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업무를 보려면 차가 필요하다

by 섬세영

나는 2종보통 면허를 소지하고 있다. 가까운 가족 중 유일한 2종 소지자이다. 사실 2종만 가지고 있어도 크게 불편한 일이 없었다. 내가 직접 운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운전 면허 있는 뚜벅이다. 그래도 크게 불편한 점은 못 느꼈다. 생활 반경 내에 큰 마트가 있어 걸어서 충분히 다녀 올 수 있고, 버스 한번 타면 떡집도, 학교도 모두 갈 수 있다. 대중 교통이 잘 마련된 곳에 거주하고 있어서 라는 이유도 있지만 어지간하면 옆지기가 나를 태우고 다니기 때문에 자차가 없어도, 운전을 안해도 지장 없는 삶이었다.


재작년 10월, 학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에도 나는 자차와 운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오너 드라이버였기 때문이다. 부지가 꽤 넓은 학교라 교내에서 움직이는 것도 걸어서는 좀 불편할 수 있는데, 이전까지는 오너 드라이버들이 태우고 돌아다녀줬다. 그들이 없을때면 교내를 순환 하는 버스를 이용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옆지기의 차 사주겠다는 말에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필요 없다 말할 수 있었다. 그때 샀었어야 했다. 나는 행정일에 이렇게 자차가 필요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다.


문제는 내가 정식으로 행정 근무를 시작한 5월 1일부터 시작되었다. 기관장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야 하는데, 여태까지는 다들 자차가 있어 편하게 모실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차가 없으니 이 분을 모시고 버스를 타고 병원까지 가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것 같아 이전 근무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퇴사하고 편안하게 첫날을 맞이한 전임자는 퇴사 1일차에 다시 학교로 불려왔다. 이건 정말 시작일 뿐이었다.


한달 쯤 뒤 방학을 앞둔 어느날 나는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와인을 구매했다. 문제는 와인이 내가 일하는 사무실이 아닌 본관으로 배달되었다는 것이다. 본관은 언덕을 올라 고개를 넘어 한참을 더 걸어 들어가야 도달 할 수 있다. 맨몸으로 가도 운동부족 현대인에겐 버겁고 힘든 길인데, 이 길을 와인 10병을 짊어메고 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아찔했다. 가뜩이나 더위를 많이 타 6월 늦봄의 날씨에도 조금만 걸으면 땀이 나는 내가 과연 와인 열병을 들고 언덕을 지나 고개를 넘어 올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하다 결국 길을 나섰다. 본관에 도착해 와인 10병이 들어있는 상자를 보자 고민과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이건 못할 일이다. 들기만 해도 무거워 허리에 무리가 갔다. 그렇다고 두병씩 두병씩 나눠 들고 5번을 옮길수도 없는 노릇이다. 쩔쩔 매다 결국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했다. 교내 근무하시는 분께 나 좀 외국어대학까지 태워다 달라고 부탁 한 것이다. 내 갑작스런 부탁에 난감하고 당황하던 근무자분께서는 내 뒤에 있는 거대한 와인 박스를 보곤 이걸 혼자 옮기라 했냐며, 기꺼이 도와주시겠다 하셨다.


이런 단발성으로 끝나는 일만 벌어졌으면 내가 이 글을 쓰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기관장님이 새로 오시고, 본격적인 행사가 진행되자 차가 없는 불편함은 더더욱 커져 갔다. 출장에 앞서 몇가지 일을 처리 하기 위해 여행사에 방문하는 일 부터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업체를 찾아 다니는 일 까지, 그 모든 순간 순간이 차가 없으면 너무나도 비효율적인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비효율을 감내하며 시간과 품을 들여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조금 더 효율적이지만 내 코묻은 돈을 써야 하는 택시를 타거나, 아니면 무려 기관장님께 기사노릇을 부탁했다.


위 일련의 일들을 계기로 나는 차를 사야겠다 마음먹었다. 하지만 마음먹은것과 실행에 옮기는 것은 엄연히 다른 분야이다. 연필 하나 살때도 10번이상 고민하는 애가 차를 산다는 것은 수천번의 고민이 필요하다. 보다 못한 옆지기가 차를 구해주겠다고 나섰다. (옆지기의 수많은 사업 중 하나가 이와 연관 되어 있다) 내가 내건 조건은 첫째, 중고차일것. 둘째, 뚜껑이 하얗고 차체는 파란색인 ray일 것. 셋째, 사고 이력이 없을 것. 넷째, 비흡연자가 타던 차일 것. 다섯째, 너무 비싸지 않을 것. 마침 옆지기도 레이를 하나 서브 차량으로 구매할 의향이 있던지라 위 조건에 맞는 차를 찾기 위해 수소문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6개월째 조건에 맞는 차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차를 사야겠다는 내 고민은 진즉에 끝났는데, 조건에 맞는 매물이 없어서 차를 못하는 웃기지만 슬픈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나는 뚜벅이인 채로 2024년을 맞이 했다. 올해는 내게 차가 좀 와줬으면 좋겠다. 행정일에는 차가 절실히 필요하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