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을 위한 가장 기초장비는 뜨개 기법에 맞는 바늘과 원하는 직물의 느낌을 내줄 실 그리고 마무리에 필요한 가위 정도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뜨개질도 하다보면 소소하게 필요한 물건들이 생긴다.단수를 표시해주는 단수링과 코늘림 부분을 표시해주는 마커, 뜨개질 하는 도중 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도록 넣어두는 실케이스도 있다. 중요한 점은 이 물건들은 얼마든지 우리 주위의 일상용품으로 대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수링과 마커는 클립이나 고무줄 같은 고리형태로 된 적당한 크기의 물건을 사용 할 수 있고, 실케이스 역시 적당한 크기의 상자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무릇 뜨개의 재미란 소소하고 귀여운 용품들을 사는 맛 아니겠는가! 같은 용도의 물건이라 하더라고 기왕이면 다홍치마라. 뜨개하는 내내 볼 물건들이 귀여우면 뜨개의 재미도 늘고, 이 귀여운 물건을 더 보고 싶어서라도 한단이라도 더 떠내려가지 않겠는가. 이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이 때부턴 뜨개에 집중 할 수 없다. 장비를 구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뜨개를 시작한 후, 내 취향을 담은 물건을 구하기 위해 제일 먼저 서칭했던 것은 실케이스였다. 정확히 말하면 실바구니이다. 나에게 뜨개질이라는 이미지는 한겨울 눈이 소리도 없이 세상을 덮는 어느 밤, 세상은 고요하고 오로지 통나무집 안의 벽난로만이 조용한 소란스러움을 만들어내고 있고 그 곳에서 반쯤 눈 감은 할머니가 안락한 자세로 빨간 니트를 뜨는 장면이다. 이 상상에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바로 빨간 실뭉치가 담긴 실 바구니와 이 실뭉치를 노리는 고양이, 그리고 벽난로 근처 바닥에 엎드려 쉬는 대형견이다. 고양이와 대형견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일은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하지만 실케이스(정확히는 실바구니)를 구하는 것 정도는 당장이라도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인터넷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완제품 실케이스를 팔기도 하고 다ㅇ소에서 구할 수 있는 바구니로 실케이스를 만드는 방법도 나와 있다. 오랜 시간 서칭한 후 내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찾았다. 그러나 이 물건은 당장 내 손에 들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을 빼앗아간 실바구니는 내가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동그란 바닥에 올록볼록한 격자 무늬, 귀엽게 달린 손잡이까지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드는 실바구니를 가지기 위해서 나는 또 다시 뜨개질을 시작했다. 이렇게 만든 내 뜨개실바구니는 몇 년째 내 뜨개생활의 곁을 지키고 있다. 몇 년을 곁에 두어도 질리지 않고 손길이 닿을 수록 푸근해져서 뜨개생활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용품 중 하나이다.
최근 가지고 있던 마커가 어디로 갔는지 다 사라졌다. 플라스틱으로 된 옷핀 형태였는데, 이것은 5년 쯤 전 새로운 뜨개 기법을 배우면서 한 세트 샀던 것이었다. 작고 얇은 플라스틱이다보니까 부러져서 버린 적도 있고, 어느결에 바닥에 떨어져 나도 모르게 잃어버리기도 했다. 같은 제품으로 구매 할까 생각하다가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에 마음이 뺏겨버렸다. 탑다운 니트를 뜨던 사람이 올린 귀여운 마커였다. 초등학교 시절 학원건물 1층에 위치한 잡화점에서 용돈을 탈탈 털어 샀던 귀걸이가 떠오르는 앙증맞은 마커들이 편물과 바늘 사이에 조롱조롱 메달려 있는 모습에 홀려 버린 것이다. 당장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 있었지만 나는 동대문으로 달려갔다.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선택지 중에 가장 내 마음에 드는 참을 집어 손바닥에 올려 무게감을 느끼고, 가장 잘어울리는 고리를 찾아 달아주었다. 그렇게 내 손에 귀엽고 추억 가득한 마커들이 들어왔다. 이 마커들은 앞으로 오랜 시간동안 내 곁에서 뜨개생활의 활력이 되어 줄 것이다.
나는 내 취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경제적 궁핍 뿐 아니라 마음의 여유도 없이 살아왔다. 거기에 내 기질과 환경의 요인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무엇이든지 잘 해내야 했고, 되도록 부모님이 원하는 제품을 사용해야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공주님이 있었다. 양갈래로 땋은 머리엔 분홍색 리본이 달려 있었고, 하얀 아동용 스타킹을 신은 발에는 반짝이는 보석이 달린 구두가 신겨져 있었다. 하교하던 그 친구의 등에는 당시 제일 유행하던 캐릭터가 그려진 꽃분홍색의 책가방이 메어져 있었다. 나는 부모님이 원해서 산 F사의 노란 책가방과 부모님이 마음에 들어했던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나도 분홍색 책가방을 메고, 빨간 구두를 신고 싶었다.
용돈 받던 고등학교 시절까지도 부모님이 사준걸 입고 썼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했던 탓에 부모님이 사주시는 물건에 감히 토를 달 수 없었다. 문제집도 서점에 가서 내가 원하는 것으로 구입하지 않고 교사용으로 들어오는 것을 받아서 풀었다. 교사용에는 문제집에 답이 적혀있다. 이 답을 매직으로 지워서 풀었다. 20살이 되어 아르바이트로 수중에 돈이 들어와도 내 취향의 물건을 구입하기 보다는 저렴한 것과 가성비 좋은 것을 찾아 다녔다. 대학시절에는 전공서적을 구매하는 것도 중고서점에서 찾아 헤맸고, 노트 한권을 사는 것이 아까워 사무실에서 나오는 이면지를 주워다 쓰곤 했다. 그 때까지도 나에겐 내 취향이 어떤지, 내가 무엇을 사랑스럽다 여기는지 알지 못했다. 주위 사람들이 취향을 찾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데 돈을 지불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토록 생기 넘치던 시절을 나 혼자 회색의 세상에 살았던 것이다.
이런 내가 23살에 처음으로 내 마음에 드는 제품을 위해 돈을 지불했다. 그게 바로 '담요 뜨개 DIY 키트'였다. 충동적이었다. 그때 내 통장에는 지난 달 아르바이트 급여가 입금되어 있었고, 기말고사를 앞둔 시점이었다. 당장 수중에 돈이 있고, 시험기간엔 벽만 바라봐도 즐거우니 '담요 뜨개 DIY 키트'를 사는 것은 필연이고 운명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뜨개질은 내게 알록달록한 색이 되어주었다. 내가 분홍색을 좋아한다는 것, 부드러운 곡선으로 채워진 물건을 좋아한다는 것, 부드러운 감촉을 좋아한다는 것. 뜨개질을 하면서 나의 취향을 생각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시기에 나의 안식처를 만난 것도 한 몫 했겠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풀어보도록 하고 다시 뜨개질 이야기로 돌아가겠다. 뜨개를 하며 손을 움직이는 동안 나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반추할 수 있었다. 이 시간이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나를 인정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기대를 못 맞춰도 나라는 존재로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의 가치를 를 알게되었다. 누군가에겐 그저 고루한 취미라 여겨지는 뜨개질이 나에겐 오아시스고 빛이 되어 준 것이다. 사실 지금도 많은 부분에 있어서 가성비를 따지는 것이 우선시 될 때가 있다. 그렇지만 내 손에 뜨개바늘이 쥐어져있고, 실바구니에 실이 있는 한 내 세상이 다시 회색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 뜨개는 단순히 목도리를 만들고 스웨터를 만드는 일이 아닌 행복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