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의 모자

함께여서 행복했던 모든 순간

by 섬세영


언젠가 부모님께서 이런 말을 듣고 오셨다. "아들은 마흔 넘어서 보겠네." 장손인 아빠에게 딸만 둘인 상황이 마뜩잖던 할머니가 듣고 오신 말인지 부모님이 듣고 오신 말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저 한 문장은 이상하게 내 뇌리에 깊히 박혔었다. 사실 요즘 세상에 아들 딸이 어디있고, 장손이 뭐라고 아들 타령이란 말인가 하는 반골적인 마음에 저 말을 듣고선 심술이 났던 것 같다. 굳이 남동생을 원하지도 않았거니와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인 아들보다 대우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40살이 되던 해, 우리집에는 아롱이가 생겼다.

10살짜리 꼬꼬마인 내 눈을 통해 봐도 작았던 아롱이는 갈색 푸들이었다. 막내작은아빠의 아는 집에서 데려 왔다는데, 7개월이 되도록 발톱 관리는 커녕 치석 관리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도 아롱이는 아롱이 그 자체로 사랑스러웠다. 새로운 공간에 도착해 무서웠을 법도 한데 아롱이는 조심스럽지만 자연스럽게 우리 집을 탐색하고 이내 편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온기를 나누어주었다. 그 작은 온기에 우리 가족은 이 아이을 평생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노라 다짐 할 수 밖에 없었다.

조용한 성격의 아롱이는 평생 큰 말썽 하나 없이 우리 곁에 있었다. 사고를 쳐도 제 성격처럼 조심스럽고 소란스럽지 않게 쳤다. 휴지통을 다 뒤집어 엎어 난장판을 만들어도 사랑해주었을테지만, 그 큰 휴지통에서 내가 쓰고 버린 휴지 한 조각만 꺼내어 앙증맞은 두 발로 붙잡고 쪽쪽 찢어 놓은 모습이 너무나 아롱이다워서 차마 혼내지도 못했다.

아롱이는 크게 식탐도 부리지 않았다. 손 큰걸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 엄마 밑에서 자라면서도 끝까지 정상체중을 유지하던 자식은 아롱이 하나였다. 겨울이 되면 온 동네 강아지들이 고구마를 많이 먹어 살이 오동통하게 올라 수의사 선생님께 한소리 듣는다고들 하지만 아롱이는 생전 그런 적도 없다. 햇살 잘 드는 베란다 곁에 한가득 고구마 말랭이를 말리고 있어도, 언제나처럼 차분히 걸어가 찬찬히 고르고 골라 딱 하나만 집어와 제 자리에서 야무지게 먹었다.

내가 중국 교환학생을 길게 다녀오지 않은 이유도 아롱이였다. 당시에 이미 10살이 넘었던 내 동생과 하루라도 더 곁에 있고 싶은 마음에 중국어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학기의 교환학생만 다녀왔을 뿐이다. 중국에서도 온통 아롱이 생각뿐이었다. 중국에 나가있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동안 그리웠던 단 두 가지를 고르자면 바로 쑥개떡과 아롱이었다.

나와 함께 자란 내 동생은 나보다 훨씬 빠르게 나이들어 갔다. 어느날부턴가 집에 돌아와도 힘차게 반겨주기 보단 조금 더 차분해진 모습으로 날 반기기 시작했고, 침대 위로 날아오르듯 뛰어들던 아롱이가 점점 침대에 제대로 못 올라오는 날이 늘어났다. 잠자는 시간이 길어졌고, 먹는 약이 많아졌다.


그렇게 아롱이는 작년 봄, 벚꽃이 활짝 피면 꽃구경 가자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아롱이의 마지막 겨울엔 엄마가 떠준 모자와 함께였다. 요즘 강아지들은 다들 멋쟁이라 옷도 악세서리도 많던데, 우리 아롱이는 그냥 그런 티셔츠 몇벌, 코트 두벌로 평생을 보내면서도 군소리 한번 없었다. 그런 아롱이에게 처음 생긴 모자가 마지막 모자가 되었다. 엄마는 지금도 그 모자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나도 그 모자를 잊기까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아롱아, 날이 많이 추워졌어. 모자 꼭 챙겨 쓰고, 옷 단단히 입고 밥 잘 먹으면서 놀고 있어. 우리 식구 다시 만나는 날까지 아롱이 평생 기억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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