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에 대한 단상

누구를 위해 앙증맞은 아기 신발을 떠야하는가

by 섬세영


태교의 본질은 무엇일까? 요즘 나와 옆지기의 가장 큰 대화 주제는 단연 2세에 관한 것이다.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지며 나와 옆지기 모두 어느덧 부모가 되기에 적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아직까진 서로가 그리고 스스로도 철부지임을 너무 잘 아는 두 사람이라 부모가 되는 일은 먼 훗날의 일이겠지만, 우리도 언젠간 아이를 가져야 하지 않겠냐는 단순한 생각으로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어느날은 태교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가 되었고 우리의 결론은 태교가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은 결국 행복함이지 결코 지능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부의 삶이 온전하고 임신 중인 엄마가 행복한 것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태교이다. 우리 엄마는 날 태중에 가지셨을때 만삭까지도 일을 했다. 그녀는 회계사 사무소에서 일을 했다. 8자리도 넘는 숫자를 계산해냈고, 컴퓨터로 전산을 봤다. 엄마는 그런 일을 잘 하고 또 좋아했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는 늘 경쾌했고, 오류가 생긴 부분을 찾아내는 일에 흥미가 있었다. 물론 난 숫자와 친밀하지 못하고 기계도 잘 다루지 못하고 돈관리는 더더욱 잼병이지만 어찌되었건 엄마가 만삭까지 일하면서 얻은 성취와 행복이 있었다면 그걸로 내 태교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내 동생을 임신했을때는 퇴직 후 집에서 비디오게임을 열렬히 하셨다. 당시 같이 살던 작은아빠는 무선조종비행기와 자동차, 종이접기, 각종 퍼즐 등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겼다. 그 중 하나가 비디오게임이었다. TV와 연결해 네모난 팩을 꽂아 쓰는 게임기는 신문물이었다. 5살난 어린이가 하기엔 어려웠지만 엄마에겐 그 게임이 퍽 재밌었는지 하루종일 그 게임기를 하고 있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나를 유치원에 보내놓고 게임기를 잡으면 어느결에 내가 엄마 배고파 라며 외쳤다고 한다. 세상 게임 중독자가 따로 없다. 하지만 게임을 하면서 엄마는 역시나 행복했고, 임신과 육아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게임으로 휴식을 취함과 동시에 얻은 에너지로 나를 더 잘 케어해 줄 수 있었을테고, 주체 할 수 없는 입덧과 여러 변화로 인해 알게 모르게 생긴 스트레스를 해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엄마의 두 번째 태교도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에게 뜨개질은 이상적인 태교의 일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뜨개질은 어느 상황에서나 나에게 휴식이 되어주는 취미이다. 바늘을 움직이며 불안을 잠재우고, 늘어나는 편물만큼 기쁨이 채워진다. 심지어 뜨개에 관련된 쇼핑을 하는 일도 나에게는 즐거운 일이다. 구입까지 이어지지 않더라도 새로운 제품이나 알록달록한 여러 실을 구경하는 것 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임신 전인 지금은 전혀 관심없던 뜨개질로 만든 아이 옷이나, 신발, 딸랑이 등의 레퍼런스를 찾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임신으로 인해 변화하는 내 모습에 적응하지 못해 울적함을 느끼게 되더라도 뜨개질이 위안이 되어주고 숨구멍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뜨개질이 좋더라도 임신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힘든 와중에도 울면서까지 뜨개질을 할 생각은 없다. 임신 후 변화하는 호르몬으로 감정이 요동치는 와중까지 뜨개질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다. 뜨개질을 하면서 편안해 지는 것이 태교이지, 태교를 위해서 억지로 뜨개질을 할 생각은 없다.


임신 전에 뜨개질을 해본 적도 없고, 처음 시작해 봐도 영 적성에 안맞아서 오히려 화가나고 열이 뻗치면서까지 오로지 태교만을 위해 뜨개질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검색창에 '태교'라는 글자를 치면 '태교 뜨개질', '태교 바느질'이라는 검색어가 자동으로 완성되어 등장한다. 그만큼 태교라고 하면 뜨개질을 해야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은 것이다. 언제 어디서 만들어진 이미지인지 모르겠지만 태교라고 하면 우아한 홈드레스를 입은 산모가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편안한 쇼파에 앉아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손은 뜨개 바늘을 움직이고 뱃속의 아이에게 "아가, 빨리 만나고 싶어, 사랑해" 같은 말을 하는 것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런 태교를 할 현실적 여력이 되는 사람이 21세기 대한민국에 몇이라 될것인가? 비율로 따져봐도 아마 전체 산모의 10%도 안되지 않을까 싶다. 또한 뜨개질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인가? 내 주변엔 엄마와 할머니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다. 친구들, 사회에서 만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 엄마와 할머니를 제외한 친인척 사이에서도 뜨개질 하는 사람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러면 이 모든 뜨개질을 안해봤고, 해봤더라도 흥미가 없던 사람이라도 임신을 하면 어디선가 뜨개질과 바느질을 좋아하게 되는 호르몬이라도 분비되는 것일까? 아이에게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옷을 입히는 것이 태중에 아이를 가진 상태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 이상으로 중요할까?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역시나 '절대 아니오'이다. 우리 안에 자리잡은 태교의 이미지를 따라 가는 것보다 개인의 행복에 우선순위를두는 태교를 하는 것이 좋다. 남들에게 좋다는 인삼, 홍삼도 내 몸에 맞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이 세상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는게 부모이다. 내 자식에게 하나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아주 잘 안다. 하지만 본질은 결국 현재를 행복하게 사는것이다. 태교도 육아도, 그리고 어쩌면 우리 삶 자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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