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을 하다 문뜩 이 편물이 인간관계와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개 편물이 고르게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손에 힘을 일정하게 줘야 한다. 손의 힘이 일정하지 않으면 전체 편물의 일부는 촘촘하게 떠져 뻣뻣해지고, 일부는 느슨하게 떠져서 흐물흐물해진다. 인간관계도 비슷하다. 서로 얽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지만 각 개인의 자리가 있고 서로간의 거리가 일정해야 유지된다. 혹여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좁아진 관계로 인해 뻣뻣해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너무 느슨한 사이가 되면 서로의 간격이 더는 가까워지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경조사에 부를 사람이 많지 않다. 친구라고 해봤자 초중고 그리고 대학교까지의 인연을 다 합쳐도 6명 뿐이고, 대학원에서 만난 이들 중 결혼식에 부를 정도의 친분을 가진 사람은 두셋 정도 뿐이다. 누군가는 이런 나에게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나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사교적이지 않고,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나 관심이 없는 인물일 뿐이라 스스로 정의할 뿐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과의 스몰토크를 어려워 하는것은 사실이다. 누군가 가게서 일하는 나에게 "여기 며느리에요?"라거나 "대학생이에요? 어느 학교 다녀요?" 라는 개인 신변에 관한 질문을 하면 '저런걸 왜 물어보지?'라는 의문이 가득차 제때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질문한 사람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서 민망하고,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을 받은 나의 기분도 썩 좋지만은 않다. 나의 거리와 상대의 거리가 달라 생기는 일이리라.
앞서 언급한 몇 안되는 친분 관계는 다들 이 거리감이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이다. 지금이야 얇은 실로 촘촘히 뜬 편물처럼 가까이 지내는 사이지만 처음부터 이 거리감으로 시작된 사이는 아니다. 대학원에 함께 입학한 동기 언니는 면접 날 봤던 내 첫인상을 굉장히 차갑고 도도해 보여 쉬이 다가가지 못했었다고 이야기 하며 처음과 이미지가 제일 달라진 사람이 바로 나라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입학 후 석사 수료 과정을 함께 하는 동안 서로의 학업을 도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단계를 차근히 밟아 왔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서로 눈까뒤집고(?) 노는 사이가 된 것이다.
나와 너의 간격을 좁히는 일은 뜨개를 배우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처음에는 두꺼운 실과 바늘을 이용해 쑥쑥 자라나는 편물을 만드는 걸 배운다. 특별한 기술 없이도 정직하게 겉뜨기와 안뜨기만 해도 뜨개질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만한 편물이 완성된다. 그 이후엔 좀 더 얇은 실과 바늘로 고무뜨기도 넣고 아란 무늬나 꽈배기 같은 무늬를 넣어 보기도 한다. 실의 두께가 얇아 질수록 편물을 완성하기까지의 기술은 더욱 복잡해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것 처럼 인간 관계도 오래 될수록 더욱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서로의 간격이 좁아진만큼 서로가 서로의 모든 면을 안다고 자부하다가는 실이 엉키기 십상이다.
오늘도 한 단 한 단, 한 코 한 코 뜨개질 하는 마음으로 정성들여 인간 관계를 지어 나간다. 관계에 맞는 바늘을 사용하고, 때에 맞춰서는 적절한 이벤트도 준비한다. 실이 엉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기도 하면서 우리가 만드는 편물이 좀 더 아름다워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