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나를 울린 사람은 당신이 두번째야

by 섬세영

내가 어느 학교에 근무 하는지 알 사람들은 알것이다. 때문에 이 글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학교는 작은 집단이다. 한다리 건너면 다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내 글 속 인물이 누구인지 금새 특정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 글을 쓰지 않으려 했다. 나는 내 글이 누군가를 비난하고 질책하는 글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혹여나 이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다면 나는 바로 글을 삭제 할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일하기 전에도 학교 소속이었다. 신분은 다르지만 동일한 대학의 소속으로 대학 구성원과의 접점이 많았다. 대학원생이었으니 당연히 지도 교수님과의 관계가 돈독(?) 했다. 대학원 2기에 결정된 나의 지도 교수님은 부임한지 얼마 안된 젊은 학자시다. 그 분야의 최전방에 계신 분으로 학문적으로 본받을 점이 굉장하신 분이다. 말하는 감자인 석사 과정생에게는 너무나도 먼 분이기도 했다. 언제나 나의 부족한 점을 콕 집어 내셨다. 세상 그 어떤 압박면접도 이리 숨막히진 않을 것이다.


나는 점점 그 분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 하게 되었고, 약간의 공황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오고 호흡이 안되고 말을 할 수 가 없었다. 발표를 앞두고 떨어본 적이 없는데, 대학원생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발표가 두려워졌다. 목소리는 떨리고 숨이 차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선후배와 동기는 이런 내가 안쓰러워 격려의 말을 건네고 오히려 할 수 있다 응원 했지만 지도교수님은 가차 없었다. 발표의 태도가 불성실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하기 바빠 교수님에게 그 어떤 해명도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이 일이 도화선이 되어 내 안에 쌓아뒀던 우울과 불안이 터져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교수님이 원망스럽지는 않다. 언젠가는 곪아 터질 여드름을 쥐어 짜 준 것이라 생각할 뿐이다.


진정한 문제는 내가 행정 일을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행정은 커녕 엑셀도 잘 못다루는 나에게 행정 업무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전에 했던 일을 그대로 하면 된다는 주위의 격려는 심적으로는 도움 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도움되지 않았다.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일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부동산 문제였다. 땅은 커녕 집도 한칸 없는 내게 부동산은 먼나라 이야기였다. 그런 애가 갑자기 부동산 문제에 휘말리게 되었다. 학교에서 지원한 방에 대해 하자 보수 문제가 발생했다. 이깟꺼 그냥 처리하면 되는 문제 아니냐 하겠지만 사정이 복잡했다. 실거주자는 중국으로 돌아간 상태였고, 그 분은 왜 이게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좋게 만들어 준건데 왜 귀찮게 구냐는 식이었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새로 입주한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이 하자 문제 때문에 거주 할 수 없으니 빨리 해결해 내라고 닥달하고 실거주자였던 사람은 중국에 가버렸고, 계약자였던 학교 측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가 벼락 맞았으니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산 변경을 하고, 심의를 거치고 임대인과 협의를 해야 했다. 이 일련의 과정이 줄곧 내겐 스트레스였다. 나의 의견은 없이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데 양측 입장이 너무나 팽팽하니 나만 죽어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내가 직접적으로 울게 된 원인은 아니었다.


내가 울게 된 이유는 양측의 협의가 이루어진 후, 예산 집행 과정에서 발생했다. 예산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해당 과목의 예산을 추가 신청 해야 했다. 때문에 나는 위의 과정을 예산팀에게 설명했고, 예산팀에서는 나에게 몇살이냐 물어왔다.


도대체 몇살이길래 일처리를 이따위를 하냐는 것이다. 실거주자가 하자 보수를 하는 것이 맞는데 왜 학교에서 해야 되는 것이며, 계약이 끝나 임차보증금이 반환되었는데 계속해서 임대인이 학교에 하자 보수를 요구하느냐는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차올랐다. 이 모든 일이 발생하고 해결되어가는 도중의 나의 자아는 단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저 시키는대로 처리 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그런 내게 몇살인데 일처리를 이렇게 하냐는 말은 그 동안의 내 모든 힘듦과 스트레스 그리고 노력을 폄하하는 표현이라 여겨졌다.


결국 나는 다음날 연차를 내고 하루 종일 집에서 울었다. 그동안 행정 업무를 하며 알게 모르게 쌓인 스트레스가 터진 것이었다. 내가 이런 말을 들어가며 계속 일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뱅뱅 맴돌았다. 이런 나를 끄집어 낸 것은 사촌동생의 말 한마디였다.


"언니, 언제까지 오빠 품에서만 살꺼야? 이정도 일로 무너져야 되겠어! 딱 그정도 말밖에 못하는 사람이 그깟말 한 마디 했다고 언니가 슬퍼할 이유 없어. 얼른 툴툴 털고 일어나야지!"


나는 말 한마디에 무너졌다가 말 한마디에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은 나를 제련했다. 약의 도움도 있었지만 스스로 무장하는 힘을 배웠달까? 덕분에 나는 더이상 말 한마디에 상처 입지 않는다. 한 마디 말에 얽메여 나를 갉아 먹지도 않게 되었다. 말 그대로 어디서 개가 짖나 하고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행정일은 나에게 업무만 알려준 것이 아니다. 나를 돌아보고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