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가 유행한다고?

내 뒷북은 늘 휘모리장단이다.

by 섬세영


우리는 많은 종류의 유행 속에서 살아간다. 한 때는 언제 어디서나 말 끝에 "~했다람쥐"를 붙이기도 했고, 총천연색의 스키니진이 거리를 무지개 빛으로 물들이기도 했다. 이색적인 향신료로 만든 마라탕이 유행하면서 여러 음식과 마라가 결합된 상품이 판매되기도 했다. 인테리어에도 유행이 있다. 옥색 변기나 짙은 색의 몰딩이 유행할 때도 있었고, 요즘은 마감이 안된 듯한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가 유행이다. 사람들은 유행의 흐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주류에 탑승하기도 하고, 유행의 물살을 거스르며 자신의 취향을 고수하기도 한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유행을 잘 따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유행이 다 지난 뒤에서야 이게 유행이라는데 나도 한번 해볼까라고 생각하는 뒷북의 장인이다. 뒷북의 장단은 홀로 치는 독주라는 사실로 인해 비탄의 음색을 띨 때도 있고, 혼자서도 흥에 겨워 더욱 빠르고 경쾌한 박자를 타기도 한다.

사춘기 시절 주위의 모든 친구들이 5인조 아이돌 그룹에 열광할 때, 혼자 윤종신의 음악에 빠져있다가 뒤늦게 해당 아이돌의 매력에 빠졌었다. 그 후 얼마 안되서 해체한다는 소식을 듣고 참 많이 슬펐었다. 이제서야 각 멤버들이 가진 찬란한 춤선에 홀렸는데 해체라니,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좌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다들 뿔테 안경에서 벗어나 얇은 금속제 안경테를 착용할 때에도 나는 꽤나 오랫동안 뿔테 안경을 고수했다. 세상 마지막 남은 뿔테 안경 착용자가 아마 나였을 것이다. 아, 방송인 유재석씨를 제외하고 말이다. 심지어 뿔테 안경보다 지금 착용하고 있는 알이 크고 테가 얇은 안경이 인상을 더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뿔테 안경의 중량감과 짙은 색이 가득이나 옹졸한 내 이목구비를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내가 이렇게 유행에 둔감한 것은 오히려 너무 민감해서 일 수 있다. 지금 상태에서 변화하는 것이 두렵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 오히려 빠르게 변하는 유행에 재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다. 혹은 지나치게 남의 눈치를 보고 내가 감히 이런 걸 해도 될까라고 생각하는 낮은 자존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이런 옷을 입어도 될까?', '내가 이런 안경을 써도 될까?' 라는 생각들로 유행을 놓치기 일수였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유행하는 여러 가지를 경험하며 진즉 찾았을 취향도 나는 스물 너머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변화를 힘들어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아주 외면하지도 않는다. 외면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경험의 상실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런거 해서 뭐하냐는 말버릇도 고쳐야 한다. 해보기 전까지는 그것이 나에게 어울리는지 혹은 내가 싫어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뜨개질을 시작하기 전이나 후에도 늘 뜨개와 관련된 유행도 존재했다. 아주아주 두꺼운 실로 뜨는 루피망고 모자가 유행하기도 했고, 트셔츠를 잘라 만든 패브릭얀이 유행하기도 했다. 시청율이 높은 드라마의 주인공이 착용한 목도리는 매년 겨울마다 유행을 만들어 내어서, 어떤 해는 빨갛고 커다란 목도리가 유행이었고 다음 해에는 아주 작은 무채색 계열의 목도리가 유행이 되었다. 최근에는 '뜨개구리'라는 뜨개질로 만든 개구리 인형이 뜨개인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사실 나는 이 유행조차 알지 못했다. 뜨개질을 하지 않지만 내가 뜨개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친구가 전해준 유행이다. 친구는 오직 나를 위해 이런 유행에 대한 정보를 얻어 내게 알려줬지만, 그런거 해서 뭐해라는 못된 말버릇이 친구를 향해 튀어 나왔다. 나는 양서류 좋아하지도 않고, 인형은 장식의 기능만 있는데 '뜨개구리'는 별로 장식성이 강한거 같지도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일은 지금도 후회된다. 내 모난 성격이 친구의 성의를 폄훼했고, 친구에게는 예상치 못한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유야무야 넘어갔지만 친구에게 제대로 이 일에 대해 사과의 말을 전하지 못한 것이 마음 한켠에 돌덩이처럼 남아 있다. 내가 좀 더 '뜨개구리'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 들였다면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뜨개의 즐거움을 알게 될 수도 있었을테고, '뜨개구리'를 알려준 친구도 기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옹졸한 마음으로 벌어진 일에 대한 사과는 '뜨개구리'와 함께 전하려 한다. '뜨개구리' 유행은 정점을 지나갔고, 사과도 진작 했었어야 했지만 이제서라도 뒤늦은 휘모리장단을 쳐보려 한다. 아주 요란스럽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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