겠지.


창문에서 훔쳐보던 내가 어느새 의료인이 되어 환자들을 여럿 보다 보니 그 때의 친구들이 더 아련하게 생각된다.

"선생님,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데 저는 자꾸 먹는 걸로 풀려고 해요.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라는 환자의 질문에

"스트레스는 운동으로 푸셔야 돼요~"

라고 선뜻 대답할 수가 없기에

그것을 그 어린 나이에 하고 있던 친구들이 이제서야 새롭게 느껴진다.

젋어서 가능했던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 친구들은 아직도 쉴 때는 운동을 하러 가는 게 함정이다...

여전히 게으른 나란 아이... 이제 어른이다 임마... (*출처 브런치 작가 하띠 HADDI님 '자괴감' 편, 2019.01.22. 작성)



TPO에 맞는 스위치 ON/OFF

직장인이 된 지금의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을 키우기 위해 그간 그 고생을 하기도 했고

환자를 볼 때도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이다.


내 머릿속 그 친구들은 이 능력을 가장 빠르게, 가장 잘 활용한 친구들이기도 하다.

비단 그 친구들 뿐일까, 같이 그 닭장을 누볐던 모든 친구들이 그랬다.

그래서 학교를 떠올리면 저절로 생각나는 닭장,

그리고 닭장을 떠올리면 꼭 따라 생각나는 사람들인가보다.

정작 연락하고 있는 친구들은 몇 없지만...


머리 좋고, 공부 잘하고, 열심히 하던 우리 과고생들

그 때의 기억을 너무 힘들게만 떠올리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드는 날이다.



언젠가 한번쯤 치열하게 살아본 경험이
평생의 자산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보며,
Hoc quoque transi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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