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테인을 먹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by 섬세영


디지털 네이티브로 태어나자 마자 영상 자료와 함께 성장하는 요즘 세대에선 안경을 쓴 어린이를 많이 볼 수 있다. 초등학생을 물론이고 미취학 아동도 심심치 않게 안경을 착용한 모습을 보인다. 안경점에도 아이를 위한 작은 사이즈의 안경도 다양한 디자인으로 구비되어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20여 년 전 보다 아동의 안경 착용이 늘어난 듯 하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 할 때만 해도 안경을 쓴 학생은 아주 소수에 불과했다. 더욱이 중고등학생도 아닌 초등학생 중에 안경을 쓴 아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선천적 요인으로 인한 교정 목적으로 쓰는 아이들을 제외하고, 시력이 나빠져서 안경을 쓴 아이는 거의 없었다. 한 학년에 서넛 정도 됬으려나. 그리고 그 서넛 중 한 명이 바로 나였다.


나는 8살, 만 7세부터 안경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한글을 다 뗐던 나는 책 읽기를 좋아했고, 그런 나를 위해 집에는 늘 책이 넘쳐 났다. 이솝우화, 전래동화, 역사이야기를 막론하고 당시 핫하다는 아동 도서 전집은 종류별로 있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도서 전집은 실감나는 효과음이 함께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와 세트인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그 녹음된 소리를 마냥 기다리며 듣는 것이 지루해 내 눈으로 책을 읽어 내려가는 것을 선호했다. 책상에 정자세로 앉아서 보는 것이 영 불편해 책장 앞 바닥에 앉아서 보거나, 엎드려서 하루 해가 저물도록 책을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부모님은 내 시력이 걱정되어 책상용 스탠드도 사주고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지 말라며 혼내시기도 했지만 고작 유치원 이제 막 벗어난 초등학생이 이 깊은 마음을 이해 할 리가 없었다. 덕분에 나는 교실 맨 뒷자리에서는 칠판의 판서가 잘 보이지 않는 근시를 획득했고, 우리 반에서 처음 안경을 쓴 아이가 되었다. 처음 썼던 안경이 무었이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몇 개 안되는 선택지 중에서 부모님이 가장 원하는 디자인으로 골랐던건 기억이 난다. 처음 안경을 쓰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이 내 안경을 부러워 했던 기억도 난다. 안경 쓰는 것이 뭐 대수라고 8살 꼬꼬마들은 이걸 참 부러워 했다. 그 이후 시력도 좋으면서 안경을 쓰고 온 학우가 몇 있지만, 안경 착용이 오히려 불편해 금새 그만두곤 했다. 직접 안경을 쓰면서 생각처럼 멋진 일이 아님을 체감하기 전까지는 나도 안경 쓴 만화 캐릭터들을 멋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안경은 생각보다 불편한 점이 참 많았다. 안경알은 생전 만지지도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안경알은 생각보다 더 빠르고 많이 더러워졌고, 김은 어찌나 자주 서리는지 뜨거운 국만 먹어도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였다. 나는 엄마와 매주 주말이면 목욕탕에 가곤 했는데, 이 때가 나쁜 시력의 최대 고난지이다. 목욕탕의 온도와 습도가 안경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공중목욕탕에 갈 때면 캐비넷에 안경을 벗어두고 들어가곤 했다. 그러면 근시와 난시를 동시에 가진 내 눈엔 온통 살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우리 엄마가 누구인지 도통 알아볼 수가 없어지는 것이다. 머리스타일도 다 비슷하고 손에 든 목욕 가방도 죄다 핑크 일색이니 뿌연 시야로는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 없어진다. 우리 엄마를 찾기 위해선 벌거벗은 몸으로 벌거벗은 여인네들 앞에 가서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는 방법 뿐이었다. 소심하고 부끄럼 많던 8살의 나에겐 참 힘든 일이었다. 성장기에는 시력도 함께 나빠지니, 내 시력은 성장기가 멈추던 중학교 시절까지 꾸준히 나빠졌고 안경알은 이에 비례해 점점 더 두꺼워졌다. 몇 번이나 압축된 렌즈를 사용해도 렌즈가 두꺼워 안경테 밖으로 비죽 튀어나오고 안경값도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더욱이 요즘처럼 마스크까지 써야 하는 시기에는 마스크와 안경의 착용 범위가 겹쳐 발생하는 문제점들도 있다. 귀에 가해지는 통증도 그렇고, 마스크를 벗다 안경까지 흘러내리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내가 어린 시절 멋있다고 생각했던 그 안경 쓴 만화 캐릭터들도 나처럼 이 모든 불편을 감내하고 있었으리라.




