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그대와의 첫만남

우리는 운명이야

by 섬세영

23살 여름. 그 여름의 한복판에서 나는 옆지기를 처음 만났다.


사춘기가 한참이었을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그 흔한 풋사랑 한 번 하지 않았다. 이성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그저 공부하고 책읽는게 전부였다. 심지어 나는 그 당시 유행하는 아이돌이 몇명인지조차도 제대로 몰랐다. 유일하게 좋아했던 아이돌은 내가 좋아한다고 느끼기 시작한 후, 몇달이 채 지나지 않아 해체 하고 말았으니 20살 이전의 사랑은 전무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대학가면 살빠지고, 대학가면 남친 생긴다는 말을 철썩같이 믿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 덕분에 대학에 가서도 여전히 뚱뚱한 채였고, 여전히 남자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학점과 장학금을 목표 삼아 매일을 살아 냈을 뿐이었다.


22살의 나는 참 바빴다. 다음 학기에 교환학생을 전액 장학금 받고 가려면 성적도 우수해야 했고, 면접 준비도 충실히 해야 됬었다. 덕분에 다른 학기보다 조금 더 바쁜 한 학기를 보내고 나는 무사히 장학금과 교환학생, 이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교환학생이 결정 된 후, 나는 한시름 놓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20대 초반 여자 애들이 모임면 으래 그렇듯이 한참 수다를 떨고, 맛은 그저 그래도 예쁘게 나오는 식당을 찾아가 식사를 하고, 쇼핑몰을 좀 배회했다. 그러던 중 우리의 시선을 사로 잡는 것이 있었다. 바로 '타로카드점'


함께 만난 친구들 까지 세명 모두가 천주교 였는데 20대의 호기심을 이길 순 없었다. 우리는 홀린듯이 타로 점을 봐준다는 곳으로 향했다. 그 곳에서 우리는 각자의 연애 점을 보았다. 다른 친구들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내 타로의 결과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남자에 관심이 없네! 그런데 여름에 인연이 찾아 올꺼야.


여름에 한국에 있지도 않을 텐데 인연이 찾아 온다니 이 무슨 얼토당토 않은 소리란 말인가. 역시 타로니 점이니 다 믿을게 못된다며 그때는 그냥 돈버렸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하지만 교환학생을 나간 그 첫 학기에 나는 갑자기 크게 아팠고, 예상보다 빠르게 한국에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여름이었다.


돌아온 한국에서 병원을 다니며 몸을 좀 회복하니 이제 오히려 몸이 근지러웠다. 더욱이 에어컨 빵빵하게 틀 수 있던 기숙사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보니 에어컨을 틀지 않은 집이 더웠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알바를 구했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떡집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옆지기가 있었다. 사장이라고 나온 사람은 떡집이라는 이미지에 걸맞지 않은 껄렁한 모습의 젊은이였다. 리모델링 중이던 가게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게 앞 인도에서 짧은 면접이라면 면접을 보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 갔다. 그리고 며칠 뒤, 가게에 나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손이 빠르고 눈치가 좋은 나는 알바를 하면 늘 칭찬을 듣곤 했다. 떡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간 잘 지키고 성실한 모습에 옆지기는 나를 마음에 품기 시작했다. 나 역시 쉼없이 일하고 책임감 넘치는 옆기기가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짧은 썸을 타고 나의 고백으로 연애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