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괜찮아
나는 성격이 많이 급한 편이다.
뭐든지 빨리하려는 습관이 있다
일도 빨리, 요리도 빨리, 밥도 빨리 먹고. 말도 빨리한다
매사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기본적으로 빨리하는 습관이 있어서 누가 뭐래도 한국사람 인증이다
반면 내 주관적인 기준이긴 하지만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내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은 특히 말 속도가 많이 느린 편에 속하는 거 같다
나는 남편과 대화할 때 "빨리 애기 좀 해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자주 한다
이 덕에 내 핸드폰엔 남편의 번호가 내 답답한 맘을 표현하듯 거북이신랑이라는 애칭으로 저장을 해두었다
집안 살림을 잘 도외주는 남편은 내가 집에서 남편에게 무슨 일을 부탁하는 경우에도 내가 한 번에 3개씩 말한다고 한다
자기야 청소기 돌려줘, 그리고 건조기에 빨래 꺼내주고, 애들도 좀 깨워주고.
우리 신랑은 나 같은 사람이 군대 갔으면 제일 힘든 사람일 것이라며 군대 안 간 게 다행이라고 농담처럼 나를 놀리곤 한다
하지만 나는 내 빠릿빠릿한 성격이 너무 맘에 든다
자화자찬 좀 하자면 내 급한 성격 탓으로 나는 회사업무을 함에 있어 무슨 일이든 기한보다 2-3일씩 빨리 처리하는 편이다
또 같은 서류도 몇 번씩 검토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겨 일의 정확도까지도 있다고 나름 자부심을 가지면서 일해왔다
그런데 이 급한 성격도 나이를 먹는 것인지, 작년 연말쯤부터 나의 생활속도가 점점 느려짐을 몸소 느끼고 있다
빨래바구니에 쌓인 세탁물도 예전 같은 면 세탁기 2-3번은 돌렸을 텐데 지금은 좀 더 차면 돌리지 뭐 하고 넘기고 할 일이 있을 때 당장 처리 못하면 안 날이 났던 나였는데 지금은 "천천히 하지 머" 아직 시간 있잖아
이런 생각이 들다니 나 조차도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나를 보며 남편은 갱년기 아니냐고 한다
나는 평소 알고 있던 갱년기 증상 외에도 검색으로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증상까지 눈으로 확인하니
불안한 마음이 살짝 들었다
하지만 불안 것도 잠시 갱년기인 듯 뭐 어떠랴....
지금까지 40년 넘게 조급한 성격으로 살아왔는데 지금의 느려짐이 싫지많은 않았다
그동안 내 속도가 맞다며 남보다 느리면 손해 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조급해하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평생 나보다 느린 남편을 보며 답답해하던 나였는데 갑자기 남편에게도 미안한 맘이 들었다
이제부턴 나도 그동안 느리다고 구박만 했던 남편의 속도를 따라 마음의 여유를 누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