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와 뜨개질의 열 가지 공통점
디지털 세상 속에서 아날로그인이 살아가는 법
대학 졸업 후 또래들이 보면 부러워 할만한 삶을 살았었다. 출근 시간이 좀 이르긴 했지만 5시간 가량 일 할 뿐이었고 오후시간은 완벽한 자유시간이었다. 남들 일하는 시간에 놀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메리트가 있다. 평일 오후의 한적함을 느끼며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낮잠을 늘어지게 자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점점 우울해져갔다. 삶이 무료하고 주변 친구들보다 뒤쳐진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결국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누군가는 왜 돈도 안되고 미래도 불투명한 일을 선택하냐고 했지만 그들의 말이 결코 내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무시하기로 했다.
입학 면접을 보러 다닐 때만 해도 내 석사 생활이 사이버 세계에서 이루어 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입학을 앞둔 1월 말 코로나 바이러스가 뉴스에 등장하더니 2월 말 개강 직전에 전면 비대면 강의라는 공지가 내려왔고, 대면강의로 전환하라는 공지는 결국 석사 4학기가 마무리 될 때 까지 듣지 못했고, 연구 과제에 치여 정신 없는 와중에 코로나로 인해 생긴 예상치 못한 퀀텀점프를 온몸으로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수업을 위해서는 새로운 사이트에 가입해야 했고, 노트북을 산 뒤로 단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카메라 기능을 사용해야 했다. 화면 녹화 기능을 써보겠다고 끙끙거렸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수업 자체가 이미 한 걸음 한 걸음 도전 과제였고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도구들이 손에 익기 시작하고, 수업과 연구에 적응 될 무렵 즈음에 '공부하는 것이 뜨개질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기간이었다. 하얀 벽만 쳐다봐도 즐겁다는 시험기간은 대학원 생활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뜨개질과 공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더니 이내 시험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1. 시작하기 전 계획 세울 때가 가장 즐겁다.
2. 막상 시작하면 이거 언제 끝내나 싶은 마음이 든다.
3. 반복되는 과정이 지루하고, 진도가 느리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4. 기초가 부실하면 과정이 힘들다.
5. 새로운 방법을 택하면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몸은 계속해서 익숙한 길을 걸어가려 한다.
6. 중간 단계에서는 완성된 모습이 그려지지 않을 때가 있다.
7. 한번 손을 놓으면 다시 시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8. 하면 할 수록 장비 욕심이 생긴다.
9. 돈 버는 재주는 없다.
10. 하나를 완성하면 성취감이 장난 아니다. 그래서 그만 둘 수 없다.
열 가지의 공통점을 발견해내고 나니 결국 내가 선호하는 사고의 틀 안에서 삶을 영위 하는 구나 싶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일을 힘겨워 하는 것은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면서부터 느꼈다. 모든 활동을 디지털 속에서 해야 하니 아날로그형 인간은 시작도 전부터 위축되기 일수였다. 거울도 잘 안보고 사는데 카메라 렌즈를 타고 넘어가 화면으로 송출되는 내 얼굴을 매 수업마다 마주해야 하는 일부터 여간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디지털이 주는 편리함을 누리려는 생각 보다는 내가 지난 20여년간 익혀온 아날로그적 방식이 주는 안정감만 찾으려 하였다. 뜨개질을 하면서도 손목에 부담이 덜 가는 새로운 파지법을 익히기보단 파스를 붙여가면서 기존의 파지법을 고수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익숙한 것에 메달려 편리함을 외면할 필요도 없고, 나는 못한다고 위축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안다.
인간이 태어나 두 발로 걷기까지에도 수 많은 과정과 넘어짐을 겪어야 한다. 세상 모든 일이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앉아 있는 것이 편하고 기어다니는 것이 익숙하다 해서 영원히 그렇게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 걷는 것을 관찰하고 흉내낸다. 다리의 근육을 단련하고 섬세하게 운용하는 법을 배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되는 일이고 힘들면 잠시 쉬면 되는 일이다. 포기 하지 않으면 결국 걸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내가 뜨개질과 대학원 생활에서 얻은 것은 비단 뜨개결과물이나 논문 뿐 아니었던 것이다. 삶에 대해서 통찰 해 낼 지력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