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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석 Sep 17. 2018

프랑크푸르트의 버스커들

    짧은 유럽 생활을 하면서 내가 꾸준하게 해온 일이 딱 한 가지 있다. 난 거리에서 버스커들을 만날 때마다 영상으로 그들의 연주를 남겼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이 취미는 유럽 여기저기를 돌면서도 계속됐다. 그저 공연과 연주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다. 자린고비 같은 교환학생을 하면서 대형 콘서트를 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렇게 작은 길거리 공연이라도 볼 수 있는 게 좋았다. 그렇게 반년 간 찍어 모은 영상이 은근 많다. 그 영상들을 다시 볼 때면, 그들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느꼈던 신선하고 짜릿한 기분들이 생각난다. 우선은 내 고향 프랑크푸르트의 버스커들을 소개하고 싶다. 그들 덕에 내가 매일 걷던 짜일(Zeil) 거리가 날마다 특별할 수 있었다.


아, 짜일 거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각종 쇼핑몰들이 몰려 있고 유동 인구도 가장 많다. 자연히 프 푸에서 연주 좀 한다는 버스커들도 이곳으로 몰린다. 내가 소개할 버스커들도 모두 짜일 거리를 무대로 삼았던 사람들이다.  



1. 말머리 드러머

    이 분은 나의 최애 버스커다. 항상 말 가면을 쓰고 있어서 '말머리 아저씨'라고 애칭까지 붙여줬다. 말머리 씨는 짜일 거리 최고 실력자이자 가장 꾸준한 버스커다. 내가 머물렀던 6개월 동안 말머리 씨는 연주를 멈춘 적이 없다. 언제나 일주일에 서너 번은 연주를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그를 짜일의 터줏대감이라 부른다. 그의 버스킹 세팅은 항상 조촐하다. 악기 중에 진짜 드럼은 하이햇 한 개와 톰톰 하나가 전부다. 나머지는 찌그러진 냄비, 스테인리스 볼(Bowl) 같은 것들이다. 이런 빈티지한 구성만으로도 그는 거리를 꽉 채울 소리를 만들어 낸다. 그의 현란한 손놀림 덕인지 음악에 맞춰 흔들리는 말가면 덕인지 그의 공연은 항상 인기가 많다.

    말머리 아저씨는 나에겐 좀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내가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지 겨우 이틀째 된 날 말머리 씨를 처음 만났다.  그때도 영상을 찍었다. 물론 팁도 항상 줬다. 저 아저씨 때문에 5유로는 넘게 쓴 것 같다. 그러다가 프랑크푸르트를 떠났던 8월 16일에도 그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와. 난 이런 의미 부여를 좋아한다. 내 처음과 끝에 이분의 연주가 함께 했다는 것. 이 날은 마지막이란 생각에 그의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놀랍게도 공연이 끝나자 그는 가면을 벗었다. 그의 얼굴은 내 또래 정도로 생각보다 젊어 보였다. 난 지금이 아니면 후회할 것 같아 그에게 다가갔다. "저 6개월 여기 살았는데 그동안 당신의 팬이었어요. 독일을 떠나는 날 당신의 얼굴을 보게 되어 영광이에요." 팬심을 가득 담아 인사했다. 그는 작년에 한국에 1주일 정도 살았더라며 반갑게 받아주었다. 괴짜처럼 말머리를 쓰고 공연하던 모습과 달리 웃음 많은 순박한 모습이었다. 헤어지며 그와 악수를 했다. 그 순간 내가 진짜 이 곳을 떠나는구나 실감했다.



2. 바이올린 아저씨

    짜일 거리 지상에 말머리 아저씨가 있었다면 지하엔 바이올린 아저씨가 있다! '합트바헤(Hauptwache)' 역은 중앙역을 제외하면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큰 지하철역일 것이다. 짜일 거리의 중심이 되는 역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바이올린 아저씨는 이 곳의 터줏대감이다. 말머리 씨만큼은 아니지만 6개월 내내 꾸준히 출연하셔서 고퀄리티의 연주를 들려주셨다. 재밌는 건 내가 프푸를 떠난 8월 16일에 이분의 연주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땐 평소와 달리 짜일 거리에서 연주를 하고 계셨다.