나는 지금도 시력이 매우 나쁘다. 성장기가 끝나면서 내 시력은 더 이상 큰 폭으로 나빠지진 않았다. 하지만 그 무렵 등장한 스마트폰으로 인해 눈의 피로도는 높아졌고, 콘텍트렌즈의 착용으로 건조함을 느끼는 경우는 있었지만 시력은 늘 그 수치를 유지했다. 학창시절처럼 1년에 한 번씩 시력교정을 위해 안경알을 바꿀 필요도 없어서 몇 년을 같은 안경을 쓰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하루 종일 신경에 거슬렸던 손톱 옆 거스러미를 제거하기 위해 손톱깍이를 손에 들고 손톱을 바라본 순간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처음에는 방의 불이 어두워서 그런것이라 생각했다. 형광등 쪽으로 돌아 앉아도 영 안보인다. 스탠드를 켜서 그 아래 가도 눈만 부시지 작은 거스러미가 선명히 보이진 않았다. 나는 안경을 오래 쓴 사람이지만 관리는 잘 하지 못하는 편이라 늘 안경알에는 기스가 잔뜩이고, 아주 어릴 때부터 이런 안경을 써와서 그런지 이런 기스 가득한 안경 너머로 보는 시야에 익숙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안경너머 보이는 손톱 옆 거스러미가 지나치게 뿌옇게 보여 초점이 영 맞지 않는 것이다. 안경이 너무 더러워서 그런가 싶어 안경을 닦아봤지만 역시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 순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안경을 이마 위로 쓱 밀어 올렸고 이내 내가 노안이 왔다는 사실을 깨닫았다. 나의 행동은 어린시절 봤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안경을 써야 세상이 잘 보이던 어린 내 눈에 쿠폰의 작은 글씨를 확인 하기 위해 안경을 밀어 올리던 이모의 모습은 참 생경한 것이었다. 작은 것을 보기 위해 안경을 벗는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던 어린 아이는 이제 기억 속에만 존재하게 되었다.


노안이 생겼다는 것을 자각한 이후 일상 곳곳에서 노안을 실감하고 있다. 특히 뜨개를 마무리 할 때 절실히 느끼고 있다. 뜨개질은 실을 연결한 부위에서 생기는 꼬리실을 편물 사이에 숨겨넣어 마무리 하는 작업이 필수이다. 이 과정에서 편물의 모양을 해치지 않고 착용할때 불편하지 않도록 코와 코 사이에 꼬리실을 바느질 해 넣어야 하는데, 이 코의 평균 크기가 보통 0.5cm이내이다. 다시 말하면 바늘을 0.5cm만 잘못 움직여도 제대로 된 곳이 아닌 다른 코에 실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돋보기 없이 이 작업을 할 수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체 노화가 뜨개의 즐거움을 앗아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밝은 곳에서 좀 더 집중하면 될 일이고, 노안이 좀 더 진행되면 돋보기를 착용하고 작업하면 될 일이다. 아마 앞으로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이 이럴 것이다. 일상의 불편함이 조금씩 늘어가겠지만 언제나처럼 천천히 적응해 나아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도구의 도움을 받기도 할테고, 의약품의 도움을 받기도 할 것이다. 언젠가 엄마가 너도 이제 이런거 먹을 때라며 챙겨준 루테인이 생각났다. 찬장 저 윗 편에 올려둔 루테인을 꺼냈다. 얇팍한 먼지가 앉은 모습이 마치 노안이 온 내 모습 같아 살풋 먼지를 닦아 내었다. 마치 내 노안도 이렇게 닦아지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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