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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석 Dec 22. 2019

블랙 호크 다운(2002) 감상문

*주의* 스포포함

블랙 호트 다운은 1992년 소말리아 내전이 극에 달했을 당시 파견된 미군 델타포스와 레인저 부대의 처절한 전투를 그리고 있다. 블랙 호크 다운은 말 그대로 군사 헬기인 '블랙 호크'가 떨어졌다는 의미다. 영화 속에서 블랙 호크가 떨어지면서 모든 비극이 시작된다. 


영화는 정말 처절하고 처참하다. 이게 실화라는 것을 믿기 싫을 만큼 러닝타임의 90%는 총성과 신음으로 가득 차있다. 이 영화는 세계대전이나 월남전 같은 대규모 전면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세계에선 계속해서 처참한 국지전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혼란에 빠트렸던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전우를 구하기 위해 자꾸만 전장으로 돌아가는 군인들


1) 블랙번 일병은 작전이 시작되자 마자 헬기에서 하강하던 중 로프를 놓치고 추락한다. 결국 그를 위해 작전 중이던 세대의 험비가 반군이 가득한 시가지를 뚫고 부대로 돌아간다다. 그 과정에서 험비의 기관총담당 군인이 총에 맞아 즉사한다. 


   * 이 시점부터 혼란이 시작됐다. 부상당한 한 명을 위해 죽은 다른 한 명


2) 블랙번을 후송하는 세 대의 험비를 공중 지원하기 위해 블랙 호크 61호가 함께 이동한다. 이동 중 61호는 반군의 로켓포를 맞고 추락한다. 추락한 탑승자들을 구하기 위해 작전에 투입됐던 전 병력이 추락지점으로 향한다. 헬기가 추락한 곳은 반군의 본거지 한복판이다. 


   * 추락한 61호의 생존자는 겨우 한두명이었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수십명의 군인이 적진 한복판에 남는다


3) 61호의 부상자를 이송하기 위해 블랙 호크 64호가 나선다. 그러나 부상자를 태우던 중 이 64호 마저 로켓을 맞고 추락한다. 64호의 조종사 한 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사망한다. 


4) 61호와 달리 64호는 지상 병력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저격수 두 명이 64호의 생존자를 지키기 위해 급파된다. 지원 병력이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는 상황. 추락한 64호로 몰려드는 반군을 단 둘이 막다가 총알이 바닥난 두 저격수는 장렬히 전사한다. 


   *한 명의 부상자를 구하려다 두 대의 헬기가 추락했고, 헬기의 탑승자를 구하려다 작전에 투입된 전 병력이 적진에 고립된다.


처음 작전은 잊혀진지 오래다. 구조가 구조를 부르는 이 끔찍한 연쇄가 영화 내내 계속 됐다. 


이 과정을 전우를 위한 아름다운 희생이라고 받아들일 수가 없어다. 그냥 한 두 명 포기하면 안 되는 거야? 블랙번 일병을 내버려 뒀다면? 블랙호크 61호를 포기했다면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한 명을 구하다가 두 명의 죽으면 아무런 의미 없는 거 아니야? 


이런 추측도 해봤다. 지금 위기에 처한 한 명을 구하러 가야 다음에 본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군가 구하러 올 것이라 기대해서 저러는 것일까? 이런 믿음이 바로 군인들을 불구덩이로 뛰어들게 하는 걸까? 미군이 강조하는 전우애란 것은 서로가 서로의 죽음에 보험들어 주는 유대감에서 비롯되는 건가? 


영화에서 한껏 아름답게 표현된 영웅적인 전우애가 내겐 아름답지 않았다. 모든 이들의 죽음은  처참한 희생일 뿐이었다. 죽으면 그 사람의 인생은 끝이다. 훗날 성대하게 기리고 영웅으로 떠받든들 그 날 죽은 사람의 인생은 이미 없는 거다. 



인간은 체제와 조직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았던 가치를 만들어 모두가 믿게 하고 그렇게 맹목적인 다수를 만들어 지배하곤 한다. 전쟁 영웅, 민족의 승리, 정의 등등. 이런 것들을 믿고 죽어간 사람들은 그들 덕에 누군가가 이룬 무언가의 혜택을 받을 수도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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