    영상에서 나오는 곡은 이 분의 필살기이자 18번 곡이다. 거의 볼 때마다 한 번씩은 이 곡을 연주하신다. 마치 "내 미친듯한 손놀림을 보아랏!"하며 연주를 하는 것 같다. 되게 유명한 곡인 건 알겠는데 클래식을 잘 몰라서 제목을 모르겠다. 이 곡이 시작되는 순간엔 언제나 지하철역의 모든 시선이 아저씨에게로 쏠린다. 시선을 받은 아저씨는 미친 연주로 산만하던 역내의 분위기를 싹 정리해 버리신다.



3. 우반(U-bahn)의 로맨틱 가이

    프푸에서 처음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던 주의 일이다. 이른 아침에 우반(독일의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가고 있었다. 여느 지하철처럼 철컹철컹 거리던 우반의 백색소음에 잠이 솔솔 오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감미로운 기타 소리가 들렸다. 난 처음에 그 음악이 우반에서 나오는 줄 알았다. 우리나라 환승역에서 나오는 음악처럼 말이다. 하지만 곧 내 뒤쪽에서 누군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난 또 한 번 내가 운명적인 버스커를 만났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의 노래 가사가 어떤 나라 말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럼에도 가끔 그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지하철 두 정거장 지나는 동안 그가 들려준 노래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저 허심탄회하면서 희망적인 멜로디가 너무 맛깔났다. 덥수룩한 수염과 뒤로 묶은 머리의 비주얼까지 낭만적인 떠돌이 음악가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가 날린 윙크! 캬. 뭔가 그 뻔뻔함과 자신감이 날 더 즐겁게 했다. 난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신이 나고 즐겁다. 하루의 시작에 저 사람을 만나 하루가 즐거울 수 있었다.



4. 포 첼로스(Four Cellos)

    크로아티아에 투첼로스(2 Cellos)가 있다면 독일엔 '포 첼로스'가 있다! 사실 그냥 내가 붙인 이름이다. 그리고 이 분들이 독일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3월에 잠시 짜일과 합트바헤를 오가며 활동하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유럽엔 이렇게 떠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는 버스커들이 많다. 만남은 잠시였지만 여운은 길었다. 이들의 연주를 처음 봤을 때 감개가 무량했다. 아니 누가 길거리에서 현악 4중주(4중주가 이 구성은 아니지만 대충)의 공연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는가!  내가 지금까지 봤던 버스킹 중에서도 최대 규모였다. 심지어 몇 번은 다섯 명이서 첼로 연주를 했다. 이렇게 사운드가 꽉 차는 버스킹을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이들을 보고 난 다음부터 유럽 버스킹은 확실히 한국과 다르구나 느꼈다. 굉장히 스펙트럼이 넓다.



5. 춤추는 바이올리니스트 압둘

    4월 초였음에도 독일은 상당히 쌀쌀했다. 이 날은 또 유독 칼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난 그의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심지어 6개월 통틀어 유일하게 직접 이름도 물어봤다! 그의 이름은 압둘. 세상에서 가장 흥겨운 바이올리니스트다.  날 잡아 끈 건 음악보다도 그의 움직임이었다. 그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음악을 타고 놀듯 춤을 추었다. 때론 나폴나폴 때론 경쾌하게. 곡의 분위기에 따라서도 춤도 바뀌었다. 투박하고 야성적인 비쥬얼의 커다란 남자가 춤을 추며 바이올린을 켜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오른 쪽 손목의 독특한 가죽 아대까지 참 매력적이었다. 위의 바이올린 아저씨에 비해 바이올린 자체를 현란하게 연주하진 않았지만 그의 춤과 그가 뿜어내는 아우라가 짜일 거리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6. 기타를 든 마에스트로

