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과 부지런함에 대하여
모순적인 삶에서의 탈출
나는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다. 책임 지는 것이 싫어서 많은 것들을 회피하고 산다.
아이를 낳는 것을 피하고 있다. 난 내 자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어릴 때 이중언어 환경에 노출시킬 것인지, 성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떠한 가치관을 가진 아이로 키울 것인지 등등. 그런데 내가 이 아이를 책임 질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아직까지 자녀가 없다. 내 성향과 내 기질을 고려 하다보니 자녀를 낳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자꾸 샘솟는다. 그래서 나는 자녀를 낳을 생각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장사하는 옆지기를 만나면서 나 역시 비슷하게 자영업 창업을 생각해보았다. 네일아트도 하고 싶고, 꽃집도 하고싶었다. 향수 브랜드도 만들어보고 싶었고, 기도 하는 마음으로 묵주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다. 이 모든 일들 중 단 한가지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이 역시도 내가 이 일들을 충분히 책임질 수 없다 여겼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을 알고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는 모습을 보며 누군가는 나를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 여긴다. 하지만 속 사정은 정 반대이다. 책임지기 싫어서 내 역량에 한계선을 그어가며 살고 있다. 내 한계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 하고 실패 역시 두려워한다.
또 누군가는 나를 참 부지런한 사람이라 칭한다. 하지만 나는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대학시절, 중문과로 입학해 연극과를 복수전공 했다. 교양수업은 졸업 조건을 맞출 정도로 최소로 듣고, 모든 시간표를 전공수업으로 가득 채웠다. 시간표에 들어가지 않은 수업도 맡아서 진행한 학기도 있었다. 또한 야간에는 장학생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들어야 하는 수업이 있었다. 이 또한 빠지지 않고 들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서예 동아리 활동까지 했다. 동아리에서는 매년 두번씩 전시회를 진행했고 이를 위해 짬이 날때마다 동아리실에 들려 서예를 했다. 주말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금도 나는 새벽에 떡집에 출근하고, 오전에 학교에 나가 수업을 듣고 사무실 업무를 본다. 저녁에는 집에 가서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다시 떡집에 나가곤 한다. 틈틈이 뜨개질도 해서 이것 저것 만들어내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감탄하곤 했다. 몸이 두개도 아닌데 어떻게 저 모든 활동을 하냐며. 하지만 실상은 반대이다. 해야 할 일이 없어지는 순간부터 아무것도 안하고 디비져 누워 있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활동을 늘렸을 뿐이다.
나는 내 모순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었다. 책임감 없고, 게으른 사람이다. 남들 눈에 비춰지는 모습이 내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 여기었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책임감 있고, 부지런한 사람이라 칭찬 할때마다 마음이 무거워 지곤 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이 칭찬을 마음 편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를 부정하는 것에서 벗어날 것이다. 나의 좋은 점을 더 잘 살펴줄 것이다. 나는 책임감 있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적어도 평균 이상이다.
나는 매 주 세 편 이상의 글을 써내고 있다. 돈이 되지 않는 일임에도 이를 놓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책임감 있고 부지런한 사람이라 스스로 여겨도 된다. 충분히 그럴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