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백한 날,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날이 언젠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다만 연애 시작한지 3개월 쯤 되었을 무렵 일어났던 첫싸움의 날 만큼은 선명하리만큼 기억난다.
그 날은 모든 연인들이 가장 많이 싸우고 이별 한다는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나 역시 옆지기와 함께하는 첫 크리스마스라 기대를 많이 했다. 오후 3시쯤 만나자며 약속을 한 옆지기와 어디를 갈까 무엇을 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점심 시간이 되고, 떨리는 마음에 점심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다. 혹시라도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갈까 싶은 마음 역시 들어 밥이 입으로 들어가지지 않았다. 오전 11시까지만 해도 잘 되던 연락이 끊어졌지만, 일 보고 있는 중이리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내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좋아할까? 옆지기는 무산 선물을 준비 했으려나 기대와 행복으로 가득찼다. 이제 두시간만 더 기다리면 된다. 두시간 후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로맨틱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생각에 시계바늘만 수 없이 바라봤다.
드디어 유독 느리게 가던 시계가 2시 50분을 가리켰다. 옆지기와 연락은 이 시간까지도 되지 않았다. 나는 약간은 불안했지만 옆지기가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 한게 틀림 없을꺼라며 자위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디냐고, 벌써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냐고 물으려 했다.
전화벨이 울리고, 수신음이 여러번 반복됬지만 옆지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벨소리가 끊어지고,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역시 받지 않는다. 두번이 세번되고, 세번이 네번이 될 동안에도 옆지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내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눈물이 바닥으로 후두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와의 약속을 잊은걸까. 일이 바쁜 걸까? 그래도 연락 한번 쯤은 해줄 수 있을텐데. 다른 날도 아니고 오늘은 무려 크리스마스 이브 아니던가! 어떻게 사귀고 난 첫 크리스마스에 잡힌 약속을 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오만가지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 잠겨 한없이 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눈물에 가라 앉아 있을 즈음. 연락이 왔다.
잠들었어.
이제 나는 슬픔의 눈물이 아닌 분노의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사람이 새벽 3시도 아니고 오후 3시에 잠들어서 연인과의 약속을 잊는단 말인가!
나는 분노와 한탄, 비난의 말을 쏟아냈다. 당시 내 모습은 입에서 불을 뿜는 용가리 같았다. 비수가 되는 말을 한참 듣던 옆지기는 미안하다는 말 뿐이었다. 이미 저녁시간이 되었지만 아직 크리스마스 이브가 끝난게 아니라며 나와서 함께 저녁을 먹자고 나를 어르고 달랬다.
하지만 내 분노는 쉬이 사그라 들지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이를 주체 할 수 없었다. 결국 듣다 듣다 옆지기도 이제 그만 하라며 소리치기 시작해고 싸움은 점점 개싸움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 열 내기를 몇 시간, 우리는 겨우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다. 물론 옆지기가 져준 덕분이었다. 나보다 11살 많은 옆지기의 연륜이었다고 할까(그러기엔 이미 몇시간을 나랑 똑같은 수준으로 싸웠지만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화해 했다. 옆지기는 눈을 뜨자마자 나와 약속에 늦은 것을 확인하고 우리 집 앞에 와 있었다. 나가지 않겠다는 나를 어르고 달래서 집 밖으로 빼낸 옆지기는 오늘을 망쳐서 다시 한번 미안하다며 준비한 것들을 못하게 됬으니 맛있는거라도 사주겠다며 차를 움직였다.
짧은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우리는 내내 손을 붙잡고 있었다. 운전은 양손으로 해야 함을 알지만 이 손이 마치 동앗줄인양 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싸움은 초밥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나는 옆지기를, 옆지기는 나를 더 잘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신경 써줘야 할 부분과 네가 신경쓰지 않고 살았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