    영국 악센트는 버스킹의 수준을 보장해준다. 런던을 다녀와서 느낀 점이다. 록과 밴드의 나라 영국은 평균적인 버스킹의 퀄리티가 차원이 달랐다. 이 날은 한 남자가 프랑크푸르트의 한복판에서 런던을 재현해 주었다. 의외로 프푸에선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버스커가 흔치 않다. 우리나라에서 기타+보컬이 가장 전형적인 버스커라 여겨지는 것과 다르다. 그래서 이 분의 공연을 만났을 때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레퍼토리도 U2, Coldplay, Snow Patrol, The Calling 등 유명 밴드들의 반가운 곡들이었다.

    그의 특징이라면 루프스테이션이라 할 수 있다. 루프는 혼자 공연하는 사람들이 주로 쓰는 방식이다. 반복되는 일정 마디를 녹음한 뒤 자동 재생시켜서 두 사람 이상이 연주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1:50부터 그의 루프스테이션 활용 연주가 시작된다. 버스킹에서 이렇게 멋들어지게 루프를 쓰는 건 처음 봤어서 신기했다. 다만 자작곡 연주가 하나도 없었던 게 좀 아쉬웠다. 히트곡만 하시더라고. 참 잘 하긴 했지만서도.



7. 또 다른 세계

    과연 어느 나라의 음악일까. 나는 내가 프푸에서 가장 이방인인 줄 알았는데 나보다도 더 낯선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했다가 정체불명의 음악을 남긴 뒤 사라졌다. 생김새로 보아하니 아메리카 대륙 분들이신 것 같았다. 포카혼타스 같은 이미지였다. 동시에 음악 분위기나 언어는 아시아의 것과 비슷했다. 여하튼 굉장히 멀리서 온 음악과 문화라는 느낌을 받았다. 여름에 녹음이 우거진 짜일거리에서 저런 연주를 하니 마치 어디 밀림의 부족이 연주를 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다시 보니 이분들 장비가 상당하다. 저 뒤에 대형 엠프 세 대에다가 저거 뭐라 그러지 사운드 조율하는 기계까지 있다. 개다가 전통스런 악기들 종류도 엄청 많다. 거의 소극장급 버스킹이다.



나의 유럽 최애 스팟, 짜일 거리


    짜일 거리의 메인은 '합트바헤' 역에서 '콘슈타블러바헤(Konstablerwache)'역까지 1킬로 정도 되는 구간이다. 위의 버스커들이 연주하던 곳도 두 역 사이다. 난 이 짜일 거리를 참 좋아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콘슈티에서 환승을 해야 했다. 콘슈티에서 집으로 가는 우반을 타면 합트바헤를 지나 한 방에 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난 종종 콘슈티에서 환승하지 않고 합트바헤까지 걸어가곤 했다. 그저 짜일 거리를 걷고 싶어서 그랬다.

    내겐 짜일이 프랑크푸르트의 심장 같았다. 일요일을 빼면 항상 사람으로 붐비던 그곳에서 온갖 독일 사람을 다 볼 수 있었다. 항상 보다 보니 친숙해진 노숙자들부터 멋지고 길쭉길쭉한 선남선녀들까지. 난 이 곳에서 그저 6개월간 구경꾼에 불과했지만 짜일 거리에서 느끼는 독일이 좋았다. 버스커들의 공연을 감상했던 것도 그 일환이었다. 참 그리운 곳이 많다. 매일 저녁거리 사러 들렀던 레베, 내가 운동했던 피트스타, 스타벅스, 내 속을 썪였던 보다폰 매장까지. 기숙사 다음으로 내 생활이 많이 녹아 있는 곳이 짜일 거리다. 내게 있어서 유럽에 이만한 장소는 더 없다.



*Zeil의 발음은 사실 짜일과 차일의 중간이다. 근데 짜일이 더 달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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