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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영 Mar 05. 2024

보이스피싱범 농락 사건

나도 보이스피싱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

약 한달 전, 업무적인 용도로만 사용하는 위챗에 알람이 떴다. 당연히 일이라 여겨 바로 열어 보았는데, 처음 보는 남정내의 '언제 퇴근 하냐'는 메시지였다. 모르는 남정네고 더욱이 중국어로 말을 걸어오길래 말 그대로 읽씹 해버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주에도 계속 '오늘 뭐 하니?', '언제 퇴근 하니?', '혹시 무슨 일 생겼니? 왜 답장이 없니?'와 같은 메시지가 계속 날아 왔다.


더이상 답장을 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 답장을 시작했다. (아래 대화 내용은 전부 중국어로 이루어 졌으나 한국어로 번역해 올립니다)


' 너 나 아니? 난 널 몰라'


'너 언제 퇴근하니?'


'너 누구야? 내 위챗 아이디는 어떻게 알아냈어?'


'퇴근 하고 뭐 하니?'


그 자는 내 말에 답을 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이어 나갔다. 나는 정색하고 다시 답장 했다.


'내 물음에 먼저 답 하겠니? 너 나 알아?'


그제서야 그자는 나의 질문에 답변을 주었다.


'응. 내 친구가 널 알려줬어'


'네 친구 이름이 뭐니? 나는 그런 이야기 들은 적 없어'


'ㅇㅇㅇ'


'나는 그런 사람 몰라. 네 친구에게 다시 한번 확인 해 봐'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그자의 답장이 왔다.


'내가 잘못 알았네. 미안해. 근데 너는 어떻게 중국어를 하니? 중국인이니?'


'아니. 난 한국인이고, 중국어를 공부해서 할 줄 알아'


'공부를 했구나. 정말 대단하다. 중국어 실력이 좋은걸!'


'너는 어쩌다 나한테 연락을 하게 된 것이니?'


'한국에 출장 와 있는데, 친구가 네가 한국에 있다고 알려줬어'


'한국에 출장 와 있구나. 한국 생활은 어때?'


'한국인의 월급은 짜고, 물가는 높아'


그의 마지막 답장에 나는 조금 흠칫 놀랐다. 이어지는 그자의 질문에 더 놀랐다.


'너는 월급이 얼마나 되니?'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에게 대뜸 월급이 얼마냐고 묻는 무례함에 거기서 연락을 멈출까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중국인 상사와의 대면을 앞두고 중국어 회화 연습이 필요하던 터라 그자가 좋은 회화 연습 상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 받았다.


그렇게 2주 정도를 연락을 주고 받았다. 그자와의 연락을 통해 알아낸 정보는 '41세, 이혼남, 미국거주중이라고 함, 한국 출장중 이라고 함, 북경대 졸업 했다고 함, 금융업 종사 한다고 함, 요리 좋아한다고 함'. 마지막의 요리 좋아한다는 정보에서 나는 사실 이자를 불신하기 시작했다. 요리를 좋아해 매일 저녁 밥을 자신 스스로 해 먹는다고 하며 사진을 찍어 보내오는데, 매일같이 테이블의 무늬가 달라지는게 아니겠는가. 어느날은 대리석, 어느날은 민무늬, 어느날은 화강암무늬 등등 매일 달라지는 테이블의 무늬에 나는 이 자가 나에게 불손한 의도로 접근 했음을 짐작했다. 그렇지만 너무나 괜찮은 회화 연습 상대를 놓치기 싫어 당분간 모르는 척 연습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연락을 이어갔다.


그러던 2월 29일. 대망의 그 날이 왔다. 그 날은 내가 이 자에게 3월 1일이 한국의 국경일이며 이러 저러한 의미를 가진 날이라고 설명을 하던 중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던 그 자는 그러면 내일 쉬냐며 운을 뗐다. 국경일에 쉰다는 내 대답을 듣자 마자 그 자는 그러면 금융업에 종사하는 자신이 내게 친히 투자법을 알려주겠다고 나섰다. 우스웠다. 이 말을 듣자 마자 보이스피싱임을 직감했다. 나는 내 통장 잔고를 2만원으로 만들어 캡쳐해 그자에게 보냈다.


'이것봐. 내 통장 잔고야. 나는 돈이 없어. 투자 하려면 얼마 정도 필요해'


메세지를 확인하고 10여분간 답장이 없었다. 그리고 10분 후 드디어 답장이 왔다.


'돈이 이게 전부야?'


'응, 전부야. 나는 돈이 없어.'


'투자를 하려면 300만원 정도는 있어야 해. 너 이 돈을 마련 할 수 있니?'


'아니. 그리고 사실 난 투자 배울만큼 중국어 실력이 좋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으니 그냥 우리 수다나 떨자'


나의 마지막 메세지 이후 지금까지 그자는 답이 없다. 매일 보내오던 스스로 만들었다 우기는 저녁밥 사진도 더이상 보내오지 않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이 자가 보이스피싱범임을 알고 중국어 연습 상대로 써먹었지만,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이런 현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내 일화를 소개해 보이스피싱의 무서움을 상기 시키며 글을 맺겠다. 보이스피싱범에게 이런 짓을 하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다. 보이스피싱이 직감되면 당장 연락을 끊고 차단 하는 것이 옳다. 가장 좋은것은 애초에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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