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지구] 기억으로만 남아 버린 추억

나 어린 시절엔 집 근처 하천에서 가재를 잡았단다.

by 섬세영

초등학교 시절,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과학 수업이었다. 생물, 지구과학, 화학, 물리가 뒤섞인 교과서 내용 중 특히 생물 시간을 좋아했다. 우리 몸이 가진 신비로움에 두 눈이 반짝이고, 살아 숨쉬는 그 모든 것들이 경이롭게 보였다.


과학시간, 1급수에서만 산다는 플라나리아와 가재에 대해 배우며 당시에도 환경 문제를 걱정하던 소녀였다. 1급수가 점점 사라져 플라나리아와 가재를 보기 힘들어 졌다는 교과서 내용에 마음 깊이 슬픔이 차올랐다.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그리던 교과서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집 근처 하천에서 가재를 잡을 수 있었다.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었지만 단지를 벗어나면 바로 드넓은 논밭과 산이 있던 곳이었다. 산과 들에는 가을이면 잠자리 날아다니고, 황금빛 벼가 출렁였다. 산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여름날의 뜨거운 햇살을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런 곳에서 자랐다. 도시와 자연이 함께하는 곳.


주말이면 나는 동생과 함께 주중에는 갈 수 없던 그 산으로 향했다. 지금이야 10분이면 걸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어렸던 당시에는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큰맘을 먹은 뒤 향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탐험 하는 마음으로 신나게 도착한 산에는 좁고 얕트막한 하천이 하나 있었다. 조심스럽게 그 하천에 내려가 살금 살금 돌을 들어올리면 가재를 쉬이 볼 수 있었다. 돌과 색이 비슷한 그 가재를 물리지 않게 들어올리면 꼬리를 힘차게 차올렸다. 손 끝에 전해지던 그 작은 가재의 에너지가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얼마전 방문한 어린 시절의 그 동네는 많이 변해 있었다. 산은 박박 밀렸고, 들에는 건물이 치고 올라와 있었다. 내 기억속 가재 잡던 그 하천도 흔적만 남고 물이 다 말라버린 상태였다. 단순히 물이 마른 것 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맑은 자연의 모습을 많이 잃은 상태였다. 그곳은 이미 죽은 곳이 되어 버렸다. 생명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조차 없고, 인간이 만들어낸 쓰레기만이 형형 색색을 잃지 않은 채 나뒹굴고 있었다.


나의 가재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추억으로만 남게 되어 버렸다. 어린 시절, 과학 교과서에서 그리던 환경오염이 내 피부로 와 닿았다. 이제 우리는 1급수의 삶 보다 오염의 삶에 더 가까이 있다. 십년이면 강산도 벼한다지만, 이건 강산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우리의 아이들은 더이상 가재를 잡는 추억조차 누리지 못할 것이다. 가재나 플라나리아는 사진 속, 영상 속에만 존재하는 환상의 동물이 되어 버렸다.


나는 이렇게 변해버린 세상이 너무 슬프다. 그저 한 줄의 글로 읽던 환경 오염을 두 눈과 두 손으로 느끼는 이런 세상이 너무나도 슬프다. 내가 변화 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 하지만 주저 앉을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부터 해 나가야 한다. 하천에 물을 채워 넣을 순 없지만 그곳을 가득 채운 쓰레기는 치울 수 있다. 하천에 삶이 가득해지게 만들 수는 없지만 이미 죽어버린 물건을 없앨 수는 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해 나갈 것이다. 나의 아이들이 나와 함께 가재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세상이 돌아오길 바라며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내일을 위해 살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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