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랄라 출장

by 섬세영

나는 출장을 가본 적이 없다. 국외 출장은 물론이고 국내 출장도 가본 적 없다. 그런 내가 언제부턴가 출장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신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부서 특성상 중국으로의 출장이 꽤나 잦은 편이다. 물론 내가 가지는 않지만 부서장님과 다른 직원들은 일년이면 서너번씩 중국을 왔다 갔다 한다. 국내 출장도 꾀나 잦은 편이다.


처음 일을 시작 했을 때에는 출장비 산정이 어려워서 '출장'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 지끈 거렸다. 무슨 규정이 그렇게 많고 복잡한지. 더욱이 한명이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명이 가는 경우에는 기안 문서 작성부터 막막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한번, 두번 하다 보니 어느새 적응되서 출장 기안 정도는 슉슉 작성하고 집행도 샥샥 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출장 전 할일에 적응 하고 나자 슬슬 '출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설레기 시작했다. 모든 직장인은 공감할 만한 부분일 것이다. 상사가 없으면 출근 해도 휴가 라는 것을.


이 절대불변의 진리를 깨닫고 나자 내심 부서장님의 출장을 바라기 시작했다. 내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12월에는 2주 연속 출장이 잡혔다. 그것도 4박 5일, 3박 4일짜리로 말이다.


이제는 눈감고도 작성 할 수 있는 출장 기안을 후딱 해치우고 나서, 나는 완벽한 출장을 위해 다른 준비를 시작했다. 일을 밀려 하는 편은 아니지만 남아 있는 모든 일을 해치우기 시작 한 것이다. 하루에 스무 건 이상씩 결재를 올리고, 기안을 작성했다. 타 부서와 협업 해야 하는 일들도 해치우기 시작했다. 내 황금같은 (남의)출장을 더 즐기기 위해서라면 나는 야근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출장 전 이틀을 하얗게 불태웠다.


드디어 출장 당일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출근을 해서 노래를 빵빵하게 틀어놓고 춤을 췄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자유를 만끽한 것이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뻣뻣한 몸이 꾸물거리며 기쁨의 춤을 추었다. 부서장님이 비행기에 탑승한 것을 확인 한 후에 나는 더 늘어질 수 있었다. 그렇게 꼬박 이틀을 정말 코 파고 똥싸면서 월급을 받는 기분을 만끽한 후에 나는 슬슬 지루해 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큰 일탈을 꿈꾸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학교이다. 여타 부서와 다르게 기말고사 시즌이면 정말 부서가 고요해진다. 행사도 없고, 수업도 없고, 정말 말 그대로 할일이 싹 사라진다. 나는 이 사실을 악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무단 이탈을 결심한 것이다.


평생을 모범생, 융통성 없음의 대명사 처럼 살아온지라 일탈을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아주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다. 문을 나설까 말까 수십 번 고민하고, 사무실 문을 잠글까 말까 오백번을 고민 한 후에 나는 가장 큰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대낮에 퇴근이라니. 행복했다. 그냥 햇살 밝은 길거리를 걷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다.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나니 내가 일탈 중이라는 사실이 새삼 와닿았다. 기왕 일탈을 경험하는거면 대차게 해보자는 생각이 스믈스믈 피어올랐다. 그렇게 나는 갑자기 놀이공원에 가기로 마음먹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동심의 세계로 떠나는 길은 그 어떤 여행길보다 신났다. 혼자서 그것도 근무 시간에 간다는 생각이 나를 묘하게 흥분시켰다. 자유이용권을 구매하고, 꿈과 희망의 나라로 들어서는 순간 내게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비가 오는 평일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가득 차 있었다. 그런들 어떠한가. 나는 오늘 자유의 몸인걸. 나는 롤러코스터를 타러 갔다. 1시간 반을 기다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을 때, 핸드폰이 요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부서장님 전화였다. 놀이동산에 입장한 이후 계속 빠르게 뛰던 심박수가 더더욱 빨라졌다. 핸드폰을 손에 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지금 당장 놀이기구에 타야 하는데, 전화기는 계속 울리고 있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핸드폰의 진동을 무시하고 놀이기구에 탑승했다. 2분여간의 짧고 굵은 스릴이 끝나자 여전한 스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최대한 숨을 고르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


부서장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조선생, 전화를 왜이렇게 안받아"


거짓말 못하는 나는 이실직고 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아... 저... 지금 밖입니다."


"밖 어디?"


"어... 그게... 서울이요..."


다행히 부서장님은 나를 크게 혼내거나 나무라지 않으셨다. 하지만 일탈은 위험한 것이라는 사실을 느끼며 나는 앞으로 절대 일탈을 하지 않을 것을 결심 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일탈은 이렇게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아 끝나버렸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